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려서부터 눈이 싫었다. 이유는 몰랐다. 그냥 존나 싫었다. 눈이 오면 운동장엔 눈이 쌓이고, 그렇게 되면 축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눈이 신발 안으로 들어가면 양말이 젖는데 그것도 싫었고, 눈싸움을 하면 머리가 젖는 것도 너무 싫었다. 그래도 눈에 대한 좋은 기억들은 조금 남아있긴 하다. 정말 어릴 때 집 앞에 있는 학교 운동장에 잔뜩 쌓인 눈을 던지며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그때도 눈싸움보단 다른 걸 더 좋아했지만.
열네 살이 되던 해에 주택 비슷한 곳으로 이사를 갔다. 원래 살던 아파트보다 더 안 좋은 곳으로 갔는데, 일반 보일러가 아니라 심야 전기를 쓰던 곳이었다. 심야 전기는 단어 그대로 전기가 새벽에만 들어와서 다음날 추울 것 같은 날 밤에 보일러를 켜고 자면 다음 날 아침까지 천천히 따뜻해지는 식이다. 일반 전기보다 싸서 그 집이 심야전기를 썼던 건데 내 기억엔 전기세가 존나 비쌌다. 그래서 잘 안 켜고 살았고, 만약 추운 날 켜지 않고 자면 다음 날은 꼼짝없이 냉골 같은 방에서 살아야 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거실에서 입김이 나서 패딩을 입고 지냈던 기억이 난다.
주택인 만큼 당연하게도 내 집 앞 눈은 내가 쓸어야 할 책임이 생기는데 난 그것도 싫었다. 차가 밟고 가서 거뭇거뭇해진 애매하게 녹은 축축한 눈은 잘 쓸리지도 않았고,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치워도 치워도 계속 쌓여만 갔다. 어찌 보면 눈을 싫어할 수밖에 없던 환경에서 살았던 것 같다. 사실 눈이 싫다기보단 눈이 오는 겨울이 싫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집에서 육 년을 살았는데 그 육 년 중 한 번은 날 좋아하던 여자애가 자기는 눈이 너무 좋다고 했었다. 눈사람 만드는 것도 좋고, 눈이 너무 예쁘다고 했었던 것 같다. 나는 존나 추운 집에서 매일같이 일기예보를 보면서 눈이 오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살았는데 말이다. 그 무렵 나는 ‘저 철없는 애들과는 달라’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실 나도 겨울에 따뜻한 집에 살며 제설이 아니라 친구들하고 눈사람을 만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스물을 넘겨 군대에 갔고 군대에선 다들 눈을 싫어했기에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마음이 놓였다기보단 다들 나만큼 괴로워하는 모습에 싫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여기서는 다 같이 춥고, 다 같이 눈을 치워야 하니까.
군대를 나와 돌아온 사회는 여전히 다를 바 없다. 이젠 더 이상 내 집 앞에 있는 눈을 쓸진 않지만 그때의 습관이 남아 여전히 집에선 두꺼운 옷을 입고 지낸다. 눈이 내리면 여전히 열네 살 겨울이 생각이 나고, 이젠 심야전기도 아니지만 보일러를 켤 때면 나올 가스비 걱정이 우선이다.
난 겨울이 존나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