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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리 Apr 29. 2023

2. 1.5평 다이어트에 도전합니다.

미니멀라이프 결심



'이사'라는 글자가 머릿속에 떠오를 때마다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4시가 넘자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경쟁률이 거의 없다시피 했어서 서류만 문제없이 제출했다면 예상되는 당첨이었는데도, 내게 놓인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 믿었기에 그만큼 간절하고 떨릴 수밖에 없는 마음이었다.

내 손에 쥐어지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는 선물 같은 일이었다.



'입주자로 선정되셨습니다.'



결과발표시간인 5시가 되자마자, 문자로 당첨통보가 왔다.





19제곱미터.

평수로 환산하니 5.7평이 나온다.

엄마의 잔소리를 피해 서른 너머 독립해 살고 있던 원룸이 24제곱미터, 7.2평이었다.



그래, 1평 정도야.



수학을 못해 그런지 1.5의 체감이 없었다.



유튜브에 5평 원룸 인테리어를 검색했다.

요새는 워낙 잘해놓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5평이래도 옵션 딸린 오피스텔이라면 꽤 괜찮았다. 수납장으로 침대와 식사공간을 분리해 놓은 인테리어 영상은 정말 아주 그럴싸했다!

좁은 집일수록 공간분리가 중요하구나.

오늘의 집 어플에 들어갔다. 1-9평대 원룸을 체크해서 남들이 예쁘게  꾸며놓은 집들을 봤다.

그러다 “감성 벽난로 콘솔 수납장”이란 게 눈에 들어왔다.

뽀얀 화이트 자태에, 벽 한쪽에 그냥 두었을 뿐인데 분위기와 감성이 절로 뿜뿜하고 화병이나 향수들을 올려 소품으로 꾸미면 나만의 커스텀 마이징도 가능할뿐더러 유튜브에서 봤던 공간분리! 그거! 침대옆에 두면 그 공간분리도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나 이 벽난로를 사서 침대 옆에 이렇게 둬서 공간분리를 하려고! 그럼 집이 엄청 예뻐 보일 것 같아 ~! ”



신나서 사진들을 들이밀었더니, 애초에 더 좁은 집으로 이사가는 것이 불만인 남자친구의 대답이 돌아온다.



“아니, 너 거기 침대 들어갈 공간은 있어?”



축하와 응원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 혹은 비판만 때려박는 남자친구였다.

싫은 소리 듣는 걸 참을리 없는 나는, 돈 한 푼 보태줄 거 아니면 조용히 하라는 등, 이 나이에 5평 원룸으로 이사 가는 내 심정은 먼저 못 헤아려주냐며 서로에게 상처가 될 뿐인 말들을 쏟아냈다.

그날서부터 이삿날까지(정말 이삿날 당일 짐 다 빼놓은 그 빈집에서까지!) 남자친구와 정말 대차게 싸웠었다!







계약금을 내기 전 집을 볼 수 있는지 물었다.

근데 계약금을 내야 집을 볼 수 있댄다.

뭔가 앞뒤가 바뀐 듯해도, 세상이 그렇다 하면 그런 것이다 ~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되어버린 나는 군말없이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있다는 VR영상을 눌러본다.



이게 다라고?



마우스 휠을 몇번 돌릴 새도 없었다.

앞으로 한번 두번. 옆으로 휙 휙.

원룸이니 사실 보이는 공간이 전부 일 수 밖에 없었다. 화장실 한개가 딸려있고 베란다가 있었다.

방이 없으니 내 생활공간의 전부인 곳.

거실이라고 불러야 하나, 아무튼 네모난 공간 그 하나를 중점으로 마우스 휠을 몇번이고 앞뒤옆옆으로 돌려보아도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침대가 들어가려나?






쓰고 있는 침대를 봤다.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따라 산 판상형 원목 파레트 위에 이케아에서 산 제일 작은 싱글 사이즈의 토퍼를 올려두고 쓰고 있었다. 원래는 매트리스를 썼었는데 파레트가 낮아 발로 밟고 다니다 보니 매트리스가 주저 앉아버려 토퍼로 바꿔 사용 중이었다.

감성템으로 구매했던 원목 파레트는 무게가 엄청 나 처음 깐 이후로 한번도 들춰 청소하지 않았다. 파레트 사이사이로 대충 봐도 엄청난 먼지가 쌓여있었다.

인스타감성 카페의 의자처럼 언뜻 보기엔 예뻐보일지 몰라도 실제로 사용해보면 불편하기만 한 물건이었다.

나는 그 뿌연 먼지 덩어리들을 보고도 모른채 하고 살았다. 그 먼지 위에서 내가 매일매일 자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치워야 한다는 걸 알면서 켜켜이 쌓여가도록 두었다. 파레트를 들추고 먼지들을 치우는 건 나에게 버거운 일이었다.



떠날 생각에 집을 둘러보니, 모른채 방치해둔 물건들 투성이었다.

베란다는 커텐으로 가려둔 보이지 않는 분리수거장이었다. 주저 앉아버린 매트리스를 아직도 가지고 있었고 그때그때 버리지 못한 커다란 택배박스들이 그대로 있었다.

베란다 한쪽에는 세트로 사들인 곰팡이 제거제, 물때 제거제, 기름때 제거제가 있었다. 새로운 브랜드 제품을 사봤다가 냄새가 정말 구려서 원래 쓰던 걸로 또 샀다. 청소세제만 6개가 넘었다. 지워질 생각이 없는 화장실 물때 때문에 락스도 사들이고, 쓰지도 않는 빗자루와 물걸레 밀대, 다양한 모양의 청소솔들은 햇볕에 말린다는 명목 하에 베란다에 잘 두었다지만 남이 보면 나뒹구는 형태였다. 그 물건들이 원래 있던 자리는 어디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행거에는 옷걸이에 채 걸리지 못한 옷들이 차곡차곡 늘어져 있었고, 수납장 안에는 분명 개어 넣었는데도 어느새 발사 직전인 겨울 니트들이 나살려라 하고 있었다.

인테리어용으로 올려놓은 향초와 디퓨저는 주방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향을 느끼지 못한 지가 오래였는데도 말이다.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이 집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파레트 사이로 쌓인 먼지처럼 어느새 물건들이 내 집 구석구석에 나도 모르게 쌓여있었다.






방치해둔 물건들, 방치해둔 내 삶을 마주하자, 설레고 들뜨기만 했던 이사가 하나의 시험으로 다가왔다.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없었다.

좋은 걸 쉽게 쥐어줄 리가 없었다. 지금의 삶에서 나아가기 위해선 그게 뭐든 땀을 쏟는 노력이 필요했다.

이사를 결심한 이상, 버겁더라도 파레트를 들춰내 먼지를 훔쳐야했다.




그렇게 나는 1.5평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이제 1.5평 만큼의 물건을 버려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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