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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너바스 이실장 Oct 21. 2022

회사의 부당한 대우를 참고 다녀야 했던 억울한 인생!

기술자는 이렇게 준비한다-2

2020년 의정부 장암동 현대동신아파트 욕실리모델링




많은 분들이 직장을 다니면서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압박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직장인들은 회사가 원하는 업무량 또는 목표치를 채우기 위해, 최소한 기본은 해야 한다는 의식적, 무의식적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경력을 쌓은 후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고, 이직한 회사에서 다시 이직을 합니다. "나이를 먹고 더 이상 이직이 힘들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지?" 정신없이 업무를 처리하고 바쁠 때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지만, 혼자서  잠시 쉴 때에는 스멀스멀 그런 생각이 몰려옵니다. 


저도 회사생활을 15년 이상했지만, 항상 위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만약 자의든 타의든 회사를 다닐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가 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내가 지금 가진 돈으로 무엇을 시작할 수 있을까? 회사를 퇴직한 후 은행 대출은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나오지 않는 답을 가지고 많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다녔던 회사는 케이텍맨파워라는 인재파견 아웃소싱 회사였습니다. 고객사에서 맡긴 아웃소싱 업무로 직원을 채용하고, 교육하고, 관리하는 일이 제 일이었습니다. 처음에 LG홈쇼핑(제가 입사한 2002년에는 상호가 GS로 바뀌지 않았음) 콜센터 상담직 채용업무를 시작으로 교보생명 콜센터 상담직 파견 관리, 롯데칠성 전국 물류아웃소싱 관리, 이베이(옥션, G마켓) 웹디자이너 아웃소싱관리를 담당했습니다. 회사의 지시로 송파구 문정동에 요양보호사교육원도 설치, 운영했습니다. 그렇게 14년을 근무했습니다. 그 사이 회사 선배들과 동기들이 대부분 회사를 떠나갔고, 저도 서울 본사가 아닌 지방으로 좌천(?) 되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참을 만했습니다. 더 열심히 해서 회사의 인정을 받으면, 다시 본사로 들어갈 기회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제가 마지막으로 했던 업무는 인천공항 화물터미널 UPS 항공 물류 아웃소싱 업무였습니다. 직원들을 채용하고, 교육하고, 현장에서 업무 지시하고, 근태관리까지 직접 했습니다. 매일 비행기 출발 시간에 맞추어 항공기컨테이너에 화물을 지역별로 분류하여 적재하는 업무를 지시 감독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고객사와 본사 윗분들께 욕먹는 것이 일이었죠. 제가 채용한 젊은 직원들은 며칠 하다가 그만두고, 아프다고 안 나옵니다. 저는 다시 직원들을 어렵게 채용하고(물류 현장은 여름에 떠 죽고, 겨울에 칼바람 불고, 출퇴근도 힘들어 채용도 힘들었어요), 채용한 직원이 며칠 하다가 안 나옵니다. 아니 출근하기로 한 날부터 안 나온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날 창고에 들어온 화물을 비행기 출발시간 안에 항공기 컨테이너에 분류, 적재해야 하는데, 안 나온 직원들 때문에 저도 같이 땀을 흠뻑 흘려가며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3년 겨울 인천공항 화물터미널 창고

그렇게 마감시간에 겨우 맞춰 작업을 마무리해도 고객사 책임자는 항상 생산성이 안 나온다느니, 화물을 잘못 분류, 적재해서 문제가 생겼다느니, 직원교육과 관리가 왜 그거밖에 안되느냐고 질타하니, 매일 같이 저는 


"죄송합니다. 내일부터는 최대한 신경 써서 관리하겠습니다."

이 말의 반복이었고, 고객사 책임자도 저의 죄송하다는 말이 지겨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에는 

"직원들 월급이나 많이 올려줄 수 있게 아웃소싱비용을 조정이나 해주던가, 근무환경을 개선해 주던가 해야 직원들이 오래 다니면서 작업에 능숙해지고, 그러면 생산성도 올라가고, 실수도 안 하게 되잖아! 이 바보야!"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참았습니다. 나중에 UPS책임자와 소주 한잔 하며 솔직하게 이런 부분 건의도 했지만, 경영상의 이유로 안된답니다. 시설투자와 아웃소싱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반대하겠죠. 직원들도 불만이 많았습니다. 직원들끼리의 트러블과 고객사 직원들과의 마찰! 또 제가 중재하려고 노력했지만, 저의 한숨과 담배만 늘어갔습니다.

