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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잘 지내고 있는 걸까?

그림책 '하트방구' 읽기

by 토마토샘

코딱지, 응가, 방구. 여섯 살, 둘째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들입니다. 이 녀석이 얼마나 자라야 원초적인 저 단어들을 듣지 않아도 될까요?



부부가 '그림책 읽기'를 하자고 마음먹은 것은 3월이었지만, 3월~4월 새 학기 우리 모두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는 데에는 많은 정신적인, 그리고 물리적인 에너지를 소진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아침 일곱 시가 조금 넘으면 출근을 하고, 저녁 시간이 되어야 퇴근을 합니다. 회화 위주의 학원에서 문법까지 함께 배우는 영어학원으로 옮긴 첫째는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폭 늘어나고, 숙제의 양도 늘어 집에서도 계속 영어 숙제를 붙잡고 있습니다. 둘째는 제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입니다. 반이 바뀐 후 두 달이나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과만 놀며 5월이 되어서야 새로운 선생님과 적응해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주말에는 연속으로 각종 집안일의 행사들과 약속이 이어졌습니다.



수업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지닌 상황에서,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짧은 시간 안에 읽을 수 있고, 시각적 흥미를 끌 수 있는 그림책은 참 좋은 수업 자료입니다. 요즘에는 글쓰기뿐만 아니라 보건, 환경, 토론 수업 등 다양한 교육 분야서 그림책을 활발히 활용합니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그림책 수업을 하고, 기회가 닿아 그림책 수업과 관련된 책에 저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학생들과는 그림책을 읽고 희망과 행복, 도전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체력 바닥난 엄마인 저는 겨우 한두 권을 읽어주고는 둘째와 함께 잠들기 일쑤입니다. 집에 만 오면 왠지 누워 있고만 싶어 집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차분히 잘 들어주는 교사이지만, 집에서는 다음에 들어준다고 미루는 불성실한 엄마가 되는 건, 왜일까요? 저만 그런 걸까요?


서로를 사랑하고. 매일 뽀뽀를 하면서도 우리 가족 넷이 온전하게 보내는 시간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다! 어떤 책으로 시작할까 고민하다. 둘째가 좋아하는 방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가치에 대해 다룬 하트방구를 선택했습니다. 그림책을 읽으며,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하는 물리적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주제를 재미있게 풀어낸 하트방구를 선택하였습니다.



일요일 저녁, 거실에 네 가족이 둘러앉아 그림책을 펼칩니다. 엄마, 아빠, 첫째인 딸이 돌아가며 한 쪽씩 읽고, 여섯 살 아들은 귀를 쫑긋 세웁니다. 그림을 살피며, 재미있는 장면에 대해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화면 캡처 2025-05-25 152302.jpg 하트방구 표지

그림책 하트방구 속 고구마 가족은 서로를 사랑합니다. 이 가족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하트방구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각자 바쁜 하루를 보내도 하트방구를 통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가족. 하지만 어느 날부터 하트방구가 아닌 똥방구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가족들은 잃어버린 사랑의 증표인 하트방구를 되찾기 위해

함께 몸을 움직이고, 대화를 나누고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 결국 하트방구가 아니어도 함께 하는 순간들이 가족의 사랑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자, 그림책과 함께 제공된 출판사 활동지를 펼쳤습니다. 처음에는 활동지를 따로 만들까 했지만, 내용 파악부터 가족들에게 의미가 될 수 있는 활동까지 담겨 있어 알차고, 아이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도록 잘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가족 소개하기 - 내용 확인 문제 - 숨은 그림 찾기 - 나만의 방구 만들기 - 우리 가족 행복 게시판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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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을 가르칠 때 보통 텍스트와 관련된 소재로 호기심을 자극하고, 작품의 내용을 이해하고, 자세히 읽고, 아이들의 자신의 감상을 표현하고, 삶에 내면화할 수 있도록 수업 차시를 구성합니다. 출판사에서 만든 활동지도 이 과정을 착실히 구현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만든 활동지더라고요) 일요일 저녁을 먹고 짧은 시간에 이루어져야 하기에 우리 가족은 내용 확인문제, 숨은 그림 찾기, 가족을 과일에 비유해 소개하기, 마지막으로 고구마 가족처럼 가족과 함께 하고픈 일 적기로 간추려 진행했습니다.


