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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 Oct 24. 2024

부의 향기,모과

식물채집

아이들이 집에서 마음껏 뛰어놀라고 아파트 1층으로 이사 가기로 했다.

집을 보러 간 날 거실창문을 열었을 때 나무가 창문에 어른거릴 만큼 자라 있었고 그 너머에는 어린이 놀이터가 있었다. 창문너머로 나무를 볼 수 있고 그 너머로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집에서 볼 수 있는 게 마음에 들어 바로 당일에 계약을 했다. 전에 살던 곳은 아래층 주인이 인터폰으로 직접 전화를 하지 않고 관리실을 통해서 조용히 해달라고 전하곤 했었다. 아랫집 눈치를 보느라 손님이 오는 날이면 밖에 나가 아랫집에 불이 켜져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야 했으며 불이 켜져 있으면 아이들의 발자국에 온통 신경이 가있었다. 거실과 방에 캠핑매트를 있는 데로 깔아 두고 놀게 하고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는 미안한 잔소리를 해야 했었다.   

   

1층으로 이사 올 때의 두 아이 나이는 6살과 9살이었다. 멍석을 깔아주었더니 막상 집에서 뛰어다니지 않는다. 너희들 맘 편히 뛰라고 1층으로 일부러 왔는데 어째 조용하냐고 물으니 아이들 말로는 뛰어다닐 나이는 지났다고 한다.


이사 온 해 봄, 창문 앞의 나무에서 분홍색 꽃이 피었다. 꽃이 진 자리에 초록색 열매가 열려있어도 어떤 열매인지 가늠이 안되다가 점점 자라났다. 모양을 보니 영락없는 모과였다. 모과가 사과나 감처럼 대롱대롱 열리는 줄 알았는데, 특히 하게도 나무줄기에 딱 달라붙어 자란다. 마치 엄마 치맛자락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아이처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모과는 하루하루 커지고 가을이 되니 노랗게 익어갔다.    

  

모과나무 아래 떨어지는 모과를 주워다가 집에 놓아두었다. 맛이 없으니 열매가 열려도 탐을 내는 사람들이 없다. 그러나 모과의 향기를 맡으면 달라진다. 한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크고 묵직한 모과는 미끄덩거리며 두 손으로 들어야 할 만큼 큼직하다. 떨어진 모과를 한 개만 주워와도 향기가 짙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가 코를 들이댄다.   


모과 향기를 맡으니 기억이 떠올랐다. 어릴 적 살던 시골동네에는 장사하는 집의 트럭을 제외하고는 자동차를 가진 집들이 거의 없었다. 그런 시골동네에 검은 세단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밖에서 놀다가 집에 오니 현관에는 앞코가 뾰족하고 광이 나는 검은색 구두가 놓여 있었다. 아빠의 구두는 아니었다. 아빠 구두는 끈 아래에 옆으로 주름이 깊게 보인다. 아빠는 외출이 있기 전날에 장갑을 끼고는 구두약을 바르고 문지르며 광을 냈다. 나도 해보고 싶다고 해서 몇 번 따라 했다. 그렇게 배운 구두 닦는 흉내는 어버이날이나 아빠의 생일에 효도차원에서 한 번씩 선보였는데, 아빠는 헝겊으로 구두를 더 문지르라며 손가락 두 개를 헝겊에 말아 넣고 입김을 한번 불어넣고는 문지르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손님의 구두는 마치 기름을 바른 것처럼 광이 났다. 비교되는 구두를 보고는 아빠의 구두가 낡았다는 걸 알았다. 나는 방에 온 손님에게 인사를 하니 네가 지아냐며 많이 컸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검은 가죽지갑을 열고 돈을 꺼내 나에게 과자를 사 먹으라며 용돈을 주셨다.      

엄마는 술상을 방에 넣어주고는 밖으로 나왔고 평상에 앉아있던 아줌마들은 우리 집에 온 아저씨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었다. 누구네 놀러 왔는지도 다 알만큼 온 동네는 비밀이 없었다.

“서울서 출세했는 갑네.”

“느그아빠 고등학교 동창이란다”


몇 시간 지나 술에 취한 아빠와 아저씨는 어깨동무를 하고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그 뒤로 엄마와 내가 따라갔다. 큰길에 주차되어 있던 검은 자동차는 아저씨 것이었다.

자동차 뒷문을 열자 짙은향기가 코를 찔렀다. 자동차 뒷자리 선반에는 바구니에 노란색 과일이 담겨있었고 그 옆엔 성경책이 펼쳐져 있었다.      

아빠와 아저씨는 차 앞에도 한참을 서서 말을 했고 나는 언제쯤 인사를 해야 하나 기다렸다. 열린 차문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향기에 취해 지루해질 때쯤 아저씨는 뒷자리에 앉고 아빠는 조심히 가라고 고향에 자주 오라며 문을 닫았다. 드디어 문이 닫혔는데도 아저씨는 다시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고 인사를 하는 나를 보더니 지갑에서 천 원짜리를 꺼내서는 아까보다는 더 여러 장 주셨다. 나는 "고맙습니다" 하며 인사를 했다.

엄마는 "아이고 애들 돈 주면 버릇 나빠져요" 하면서 손사래를 했고. 아빠는 운전하는 아저씨에게 "오라이 오라이"를 외쳤다.      


엄마는 아까 아저씨가 나에게 돈 주는 걸 못 봤다. 아빠는 두 번 모두 봤지만 술에 취해서는 기억하지 못할게 분명했다. 난 두 번 돈을 받았다. 엄마와 아빠는 평상에 앉은 아줌마들과 출세한 아저씨 이야길 더 이어가기 위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용돈이 생겨 기분이 좋은 나는 엄마가 돈을 가져가기 전에 집으로 냉큼 들어갔다.


크고 나서 알았다. 각진 모양의 검은 자동차는 그 당시 부의 상징이었던 그렌져였고, 그때 차 안에 있던 노란 과일은 모과였다. 방향제로 많이 쓰여 집안. 차 안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부의 향기로 기억되는 모과그때의 장면으로 데려가는 타임머신이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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