2013년 겨울 인천공항 화물터미널 항공 컨테이너 적재작업 현장

고객사, 현장 근로자, 저희 본사 임원들 사이에서 저는 압박과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출퇴근도 2시간씩 하루 네 시간이 걸렸고, 근무시간도 새벽출근, 오후 출근, 주말출근으로 불규칙했습니다. 새벽 출근하는 날은 새벽 5시에 택시를 타고 공덕역에 가서 공항철도 첫차를 타고, 화물청사역에서 내려 공항순환버스를 탑니다. 겨우 아침 7시에 인천공항 물류센터 사무실에 도착합니다. 오후 근무하는 날은 밤 11시에 현장을 마감합니다. 일일보고를 재빨리 작성하여 보내고, 공항순환버스와 지하철 막차를 타기 위해 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땐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다녔는지 모르겠네요. 적응이라는 것이 무섭습니다.


인천공항 화물터미널에 3년 반을 통근했고, 저 나름대로 고생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음 해 본사의 관리 직원 연봉통보(협상 아님)에서 제 연봉이 동결되었습니다. 관리 직원 대부분이 연봉 인상 되었지만, 저와 몇몇만 임금이 동결되었습니다.


"현장에서 열심히 일해도 본사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이렇게 나가라고 하는구나!"


그때의 허탈감과 박탈감! 모든 안 좋은 감정은 다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이젠 회사를 나가야 할 때가 온 것이죠. 그때가 2016년, 내 나이 마흔!, 우리 아들은 여섯 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 "내가 뭐 빠지게 고생했는데, 나처럼 고생 좀 해봐라!" 나 대신 누가 이 자리에 오더라도 지옥 같은 이 현장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어요. 그래야 내 기분을 알 테니까. 회사에서도 나를 인정해 주지 않은 것은 큰 실수였다고 느끼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생각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각이죠. 이 생각이 저만의 착각이라는 것은 나중에 깨닫게 됩니다. 대부분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당신이 중요한 많은 일을 하고, 당신이 없으면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절대로 아닙니다. 내가 없어도, 처음에는 좀 삐걱거리겠지만 한두 달 지나면 다시 잘 돌아갑니다.


이 회사를 다니면서 보람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비정규직과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하는데 일부분이나마 일조한다는 죄책감이 있었을 뿐입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회사! 


사람을 단순히 소모품으로만 보는 회사!


고장 나거나(문제가 있거나) 오래돼서 질리면 새 제품(신입직원)으로 갈아 끼우는 회사!


너무 섭섭하고 화도 났지만 그것(연봉동결) 때문에 퇴사를 결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지독한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 대학 졸업 후 경험한 회사가 이곳밖에 없었는데 다른 회사는 어떨까? 다른 회사를 경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퇴사한 후 몇 달 동안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와이프가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생활은 그럭저럭 유지했습니다. 스케줄근무로 인해 그동안 어린 아들과도 시간을 많이 못 보냈는데,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져 좋았습니다. 정신없이 달려온 제 인생의 장기휴가를 가지게 되었지만 해야 할 일이 없는 하루하루의 삶은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일을 찾아야 했고, 자존감도 찾아야 했죠. 와이프에게 눈치도 보이고, 아들은 쑥쑥 커가고 있는데, 집에서 뒹구르르 하는 것도 제 성미에 맞지 않았습니다. 

재취업을 해야 한다는 간절함은 있었지만, 제가 일했던 인력파견 아웃소싱업계는 피하고 싶었습니다. 다른 직종의 일을 찾아보는데, 경력이 인력회사 경력밖에 없었고 나이도 마흔이 넘다 보니 제가 입사할 수 있는 다른 직종의 회사는 없었습니다. 

