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자? 그게 뭐 별거라고. 이젠 시작하자. -1
기술자 사장이 저와 동갑이라 친구처럼 지냈지만, 그래도 스승이라고 생각하며 궂은일, 힘든 일은 제가 하려고 했습니다. 사장은 기술이 필요한 작업을 해야하니까요. 사장 기분도 잘 맞춰가며 사장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가끔 대마찌(일하러 갔는데, 일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 생겨 부득이 쉬어야 한다는 노가다 용어) 나는 날에는 함께 건전 마사지 받고 스크린 골프도 쳤습니다. 소주도 한잔 했습니다. 많이 가까워졌고, 사장도 저를 많이 챙겨주려고 했습니다.
사장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사장은 집이 성북구 장위동입니다.(참고로 저는 종로구 원서동) 제가 사장에게 일 배우기 시작했을 때, 사장은 욕실 리모델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아직 1년이 안된 시점이었습니다. 그전에는 장사도 했었지만 인테리어 목수도 하면서 기술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키가 훤칠하고 체격이 좋은 편이며, 인테리어 감각과 손재주도 있습니다. 사장도 타일 기술은 타일학원에서 배웠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할 수 있는 작업이 많지 않았지만, 현장에서 사장에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현장 경험을 하면서 제가 혼자 할 수 있는 작업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사장이 자리를 비우고 저에게 현장을 맡기는 일도 점점 늘어났어요. 하지만 일당 5만원에서 변화는 없었습니다.
제가 없었다면 사장이 혼자 작업했거나, 다른 기술자에게 작업을 맡겼을 거예요. 어떤 때에는 작업이 밤늦게 끝나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이번 현장의 일당은 좀 더 챙겨 주겠지'라고 살짝 기대했지만 일당 5만원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섭섭했습니다. '일용직 노가다를 해도 일당 13만원은 받는데, 5만원은 너무하네!'
섭섭했지만 섭섭한 마음을 드러내지는 못했어요. 제가 섭섭하다는 말을 사장에게 했다면, 흥분을 잘하는 사장이 불같이 화를 냈을 것입니다. 더 이상 사장을 통해 현장 경험을 할 수 없었겠죠. 그리고 다른 기술자를 찾아야 했을 것입니다. 제가 가진 기술이 아직 독립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으니까요.
사장이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집주인이나 고객들과 소통을 잘하며, 고객이 원하는 것은 대부분 들어주고 더 해 줄 것은 없는지 물어봅니다. 그리고 사장이 점심은 잘 챙깁니다. 가능하면 맛있는 점심을 먹으려고 주변 맛집을 찾았습니다. 저는 바이크가 있어서, 현장이 서울이면 아침에 바이크로 현장까지 갔지만, 현장이 멀면 장위동 사장 집에 바이크를 두고, 사장 차를 같이 타고 현장으로 이동했습니다. 모든 공구나 연장은 사장이 가지고 있는 것을 사용했고, 사장이 어떤 공구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했습니다. 사장이 기분 좋을 때는 여분의 공구가 생기면 챙겨 주기도 했습니다.
기술자 사장님은 현장에 늦게 도착할 수 있습니다. 부족한 재료를 구매하거나, 다른 집주인과 상담이 늦어지는 경우도 있거든요. 기술을 배우는 입장에서 현장에 일찍 도착해야 합니다. 사장님보다 현장에 늦게 도착하면, 분위기가 서늘해지고 어색해집니다. 항상 사장님보다는 일찍 도착할 수 있도록 30분은 여유를 가지고 출발해야 합니다. 일찍 도착해서 현장을 정리하고, 바로 작업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기술을 배우는 입문자의 기본입니다.
사장님이 지시를 했는데 만약 무슨 말인지 모를 경우, 한소리를 듣더라도 꼭 물어봐야 합니다. 당신이 생각한 것과 사장님이 생각한 것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이걸 하라는 거겠지~' 하고 마음대로 해석하게 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당신 생각대로 해버렸다가, 나중에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될 수도 있어요.
