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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함께야

<조금 부족하지만 괜찮아>를 읽고

by 토마토샘

어린 시절 저는 파워 E였습니다. 3학년부터 6학년까지 반장을 도맡아 했습니다. 시골의 작은 학교였기에 걸스카우트 반장, 합창단 독창, 방송반 아나운서, 학예회 사회까지 도맡았던 아이였습니다.


귀찮은 걸 싫어하는 데다가 누군가를 이끄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낯을 가리거나 말을 거는 데 어려움은 전혀 없었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사람이 무서웠던 적은 없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말을 겁니다. 어른이 된 지금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예전처럼 좋아하지는 않지만, 교사가 된 지금도, 조용한 학생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교장 선생님께도 학교를 위한 의견이 있으면 어려움 없이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데, 제 아이들은 저와는 조금 다릅니다. 많이 다릅니다.


첫째는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장난꾸러기이지만,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마다 책만 읽는 아이입니다. 친구들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이 없고, 어떤 무리에만 속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합니다.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조용히 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둘째는 다섯 살이 되어서야 옆집 아저씨께 인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무려 1년 넘게 아저씨께서 먼저 "안녕!" 하고 인사해주신 덕분에 마음을 연 셈입니다. 더 어릴 땐 가정 어린이집을 2년이나 다녔지만 거의 말을 하지 않아 최근까지도 상담을 다녔습니다.


얼마전 유치원 공개수업에서 연극 활동이 있었는데, 주인공 무리(아기 돼지 형제들) 중 한 명이었음에도 연극이 진행대는 내내 한마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주어진 행동은 다 하면서도, 목소리는 끝내 내지 않았어요. 그래도 마지막에 자기 이름은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참 대견했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고, 내 아이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두 아이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다 보면,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으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저도 그런 어린 시절을 겪었으니 이해도 되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말하게 됩니다.

“틀려도 괜찮아. 겁먹지 않아도 돼. 지금 그대로 해보자.”



아이들에게 항상 완벽할 수 많은 없다. 완벽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라는 그림책을 꺼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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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속에는 조금은 이상하고 부족한 다섯 친구들이 나옵니다.


배에 구멍이 난 친구, 쭈글쭈글한 친구, 힘이 없어 흐물흐물한 친구, 모든 게 거꾸로인 친구, 그리고 커다란 곰처럼 생긴 친구. 처음엔 이 친구들이 참 이상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함께 잘 지내고 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완벽한 친구’가 나타나 이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쓸모없어!”


하지만 이 다섯 친구는 각자의 부족한 점 속에서 자신의 장점을 발견해냅니다. 서로를 격려하고, 함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아갑니다. 오히려 완벽한 친구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엄마, 연기가 배에서 빠지면 아프지 않을까?”
“완벽한 친구, 너무 심했어! 친구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엄마, 똥꼬에도 구멍이 있어?”


가족끼리 책을 읽으니 시간이 걸립니다. 천천히 읽어도 되고, 책을 읽으며 드는 생각들,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합니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이야기의 흐름을 다시 원래대로 끌어와야 합니다.


책을 읽은 후의 활동은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 말하기, 가족의 발표를 듣고 긍정적으로 말해주기,칭찬하고 위로하기로 정했습니다.


첫 번째 활동 : 부족한 나 그리기

아직 잘 못하는 것, 나답지 않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그림으로 표현해 보세요.



두 번째 활동 : 부족한 점을 스스로 표현해보기

내가 아직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은 무엇인가요? 왜 그렇게 느꼈는지도 함께 적어보세요.


나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때문에 부족하다고 느껴요.



세 번째 활동 : 가족 발표 듣기 & 칭찬, 위로하기

가족이 발표를 하면, 들으면서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연습을 해요.


그래도 괜찮아. 왜냐하면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몇 번의 연습이 있어서인지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잘 말합니다. 둘째도 어느새 엄마 아빠에게 질문을 하거나 위로를 하기도 합니다.



