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폭염주의보가 발효되었다. 산에 오르기 전에 우리는 우두령 표지석 주변에서 스트레칭했다. 김정령 회장이 중랑천 50킬로미터 울트라마라톤대회에 참가한 후 스트레칭의 중요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는 울트라 마라톤대회에서 완주했지만, 스트레칭하지 않고 달렸다가 근육 경련으로 무척 힘든 레이스를 펼쳤다고 한다. 스트레칭은 운동 전에 필요한 준비로, 부상을 막아준다. 산에 오르기 전에 스트레칭하는 것은 몸에 준비를 알리는 중요한 과정이다.
오늘의 산행은 우두령에서 시작하여 삼성산, 바람재, 황악산, 여시골산, 괘방령, 가성산과 눌의산을 지나 추풍령까지 이어지는 23.74킬로미터의 코스이다. 해발 720미터의 우두령에서 출발하여 해발 1,111미터의 황악산까지는 7.3킬로미터이다. 일주일 전 참가한 울트라마라톤의 후유증 때문인지 발걸음이 무거웠고, 목은 타들어 가고 땀이 온몸으로 흘렀다. 산 벗들은 안개가 잔뜩 끼어 있으니, 오늘도 덥겠다며 걱정스러워했다.
굴참나무가 햇빛을 막아주었지만, 조망은 답답했다. 답답함을 풀기라도 하듯 "어휴! 버섯이 많네."라는 소리가 들렸다. 길옆으로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버섯들이 보였다. 윤진한 산악 대장은 독버섯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버섯에 손을 대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최근 독버섯을 먹고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몸을 상한 일이 있었다.
지난주 금요일에 들었던 명로진 선생의 '내 삶의 자유' 강좌가 떠올랐다. 그는 어른보다 키가 작은 아이들이 땅에 붙어있는 버섯을 잘 찾는다며 아이들 눈높이에서 세상을 보라는 교육 방법을 소개했다. 그의 말대로 나도 낮은 자세로 살펴보니 여러 버섯이 보였다. 크림빵, 약과, 단팥빵 같은 모양과 색깔의 버섯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선량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들을 독버섯이라고 비유한다. 그런 사람들은 약자를 괴롭히고 자기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면수심의 인간들이라고 생각한다.
다가오는 8월 15일은 광복 64주년이고, 8월 29일은 국권 피탈 99주년이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3부작이 떠올랐다. 『아리랑』은 동학농민전쟁이 끝난 후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하던 이전부터 일제가 패망하기까지 과정을 엮었고, 『태백산맥』은 광복 후부터 한국전쟁 전후까지 이념 갈등, 『한강』은 전쟁 후 경제발전과 민주화 과정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박경리의 『토지』처럼, 『아리랑』은 일제의 수탈과 한민족의 한을 담고 있다. 특히, 친일파들의 행태는 분노를 자아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고 한다. 조정래 소설가는 "우리는 해방과 함께 우리 사회 모든 부분을 장악했던 친일파들의 조직적인 음모로 일제 강점기는 망각이 최선이고, 일제 강점기를 꺼내는 것은 촌스럽고 모자라는 것으로 매도하는 최면을 당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은 그들의 수난을 극대화하며 자기네 민족의 자존을 확보하는 동시에 미래를 개척하는 민족의 동력으로 삼지만, 우리는 그들과 반대로 살아온 부끄러움을 저질렀다며 민족은 영원하므로 역사를 바르게 아는 데는 시기의 빠르고 늦음이 없다"라고 말한다.
작가는 "친일파들을 단죄하는 것이 이스라엘이나 프랑스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로써 『아리랑』을 썼다"라고 말했다.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현재의 우리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역사와 관련한 문학작품을 생각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덧 바람재에 도착했다. 바람재에서 황악산까지는 1시간 이상 올라야 했다. 안개가 주위를 맴돌고 굴참나무는 더욱 높이 솟아 있었다. 노폐물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이었고, 대퇴부가 팽팽해졌지만, 황악산 1,111미터 표석을 보니 반가웠다.
