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출발을 얼마 앞두지 않고 내 40년 절친의 암 선고 소식을 들었다. 아니 이런 뭣같...
3주마다 돌아오는 지긋지긋한 항암 주사를 맞던 날은 언제나 그 친구가 내 옆에 있었다. 그녀는 집이 있던 평촌에서 국립암센터가 있는 일산까지 그 먼 길을 달려와, 주사를 맞는 4시간 내내 함께 해주고 안정제 때문에 운전을 할 수 없는 나를 위해 우리집까지 태워다 준 뒤 떠났다. 6개월 동안 꼬박.
속을 울렁이게 하는 지독한 약 냄새로 가득 찬, 우울과 절망의 기운이 무겁게 혹은 무섭게 내려앉은 주사실에서 우리 둘은 참 별났다. 쉬지 않고 낄낄댔다. 현재의 끔찍한 상황을 잊으려고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은 게 아니다. 우린 그저 40년 전부터 만나면 늘 그렇게 서로를 웃겼다. 웃을 일 전혀 없는 주사실 간호사들조차 우리 둘의 대화를 엿듣다 빵터지곤 했다.
다행히 그녀의 수술은 내가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야 잡혔고, 수술이 끝난 다음 날 보호자인 남편 대신 하룻밤을 곁에 있었다. 달라질 건 없었다. 배 아프다고 웃기지 말라는 친구의 말에도 빨리 폐활량을 늘여야 한다며 평소 하던 대로 우린 대화를 했을 뿐이다.
하지만 내가 여행을 떠나려던 당시에는 암 선고만 있었을 뿐, 병기가 어느 정도인지 앞으로의 항암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정밀검사를 받던 날, 출발을 일주일 남겨두고 마지막으로 얼굴을 봤다. 검사 결과는 몇 주 뒤에나 나온다 했다. 헤어질 때 친구는 잘 다녀오라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관광이 아닌 '쉼'을 외친 여행자로서, 포르투는 도전이었다. 9월이었지만 가을을 느끼기에 한낮의 포르투는 그늘 없인 10분 이상 걷기가 힘들었고 무엇보다 언덕의 도시였기 때문이다. 대체로 여행을 가면 뚜벅이로 살긴 하지만, 언덕은 다른 얘기였다. 등산에 대해 '내려올 거 왜 올라가?' 하는 나름의 확고한 신념을 가진 나는, 그리하여 그 유명하다는 도우루 강을 포르투 도착 5일째가 지나서야 내려갔다.
누군 도우루 강변에서 와인 한 잔 하는 로망을 꼭 실현시키고 오라 했지만 그냥 선착장 한편에 앉아 그림 같은 풍경을 보면서도 어떤 감흥도 없이 앉아 있었다. 그날 아침 친구로부터 온, 정밀검사 결과가 아주 좋지 않다는 소식에 넋이 나갔기 때문이었다. 대체 난 여기서 뭘 하고 있는가. 뭘 한다고 아픈 친구마저 외면하고 이곳에 있는지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여행을 왔다지만 집 밖으론 나가지도 않고 겨우 나갈라치면 습관처럼 인스타용 사진 몇 장 찍어 올리고 금세 지쳐서 다시 집순이로 돌아오는 일상이 어이가 없기 시작했다. 내 고양이들의 냄새가 그리웠고 내 방의 익숙함이 그리웠고 무엇보다 친구가 그리웠다.
그날 늦은 밤, 집 마당에 나와 앉아 도대체 이 우울의 근간이 무엇인지 곱씹는 중이었는데 마침 나를 발견한 호스트 플라우시나가 웃으며 묻는다.
"오늘 하루 어땠어?"
나는 불쑥,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한참이나 번지수가 잘못된 답변이란 걸 알지만 하루 종일 답을 찾으려고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 버렸다.
"뭘 그렇게 고민해? 지금 여기가 네가 있어야 할 곳이잖아! 뭘 하든 뭘 하지 않든 이 순간 네가 여기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지금 네가 있는 곳이 바로 네가 있어야 할 곳인 거야."
평소 명언 제조기인 플라우시나의 쿨한 답에서,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평소 허투루 시간을 보낸다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을 때린다는 것이 도무지 용납이 안되던 나 같은 사람이 쉼을 목적으로 여행을 왔으니 그 아이러니가 나의 뇌를 큰 혼란에 빠뜨린 것이리라.
