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통역가 질리언과 뚱냥이 모시모시

오스트리아, 비엔나

by 므스므

집이 폭격을 맞았나, 기암을 토할 지경이다. 소개 사진이랑 너무 다른데 이게 평점 좋은 슈퍼 호스트의 집이라고?


" 클리닝 레이디가 일주일에 한 번 3시간 정도 치우러 오는데 나 이번엔 혼날 거 같아. 빨래들 정리해 둔 방문을 안 닫고 출장 가는 바람에, 거기가 모시모시의 털 천지가 됐어. 아, 마리아 잔소리 폭격기인데..."


스페인어와 불어가 독일어만큼이나 편하다는 비엔나의 호스트 질리언은 UN의 프리랜서 동시 통역가였다. 집안꼴이 이런 것에 대해서는 내가 도착하던 날 출장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가사도우미가 아직 오지 않았으며 지금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에 케이크를 구워가야 하는 미션을 받아서,라고 했다.


얼핏 본 다른 두 개의 방은 온갖 살림살이와 빨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부엌과 거실도 난장판이었지만 게스트룸인 내 방만큼은 깔끔히 정리가 되어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실제로 다음날 가사도우미인 마리아가 다녀간 집은 드라마틱까진 아니라도 손님을 받을 정도의 집은 되었는데 세상에서 집안일이 제일 싫다는 그녀가 마리아의 눈치를 보는 게 너무 귀여웠다.


마리아가 다녀간 뒤의 질리언의 집. 앙증맞은 캣타워지만 관절이 안좋은 모시모시는 올라갈 수가 없다


마리아의 잔소리를 듣게 만든 장본인, '모시모시'는 내가 만난 첫 번째 외국 집 고양이다. 18살의 초고도 비만 고양이인 모시모시는 질리언이 뉴욕에 살 때, 아이들 등쌀에 못 이겨 보호소에서 입양한 고양이라고 했다. 입양 당시 이미 8살이었고 귀에 동상이 걸려있어 윗부분이 잘린 채였다는데 처음 봤을 때 스코티시폴드 종인 줄 알았더니 그런 사연이 있었다.


이제 아이들은 장성해서 아들과 딸 하나는 영국에, 다른 딸 하나는 미국에 있다 보니 모시모시를 돌보는 건 자신의 몫이라 했다. 아, 이름의 유래는 당시 아이들이 일본 문화에 심취해 있어 그리 지었다고.


모시모시는 사람을 너무나 좋아하는 고양이였다. 질리언의 집에 머무는 동안 늘 내 침대에서 잠을 잤고 내가 가는 곳마다 따라와 부비부비를 했다. 문제는 등쪽털이 온통 비듬 투성이인 데다 손만 대면 털 뿜뿜이 극심했다. 추측컨데 나이가 있고 뚱뚱하다 보니 그루밍을 잘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목욕이나 털 빗기 같은 기본적인 케어를 안 해서 인 것 같기도 했다.


이런 애가 나 좋다고 엉겨 붙으며 침대에 올라와 내 옆에 찰싹 붙어 있으니 정말 난감했다. 잘 생겼는데 머리가 기름으로 떡진 총각이 나 좋다고 따라다니는 형국이랄까...?


내가 만난 고양이들 중 최고의 카리스마와 몸매를 자랑하는 모시모시


그래도 모시모시는 행복한 고양이였다. 고관절이 안 좋은 거 빼곤(다리를 살짝 절고 다닌다) 건강도 크게 문제없고 매일 테라스에 나가 마음껏 햇볕을 쬐고 바람 냄새도 맡고 화분의 풀도 원없이 뜯었다. 부담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해도 발치에서 자고 있으면 골골송 소리가 내 귀까지 우렁차게 들려, 절로 행복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할머니 야옹이.


이런 모시모시의 문제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해서 함부로 배나 발, 꼬리를 만질라치면 사정없이 냥 펀치가 날아오는데 질리언의 말로는 처음 데려올 때부터 그랬다며 학대를 받았던 게 아닐까 추측한다 했다. 그래서 생전 발톱을 깎아준 적이 없지만 테라스의 콘크리트 바닥을 스크래쳐 삼게 하고 있다고 했다.




문득 전 세계를 무대로 출장을 다녀야 하는 싱글의 동시 통역가가 어떻게 고양이를 기르며 살 수 있는지 궁금했다.


"에어비앤비로 오는 게스트가 나에겐 은인이나 다름없지. 게스트가 오는 일정과 내 출장이 겹치면 보통은 게스트들에게 모시모시를 부탁해. 올 1월엔 한 달 정도 긴 휴가를 가게 됐는데 운 좋게 한 달을 묵겠다는 게스트가 있어서 숙박비를 좀 깎아주면서 부탁했어. 게스트가 없을 땐 보통 마리아나 그녀의 아들이 와서 밥이나 물을 챙겨주고. 운에 맡겨야 하는 일이긴 해도 모시모시가 사람을 좋아해서 정말 다행이야."


역시. 싱글의 집사에게 여행은 언감생심이다. 하지만 질리언의 경우는 게스트들을 임시 집사로 활용하는 나름의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아마 오늘도 분명히 마리아의 잔소리를 따따블로 듣고 있겠지만 그래도 둘은 함께라서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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