1. 우리는 어떤 채소일까?

먼저, 책을 읽고, 내용 확인 문제를 풀었습니다. 첫째는 약간 시시한 듯 시큰둥해했고, 둘째는 부끄러워했습니다. 책을 읽고 내용 확인 문제를 풀었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대화를 하며 참여하자 사춘기가 다가온 열두 살 소녀도 흥미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엄마와 아빠와 대화할 때는 평소엔 말을 편하게 하던 둘째도, 책을 함께 읽고 수업처럼 이어지는 상황이 쑥스러운지 대화 도중 몇 번이나 도망을 갔습니다. 활동하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었지만, 학교에서 학생을 기다리듯, 끝까지 기다렸습니다.


“우리 가족을 채소나 과일로 표현하면 뭐가 떠오를까?”


딸: “엄마는 토마토예요. 다정하고 장난꾸러기이고.. 귀여우니까요.”

엄마: “아빠는 늙은 호박이요. 단단하지만 속은 부드럽고 달콤하거든요.”

아들: “누나는 바나나요. 저보다 키가 크고, 멋져요.”

아빠: “아들은 포도지. 작고 귀엽고, 탱글탱글 싱그러우니까요.”


서로를 채소와 과일로 빗대며 웃다 보니, 가족이란 정말 맛있는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늙은 호박은 싫다며 애호박으로... 바꾸어 달라는 요청을 했지만요. 서로에게 서로는, 모양도, 색도, 식감도 다르지만 같이 있을 때 더 맛있어지는 그런 존재들입니다.



2. “우리 가족이 꼭 함께 했으면 좋겠는 일은?”

아들: 뽀로로 영화를 넷이서 꼭 행복하게 웃기

딸: 여름방학에 강원도에 있는 워터파크에 가서 하룻밤 자기

엄마: 호주로 여행 가기(X) - 2주에 한 번은 꼭 그림책 같이 읽기

아빠: 바닷가 근처로 캠핑 가기



결국,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가족과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아들은 본인이 좋아하는 어린이 영화를 온 가족이 다 웃으면 봤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사실 뽀로로를 보며, 정말 크게 웃을 자신은 없지만, 아들의 요청은 모두 웃!으!며가 제일 중요합니다. 결혼 전에는 보드도, 캠핑도 활동을 좋아하던 남편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태어난 후에는 많은 것들을 참고 지내고 있습니다. 모든 부모의 숙명이겠지만, 이제는 가족과 함께 하소 싶다고 합니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시키고 싶은 엄마는 영어를 열심히!! 해서 해외 여행을 가고자 했지만, 대신 그림책 읽기! 활동을 꼭 하자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첫째는 둘째가 태어나기 전 자주 가던 워터파크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 후로는 긴 거리 이동이 부담스러워 집 근처에서만 놀았기 때문인지, 예전의 여행처럼 다시 꼭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모범 정답은 없었지만, 모두의 말속에 공통된 단어가 담겨 있었습니다. 바로 ‘넷이서, 함께’입니다.


가족은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감정 표현 방식도, 말투도, 하루의 템포도 다릅니다. 마음이 엉뚱한 곳으로 튈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림책 한 권을 짧게 읽으면서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고,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 속에서 ‘우리 가족, 잘 지내고 있구나’라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트방구 책은 방귀처럼 유쾌하게, 사랑의 모양(?), 사랑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하트방구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똥방구가 나와도 괜찮습니다. 조금 부족해도, 다 달라도 우리 가족은 계속 함께하면서 각자 자기답게 자라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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