자유로운 영혼, 플라우시나의 집. 그녀에겐 '친구'(정말 이름이 친구다!)라는 개도 있다
회복은 의외의 곳에서 이루어졌다. 다음 날, 플라우시나는 나를 위해 자신의 절친인 줄리아를 불렀는데 그녀는 우주의 에너지를 전해주는 '레이키 Reiki' 마스터로, 일종의 기 치료사 같은 일을 한다고 했다. 졸지에 기 치료를 받았고 그 덕분인진 몰라도 오랜만에 마음이 평온해졌다.
줄리아는 엄마는 일본인, 아빠는 중국인, 태어난 건 브라질, 남편은 포르투갈인, 그래서 포르투에 살고 있다 했다. 줄리아 역시 '포뇨'라는 치즈 태비를 기르는 고양이 집사였다. 우리 세 사람은 점심을 먹으며 마치 10년을 만난 친구들처럼 웃고 떠들었다. 집사, 캣초딩, 조공 같은 한국식 고양이 용어에 배꼽을 잡았다.
그러다 문득 '뭣이 중헌디? 내가 지금, 이곳에, 이 사람들과, 함께, 웃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 아닌가?' 하는 결론에 다다랐다. 나란 인간은 역시나 사람에게서 답을 찾았다. 관광지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니다. 난 이 여행을, 사람을 만나려고 시작한 거다. 그리고 그날 밤 친구에게서 온 카톡.
<너도 온 우주의 기운을 받아 명랑하게 지내. 이 얼마나 일생일대의 시간들이냐. 아무나 못하잖아. 특별한 그 시간을 왜 그러고 보내니. 열심히 놀고, 즐기고, 돌아와서 만나자 칭구!>
내 여행의 이유가 다시, 정리되었다. 열심히 놀고 명랑하게 지내다 돌아가야지.
이제 20살에 접어들었다는 치즈냥이 ‘미아’는 플라우시나가 영화배우 미아 패로우를 좋아해서, 얼룩냥이 ‘루아’는 새침하기 이를 데가 없어 차가운 달의 여신 루나에서 따온 이름이라 했다.
플라우시나는 호기심은 동물의 본능이므로 고양이를 집안에서만 키우는 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집사다. 집냥이를 키운다면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이라고 하니 동물의 본능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집 안에만 있는 건 불행한 일이니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어디든 가야 하는 게 맞단다.
문화의 차이이고 환경의 차이인지라 한국의 방식만이 옳다고 얘기할 순 없었다. 실제로 집의 형태가 아파트인 곳을 빼고는 내가 방문한 거의 모든 숙소의 고양이들은 산책냥이었다.
루아가, 세상에서 제일 귀찮고 버거운 20살 할머니냥 미아
노령묘 미아는 플라우시나의 침대를 거의 벗어나지 않았지만 이제 막 2살이 된 루아는 집과 거리를 오가는 천방지축 캣초딩이었다. 루아에게 마당의 화단은 화장실이었고 담벼락은 캣타워였다.
처음 구조했을 당시 임신을 하고 있었다는 미아는 4마리의 새끼를 낳아 모두 입양을 보낸 뒤 이제는 아주 편안한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단지 에너지가 철철 넘치는 어린 고양이 루아 때문에 자주 신경질을 부리고 움직이는 장난감엔 관심도 없고 그저 숨숨집이나 푹신한 소파 위에서 졸고 있는 게 세상 제일 행복한 일로 보이는 고양이였다.
반면 루아는 장난감에 열과 성을 다하고 담벼락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깥세상도 신기하고 엄마 몰래 나무로 된 창고문 한 귀퉁이를 뜯어서(!) 들락날락 거리는 것도 스릴 넘치고 마당의 화단 흙을 미친 듯이 파헤치는 것도 세상 제일 재미있는 똥꼬 발랄 캣초딩이다.
얼굴에 심술과 장난기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캣초딩 루아
"유럽 사람들 말 중에, 고양이는 사랑을 모른다고들 해. 근데 사랑은 적당한 거리도 필요하고 자기만의 공간도 필요한 법인데, 고양이는 차갑게만 보이고 사람은 안중에 없다고 생각들 하잖아. 하지만 난 알아. 고양이도 그들만의 언어로 나에게 말을 한다는 걸. 내가 며칠 집을 비웠다 돌아오면 문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어. 금방 또 자기 할 일 하러 돌아서지만. 그게 고양이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난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