마일리지의 유효기간이 끝나간다는 알림이 왔다. 전 세계 국제영화제들의 마켓 출장을 다니던 20여 년 전부터, 그리고 마일리지 혜택을 주는 신용카드 하나에 몰빵 하며 어떻게 모아 온 마일리지인데??
해외여행 자율화가 막 시작되던 90년, 필리핀 마닐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것이 내 배낭여행의 출발이었다.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대만, 중국, 홍콩, 일본, 뉴질랜드, 호주, 스위스, 독일, 체코, 이탈리아, 미국, 캐나다 등등. 참 많이도 들락날락했다.
20대엔 친구와 함께, 회사 생활을 시작한 30~40대엔 주로 혼자 다녔다.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백수),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는(직장인) 인생의 진리 사이를 오가며 매번 '아몰랑' 마인드로 떠났다.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음 직장을 찾을 에너지가 생겼고, 버티기 힘들었던 업무를 새롭게 바라보는 여유가 생겼다. 내가 여행을 멈출 수 없던 이유였다.
그러다 내게 고양이 두 마리가 찾아왔다. 남보다 더 서먹한 관계로 지내던 하나뿐인 동생이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하길래 우리의 관계를 좀 변화시켜 보기엔, 고양이 만한 주제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단순한 이유로 나도 집사가 되어보기로 했다.
전처럼 장기 여행을 떠나는 건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백수일 땐 하루 종일 이 귀엽기 그지없는 생명체와 24시간 붙어있는 게 좋았고 직장인일 땐 퇴근 후 돌아와 이 털 뭉치들을 조몰락거리면 하루의 피곤이 씻은 듯 사라졌다. 여행을 가지 않아도 에너지와 여유가 저절로 생겨났다.
세상 순박한 모지리 아들 노랭이와 새침데기 딸내미 깜장
그렇게 5년여의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가족'이라는 단어가 해체되는 인생 최악의 막장 드라마를 겪고 났더니 나는 암환자가 되어있었다. 암 선고를 받은 날 의사 면담을 끝내고 나오며 진료실 밖에서 웃었던 거 같다.
사람이 힘든 상황에 내몰리면 자포자기를 하며 슬퍼하거나 전투 모드가 상승하며 화가 날 텐데 그것을 뛰어넘는 극한의 상황이, 그것도 연타로 날아오면 이렇게 웃어진다. 진짜다.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그저 이를 악물고 수술과 6개월에 걸친 항암 치료를 끝냈고 방사선 치료까지도 견뎌냈다. 그즈음이었다. 마일리지의 유효기간 만료가 다가온다는 걸 알게 된 것이...
돈, 시간, 마일리지 그게 뭐가 되었던 아껴서 나중에 써야지, 따우의 미래 계획은 개나 주라지. 내가 가진 마일리지의 전부를 세계일주 항공권으로, 그것도 비즈니스석에 몰빵해 버렸다. 두 달여 가량을 항공사 직원과 안부인사를 주고받을 만큼 자주 통화하며 평소 머물고 싶었던 대도시들로 루트를 완성했다. 어차피 쉬려고 가는 여행, 도시마다 문명의 이기들을 누리며 편하게 지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숙소는 에어비앤비 중에서 호스트와 함께 생활하며 방 하나를 빌려 쓰는 것으로 경비를 절감하기로 했다. 공간을 나눠 쓰게 되니 호스트가 여자면 좋겠다 싶어서 여기저기를 찾다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으니 바로 호스트가 집사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것.
그때부터 나는 일부러 고양이가 사는 집들로 숙소 리스트를 채워갔다. 이렇게 되자 이제 내 여행 목표가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 하나의 걱정거리가 남았으니. 바로 집사 주제에 긴 여행을 떠나보겠다고 맘먹은, 이기적인 엄마를 둔 내 고양이들 말이다. 때마침 집에서 독립을 준비 중이던 한 친구를 소개받았고 그녀가 우리 집에 머물며 아이들의 임시 집사이자 이모가 되어 주기로 했다.
그리하여 남아있던 가장 큰 걱정거리까지 해결이 되자 이제는 온 우주의 기운이 '떠나라'고 내 등을 떠미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여행자들을 집에 불러들이는 것으로 자신의 여행을 대신하는, 전 세계 고양이 집사들을 만나러 떠났다.
이 글은 100일 동안 7개국 18개 도시를 돌며 총 18마리의 고양이와 11명의 집사들을 만나고 온 보고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