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목적이란 무엇인가, 돈 펑펑 쓰고 사진 왕창 찍어서 있어 보이는 것처럼 그럴듯한 문구를 적어서 SNS에 올리는 것? ‘꼭 가봐야 할 명승지’ 같은 장소를 다녀온 다음, ‘안 가보면 후회할 식당’을 다녀온 다음, 너무 좋다는 말과 함께 너도 다녀와보라며 넌지시 건네는 자랑 섞인 추천? 사유와 감상이 빠진 쭉정이 같은 여행은 돌아서면 껍데기만 남을 뿐이다. 멀어야 행복한 줄만 알아서 행복을 찾아 멀리 떠났건만 멀리 떠난 그곳에 있는 건 별 볼 일 없는 본인 자신만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다. 내게 있어서 여행은 그런 게 아니었다. 작은 도시의 작은 마을. 시가지나 학교. 별 볼 일 없는 듯한 동네에서 숨 붙이고 사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천천히 걸으면서 그들과 함께 잠시나마 ‘살아가는 것’이었다. 작은 방을 빌리고 시장에서 재료를 사 온다. 한 끼 두 끼를 그렇게 때운다. 그렇게 그 시간 동안 그 마을사람이 되어본다. 내게 여행이란 그런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에게 알음알음 물어 식당을 찾아가고, 사람을 만난다. 때론 나와 같은 여행객을, 때론 연배가 지긋한 어르신을, 때론 그 누구도 만나지 않는다. 이름도 모를 식당에선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맛을 남기고, 잔뜩 기대했던 관광지에선 비에 폭삭 젖어 감기에 걸려온다. 우연에 의해 좌우되는 세상처럼, 여행도 마찬가지로 우연히 우연하게 기록되고 추억한다.
돌고 돌아도 결국 제자리뿐인 행복의 양상은 사실 허상인 듯싶었다. 마치 원효대사의 해골물처럼 행복이라는 건 내가 생각하는 곳에 존재하고, 또 그렇다고 믿으면 그럴 수 있는 듯싶었다.
지겨우리만치 지독한 일상을 탈출하기 위해 멀리 떠난 여행지는 사실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겐 지겨운 일상을 살아가는 거주지일 뿐이다. 그렇게 잠시나마 마을 사람이 되어 그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우리는 이방인으로서 그들의 삶을 느끼고, 지역 주민으로서 우리의 삶을 공유한다.
청춘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흔한 말은, 사실 청춘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시간들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당연한 얘기이다. 마찬가지로 돌아오지 않을 지금의 시기를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게 내가 지문이 지워져라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찰나의 순간에서 범위를 넓혀 특정 시기들을 기록한다. 그런 시기에 대한 기록들을 한 발짝 물러서서 나를 돌이켜보고 지켜보고, 또 기록하고 다짐한다. 숲 안에선 숲을 볼 수 없듯 한 발짝 물러서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삶을 여행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그럴 듯싶었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내가 뭘 좋아했구나, 뭘 많이 했구나와 같은 스스로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미묘하게 변한 나 자신을 돌아보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