부족한 나에 대해 말해보기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부족한 나’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했습니다. 가족 중 한 명이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을 말하고, 다른 가족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따뜻한 말을 전하는 활동이었습니다.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 그것이 우리의 규칙이었어요.


엄마의 이야기

“요즘은 물렁물렁한 친구처럼 체력이 정말 부족해요. 운동할 시간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어서 자꾸 집에서도 일만 하게 돼요. 그래서 너희들과 잘 놀아주지 못해서 늘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아빠의 이야기

“가끔은 머리에 구멍이 난 것처럼 느껴져요. 중요한 걸 자주 잊어버리고, 일이 잘 안 풀리고, 바쁘고 피곤하다 보니 괜히 가족들에게 짜증을 낼 때가 많아요. 그럴 때마다 미안하고 속상합니다.”


딸의 이야기

“저는 집중력이 부족한 것 같아요. 숙제를 하려다 보면 자꾸 다른 걸 하고 싶어지고, 미루게 되고... 그게 계속 쌓여요.”


아들의 말은 아직 정리가 안 되었지만, 눈빛과 몸짓으로 충분히 대화에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듣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보탰습니다.



가족끼리 주고받은 ‘그래도 괜찮아’


이제 서로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시간입니다.

“칭찬은 무엇일까?"
아들 : “칭찬은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야!”


아빠에게 칭찬하기

아들 : “아빠는 힘이 세고 멋있어요. 우리 가족을 지켜주는 사람이에요. 자연도 잘 알아요.”

엄마 : “머리에 구멍이 난 것 같다고 했지만, 학생들을 위해 수업 준비를 하고, 프로그램을 짜면서 밤새 일하는 교사가 얼마나 될까요? 그 와중에 가족을 생각하는 모습이 저는 정말 자랑스러워요. 너무 욕심내지 않아도 괜찮아요.”

딸 : “아빠, 바쁜 건 알겠지만 조금은 쉬어도 돼요. 아빠도 놀 권리가 있어요.”


누나에게

동생 : “누나는 예쁘고 사랑스러워요. 늘 나한테 '힘내'라고 응원해 줘요.”

엄마 : "본인은 집중력이 부족하다고 했지만, 오히려 꾸준하고 지구력이 있어서 결국에는 해내요.그리고 성장해요”

아빠 : “공부도 많고숙제들도 힘들겠지만, 매번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걸 지켜보고 있어요."


엄마에게

아빠 : “학교일도, 집안일도 너무 잘하고 있어요. 완벽하게 하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엄마도 쉴 시간이 필요해요.”

딸 : “엄마는 우리를 늘 사랑해줘요. 그게 제일 중요한 거예요.”

아들 : “엄마는 예쁘고 멋져요. 물렁물렁하면 속상할 것 같아. 엄마 힘내. 힘 냈으면 좋겠어.”


동생에게

누나 : “귀여운 동생이에요.”

엄마 : “요즘 유치원 생활을 참 잘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친구들과 말하는 것도 어려워했지만 요즘은 놀이터에서도 친구들과 잘 놀더라구요. 그만큼 많이 자라고 있다는 거예요.”

아빠 : “요즘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도 잘하고, 용기도 조금씩 내고 있어요. 정말 대견해요.”




이 활동을 통해, 가족들은 천천히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부족함을 말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따뜻한 말을 주고받습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감정이 듭니다. 그동안은 존재만으로도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말로 표현된 응원은 그보다 훨씬 더 깊고 따뜻했습니다. 가족이기에, 늘 함께 있기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가까울수록 더 자주, 더 따뜻하게 말해야 합니다.


책 속 친구들처럼 우리도 완벽하진 않지만, 서툴고 엉뚱한 모습까지 함께 받아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감추지 않아도 되는 자리, 그냥 있는 그대로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그게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조금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더 귀 기울이게 되고,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더 크게 웃을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우리는 서로를 배우고, 조금씩 닮아가며 자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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