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친 후 아침 산책은 특별하다. 비가 땅을 훑고 가니 깨끗해지고 나뭇잎들도 오랜만에 씻겨졌으니 싱그러운 초록빛깔은 생기가 돈다. 비 온 땅은 질퍽거리지만 흙냄새가 올라오는 걸 놓칠세라 연신 호흡을 깊게 해서 들이마신다. 숲은 비를 머금은 흙의 배부름으로 습기가 올라오고 때를 벗은 나무들이 숨겨져 있던 숨구멍을 찾은 듯 분주하게 새로운 공기를 뿜어낸다. 자연이 주는 나무향기는 아무에게 주지 않는다. '나에게 와줘서 고마워'라며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만 특별히 주는 향기다.
비 온 뒤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는 소나무잎 끝에 달린 빗방울이다.
길게 뻗어 나와있는 뾰족한 소나무잎 끝에 빗방울이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신의 물방물처럼 잎 끝에 한 방울씩 매달려 있다. 소나무잎은 가느다랗고 그 수도 많으니 잎을 타고 흘러내린 빗물이 잎 끝에 맺히면서 물방울을 담은 투명한 크리스털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잎이 많은 소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빗방울 구슬은 마술처럼 떨어지지 않고 영롱하게 맑다. 만지면 터질 듯 바람이 불면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다.
검지 손가락 끝을 물방물에 대면 터지지 않고 그대로 손가락으로 옮겨온다. 나를 보고 따라 하겠다며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손가락을 대고 분주하게 물방울을 옮겨 담는다.
친구에게 장난을 치고 싶어 소나무잎을 내리친다. 한 번에 후드득 떨어지며 물방울 세례를 맞은 아이는 얼굴에 빗물이 묻어 눈을 질끈 감으며 놀라고 장난친 아이는 깔깔댄다. 나만 당할 수 없다며 도망가는 친구를 잡아 소나무 아래에 두고 다시 잎을 건드려 되갚아준다. 아까보다 더 신이 난다며 웃어댄다.
자연이 수놓은 아름다움 앞에서도 아이들은 재미를 찾아내는 눈을 가지고 있다. 자연과 가깝게 살아온 아이들이니 십수 년을 보낸 어른인 나보다는 나무들과 더 친하다.
빗방울 크리스털은 거미줄에도 있다.
귀한 것은 가장 위험한 곳에 숨겨놓는 자연의 장난처럼 거미집에 비가 내리면 투명하고 가느다란 거미줄 한줄한줄에 빗방울을 엮어놓은 듯 알알히 매달려 있다.
나무와 나무사이에 거미줄은 그 사이를 지나가는 곤충도 빗물도 모두 그냥 갈 수 없다는 듯 공중에 커다란 거미집을 만들어 놓았다. 가운데 떡하니 멈춰있는 검은색과 노랑줄무늬의 거미는 위협적이지만, 빗방울이 내려앉아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들킨 것 같아 거미는 아마도 빗방울이 썩 반갑지 않을지도 모른다. 비가 개인 후 햇빛이 비추는 반짝이는 빗방울과 아슬하게 바람에 흔들리는 거미줄이 위태롭도록 아름답다.
양손으로 거미줄을 한 줄 잡는 흉내를 내고 아이 목에 걸어준다.
세상의 숨겨진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너희 들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