지시한 작업이 끝나면, 다음 할 것을 물어봐야 하는데 "이젠 뭐 해야 해요?" 물어보는 것보다 "철거 끝났으니, 폐기물 한쪽에 잘 정리하면 되죠?"라고 사장님이 당신에게 지시를 편하게 내릴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묻는 것이 더 좋습니다. 사장님도 직접 해야 할 작업이 있기 때문에, 당신이 하는 작업을 계속 지켜볼 수 없습니다. 당신이 한 말 한마디에 따라 당신의 이미지는 달라집니다. 이것은 모든 사회생활의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사장님이 지시한 작업을 마무리했으면, 바로 보고하지 말고, 당신이 한 작업을 확인해야 합니다. 제대로 잘했는지, 손이 더 갈 곳은 없는지 확인해야 하죠. 확인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합니다. 확인 후 사장님에게 보고합니다.
작업을 하다 보면, 일반적인 상황이 아닌 특수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작업자는 입문자이기 때문에 실수할 수도 있어요. 그럴 때엔 즉시 사장님에게 보고 해야 합니다. 욕먹기 싫어 실수를 감추려고, 당신이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하면,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만약 사장님이 현장을 비웠다면 반드시 전화로 물어보고 지시를 따라야 합니다. 사장님이 지시했지만, 당신이 생각했을 때 "상식적으로 이렇게 하는 건 아닌데~"라고 생각되어도 사장님이 지시한 대로 해야 합니다. 당신은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사장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는 경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전적으로 책임은 사장님의 몫입니다. 책임도 지지 않는 입문자가 사장님의 말을 안 따르면 더 이상 같이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이죠.
특수 상황은 사장님 입장에서는 생각하기 싫은 상황이겠지만, 배우는 입장에서는 좋은 경험이 됩니다. 당신도 독립하면 당신의 현장에서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상황은 왜 일어나는지, 그런 상황에서 사장님은 어떻게 조치하는지, 어떤 장비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상세하게 잘 배우고 머릿속에 기억해 놓습니다.
당신은 배우는 입장입니다. 현장에서 작업할 때 사장님의 말 한마디가 꿀팁입니다. 기억을 잘 못할 것 같으면, 휴대폰 메모장에라도 적어 놓아요. 사장님 앞에서가 아니라 잠시 휴식할 때 메모합니다. 현장에서 장갑 벗고, 메모하는 모습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성격 급한 사장님은 못 참을 수 있어요. 사장님이 현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공사를 문제없이 마무리하는 것이지, 일 배우는 분들이 일 잘할 수 있도록 기술을 알려주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일 배우는 분은 그런 것을 착각할 수 있습니다. 학원이 아니에요.
현장에서 사장님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사장님의 마음을 읽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작업을 하는 데 있어 속도가 중요한 작업도 있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섬세하게 작업을 해야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빨리 해야 하는 작업을 꼼꼼하게 한다고 천천히 하고 있다면?
사장님은 당신이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지켜보지 않는 것 같아도 어느 정도는 느끼고 있습니다. 사장님이 지켜보지 않는다고 해서 대충 하거나 게을러지면 안 됩니다. 누군가는 지켜볼 것이고, 나중에 작업한 것을 확인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기술을 배울 때의 습관이 기술자로 독립했을 때에도 이어집니다. 배울 때 착실한 습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장님이 지시한 것만 하라고 하여 사장님이 지시한 일이 없으면, 가끔 멀뚱히 서서 가만히 있는 분들 있습니다. 사장님이 지시하기 전에 찾아서 하세요. 주변 정리하거나, 공구를 잘 챙겨 놓거나, 빗자루로 청소라도 하길 바랍니다. 할 것이 없다면 사장님에게 물어보세요. 현장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모습은 본인도 힘들고, 사장님도 답답해할 것입니다. 지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현장을 정리해 주면, 사장님도 편해집니다. 일일이 지시하는 것도 사장님 입장에서는 번거롭고 힘든 일입니다.
내 공구 아니라고 거칠게 다루거나, 아무렇게나 내팽개 쳐 놓으면 안 됩니다. 사장님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당신의 공구가 아니라고 마구 다루는 모습을 사장님이 보면, 당신이 사용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사장님과 현장에서 공구를 같이 사용하게 되면, 사용한 공구는 반드시 공구통이나 정해진 곳에 잘 놓아야 합니다. 아무 데나 놓으면 서로 찾아야 하고, 그러다 보면 시간도 가고 짜증도 납니다. 사용한 공구 중 닦아 놓아야 할 것(시멘트 묻은 공구)은 그날 일을 마감하기 전에 닦아 놓고, 정리한 후 현장을 나와야 합니다. 이런 습관을 들이지 않는다면, 당신이 독립해도 정리 안 합니다. 처음 습관이 중요해요.