다시 제가 했던 경력을 살려 취업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고, 다행히 구직활동기간이 길지는 않았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소규모 인력 아웃소싱 회사에 들어갔어요. 사무실에는 사장님, 여직원, 그리고 저까지 세 명이 근무했으며 관리했던 직종은 경비, 생산, 청소, 시설, 운전직이었습니다. 대부분 최저시급인 직원들입니다. 제가 그곳에 근무할 때가, 2018년 최저시급이 무려 16.4%인상된 역대 최대로 오른 해였습니다. "연세 있고 고생하는 어려운 분들 급여가 많이 올라가겠구나" 하며 반가운 생각이 들었지만, 또 나만의 착각이었죠. 사장은 저에게 근로시간을 줄이고 휴게시간을 늘려 근로계약서를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 실제 근무와 휴게는 근로계약서대로 시행하지 않으면서 최저시급에 위반되지 않도록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라고, 사장이 지시한 것입니다. 어디를 가나 꼼수는 있습니다. 직원들도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부당하다는 말 한마디 할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 연세가 있던 분들이라, 그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근로계약도 6개월 단위로 합니다. 그렇게 하면, 직원들은 회사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어요. 회사에서 6개월 뒤 재계약을 안 하면, 계약만료로 직원들은 회사를 나가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회사가 그렇게 근로계약을 하더라도 법적으로 위반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약자를 지켜주지 못하는 무의미한 법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저 또한, 입사했을 때 사장이 계약기간 6개월인 근로계약서를 내밀었습니다. 입사 후 첫 근로계약이니 제가 열심히 잘하면 6개월 뒤에는 연봉을 올려주려나 보다 하고 생각했죠. 그건 아주 순진하고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사장은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1년 6개월 만에 계약만료로 그 회사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직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약 만료 사유로 내보낼 수 있는, 사장 마음대로 하는 그런 작은 회사였던 것입니다.


큰 회사, 작은 회사 모두 경험해 본 저는  제가 회사에 적응을 잘 못하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유를 생각해 보면 센스 없이 '나와 회사' 보다는 내가 관리하는 현장 직원들의 고충을 더 들어주려고 했고, 그 직원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근무를 할 수 있도록 회사 윗분들께 건의를 했던 것 같습니다. 바보같이 초점을 잘 못 맞췄던 것이죠. (자기 합리화 같지만 그때 내 마음은 그랬습니다) 그러니 회사에서는 제가 미운털이 박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직원들 보다 이익만 생각하는 회사들에 환멸을 느꼈고, 다른 회사에 재취업할 생각은 깨끗하게 버렸습니다.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해도 참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나이를 먹어 가고, 어르신이 되는 그날이 오면 나도 부당한 대우에도 참고 일을 해야 하겠구나!", "내가 나이를 먹으면 경비나 미화 일이라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가 2018년 여름, 나이 마흔둘! 다른 일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하여 가족을 챙기고,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때가 온 것이죠. 그때의 심정은 절박! 애절! 간절!이었습니다. 단단히 고생할 준비를 했습니다. 막일이라도 할 수 있는, 각오와 마음가짐이라고나 할까? "회사생활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었으니, 어떤 일도 해 낼 수 있겠다"는 쓸데없는 자신감(?)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들을 생각해 보면......


내가 가진기술? 

- 없습니다.


내가 해본 경험? 

- 회사생활만 해봤네요.


내가 가진 자본?

- 없어요.(퇴직금은 비밀)


내가 투자할 수 있는 시간?

- 1년 정도는 와이프의 선처를 구한 후 가능합니다.


열정은 있는가?

- 흘러넘칩니다!


제가 가진 것은 오로지 나의 열정과 1년의 시간이었습니다. 1년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계약만료 퇴사 후 실업급여를 7개월 받을 수 있었고, 아르바이트라도 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퇴직금은 가능하면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어요. 퇴직금이나마 저의 자존감을 갖게 해주는 마지막 보루였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앞 글에서 말씀드린 대로 자본금 들지 않고, 평생 할 수 있는 일 중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기술자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기술을 배울까?


제 결심은 확고하나,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우선 현장으로 가보자. 그러면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장을 경험한 후 결정을 해보자. 이렇게 생각하고, 친구, 친척, 지인 등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기술자가 되고 싶습니다' 이렇게 알리고 다녔습니다. 


'아는 기술자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열심히 잘할 자신 있습니다.'


회사에 다시 입사할 생각은 접었습니다. 자영업은 자본이 있어야 하고 위험성이 큽니다. 답은 기술자가 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심은 확고했습니다. 마음은 절실하고, 어떠한 힘든 일이 있어도 부딪혀 나갈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 혼자 기술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기술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와이프의 응원과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저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날 것이고,

일어나지 않을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너바스 이실장 명언-2]



이너바스 이실장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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