이제 괘방령까지 5.55킬로미터를 내려가야 한다. "오른 만큼 내려가야 할 것이다."라는 산 벗의 말이 삶의 궤적과도 닮아 있음을 느꼈다. 괘방령으로 가는 길은 끝없이 내려갔고, 운수봉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여시골산으로 올랐다. 괘방령에 도착하기 전에 3시간 이상을 걸은 다리가 쉬어가자고 보채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아삭이고추를 베어 물고 산 벗이 맛보라는 제육볶음을 함께 나눈 30분간의 시간은 달콤했다. 자리에서 일어설 때 후미가 "맛있는 것 있으면 남기고 가세요"라며 다가왔다. 방값 받지 않고 방을 빼준다고 웃어넘기며 다시 괘방령으로 발길을 잡았다.
괘방령(掛榜嶺)은 과거 선비들이 과거 시험을 보러 가는 길목이었다. 급제를 알리는 방이 붙는다고 하여 괘방령이라 불리며, 추풍낙엽이 된다는 추풍령을 넘지 않고 이곳으로 넘었다고 한다. 해발 300미터의 괘방령은 황악산에서 가성산으로 이어지는 경북 김천시와 충북 영동군의 경계점이다.
높은 지역에서는 울지 않던 매미가 울어댔다. 매 에 맴 ♪~ 매 에 맴 ♬ 매미는 땅속에서 7년에서 10년을 애벌레로 보내고 성충이 되어 열흘 정도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매미 소리를 들으며, 매미의 울음이 짝짓기 유혹의 표현이 아니라 주어진 삶을 아낌없이 살려고 하는 눈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발 1,111미터의 황악산 정상에서 해발 300미터까지는 한없이 내려와 다시 해발 716미터의 가성산까지 4.25킬로미터의 오르막을 걸었다. 식염을 먹었는데도 갈증은 심했고, 2ℓ를 준비한 생수가 점점 고갈되어 땀으로 배출되었다. 옷이 땀으로 끈적였다.
이번 구간에서는 직장 동료 두 명이 함께했다. 그들은 괘방령에서 무리했다면서 생수 여유가 없어서 걱정하고 있었다. 가성산 정상까지는 작은 둔덕이 이어졌다. 정상에 서니, 밖은 시퍼렇게 날이 선 것처럼 햇빛이 내리비치며 여름이 무르익고 있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 제관을 맡았던 도종환 시인이 쓴 시 <산을 오르며>의 일부를 떠올리며 산을 올랐다.
산을 오르며
도종환
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쁜 숨 몰아쉬다 주저앉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잠시 무거운 다리를 그루터기에 걸치고 쉴 때마다 계획하고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걸어온 길 뒤 돌아보며
두 갈래 길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도 세심히 살펴 길 찾아가게 하소서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
등에 진 짐 무거우나 땀 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 않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 것들 보고 느끼어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산을 오르며> 일부)
가성산에서 눌의산까지는 3.03킬로미터였고, 추풍령으로 하산하려면 3시간을 더 걸어야 했다. 식수가 부족해서 걱정이었다. 나는 얼린 생수를 준비해 괜찮았지만, 동료들은 그렇지 못했다. 백두대간 구간에서 물을 보충할 수 있는 곳은 지리산과 마을을 경유할 때뿐이었다. 눌의산에 도착하여 영동군 추풍령면으로 짐작되는 시내를 내려다보며 환호를 질렀다. 오늘 도착지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천공 님은 갈증으로 힘들어하는 이판사판 님과 꼬깨비 님에게 물을 내밀었다. 그는 괘방령에서 식수를 보충했다고 했다. 하산 길은 급하고 길었으며, 다리가 풀려 가끔 뒤뚱거렸다. 추풍령이 가까워졌는지 차 소리가 들렸다. 경부고속도로였다. 산자락에 접어드니 외딴집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어휴, 저 산등성을 또 넘어야 하나?" 혼자 말이 흘러나왔다. 오늘 산행이 고되었음을 의미한다.
항상 선두로 산행하는 산 벗이 산 밑에서 생수 두 병을 들고 뛰어오고 있었다. 후미에서 탈진 현상이 있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물을 건네주었다. 갈증이 심해 산 밑으로 달려 내려간 꼬깨비 님이 길을 잘못 들었는지 전화가 계속 왔다. 처음 백두대간을 타면서 된통 혼나고 있다. 날씨가 무덥고 서로 길이 어긋나 어김없이 9시간 동안 산속에서 보낸 오늘도 고된 산행이었지만, 한민족의 역사를 생각한 뜻깊은 시간이었다. (9차, 우두령 - 황악산 - 추풍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