생각 없는 손짓, 발짓 하나가 제품에 손상시킬 수도 있고, 제품이나 공구를 망가트릴 수 있으며, 이미 시공한 다른 작업물을 망쳐 놓을 수 있습니다. 작업하려고 할 때는 번거롭더라도 공간을 잘 확인하고, 공간이 없으면 물건들을 옮겨 공간을 만들고, 쓰레기 치우고 주변 정리하면서 해야 합니다. 더러워지거나 먼지 묻으면 안 될 것들이 있다면 다른 곳으로 옮겨 놓거나 보양하고 해야 합니다. 자신의 실수로 제품이나 공구, 그리고 현장이 망가진다면 안 되겠죠?
사장님과 식사할 때, 사장님과 가능하면 같은 메뉴로 선택합니다. 그렇게 해야 사장님과 동질감을 형성할 수 있어요. 별로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지만, 작은 것 하나라도 닮아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장님이 뭔가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죠.
사장님이 고객과 상담할 때, 자신이 좀 안다고 끼어들면 안 됩니다. 사장님이 생각한 것이 있어서, 고객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조용히 듣기만 하고(듣기만 해도 도움이 많이 됨), 궁금한 점이 있다면 나중에 사장님께 조용히 물어보세요. 현장은 모두 사장님의 책임입니다. 집주인과 부담감을 가지고 상담하고, 작업을 진행하는데, 일 배우는 입장에서 눈치 없는 행동을 하면 일을 난감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다칠 수 있는 상황은 많아서, 일일이 모두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작업 중 부상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죠. 무거운 연장이나 제품들은 허리에 무리 가지 않는 자세로 들어야 하며, 혼자 옮기기 힘든 것들은 사장님이나 다른 분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무리하지 마세요. 그라인더, 드릴, 전기톱 등 전동 공구를 이용할 때는 사용방법에 맞게 안전하게 다뤄야 합니다. 사용방법을 잘 모르는 공구는 사장님에게 배우고 충분히 연습한 후 다뤄야 합니다. 사장님이 지시한 것 중, 다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면 안전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물어봐야 합니다. 먼지 많은 현장은 작업용 마스크를 구매하여 끼고, 장갑은 필수입니다. 보호안경도 필수입니다. 작업을 하다 보면 눈으로 튀는 것들도 많습니다.(제 작업용 안경에 긁힘이 많아요) 안전화도 신어야 하고 그 외에도 필요한 안전장구는 갖추고 해야 합니다. 귀찮다고 생략하면 안 됩니다. 자신의 몸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자산입니다. 큰 부상은 기술자의 꿈을 접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정에도 큰 위험이 될 수 있습니다.
사장님과 일하기로 했을 때, 하루 일당과 지급 시기(월 단위로 정산할지, 한 현장이 끝날 때마다 줄 것 인지)를 정해야 합니다. 사장님도 당신이 일 배우러 오기로 했다면 어떤 일을 시킬지, 그 일이 얼마나 힘들지, 사장님 자신에게 어떤 이득이 될지, 당신에게 어떤 것을 알려줄지 생각하고, 일당을 결정합니다.
당신이 해보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일에 대해 사장님께 하루 일당으로 얼마를 달라고 요구할 수 없는 것이죠.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하루 일당은 사장님이 주는 데로 받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저처럼 최저시급보다도 작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자가 되기 위해 일을 배우고 경험하러 간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사장님 입장에서는 당신이 없어도 일하는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 당신이 있다면 신경 쓸 일만 더 생길 수도 있습니다. 물론, 당신이 청소나 정리를 해 주면 조금 편해지기는 하겠죠. 그리고 사장님이 견적서를 작성할 때 금액을 넉넉하게 넣을 수 없는 상황도 생깁니다. 처음에는 사장님이 생각하는 데로 받으세요.
사장님 말씀 잘 따르고 현장 일이 어느 정도 손에 익어서 당신도 한 사람 몫을 할 경우에는 사장님이 일당을 (기술자 일당만큼은 아니겠지만) 높여 줄 것입니다. 한 사람 몫을 잘해 내고 있는데, 일당을 높여주지 않을 때는 사장님에게 조심스럽게 말씀드려 보세요. 이때에도 사장님이 일당을 높여주지 않는 다면, 이제 독립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짠돌이 사장님과는 오래 일을 같이 할 수 없습니다.
[이너바스 이실장 명언-6]
이너바스 이실장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