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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너바스 이실장 Dec 14. 2023

베짱이의 출생

1화 - 천재 메뚜기가 태어나다.

나는 베짱이다. 사람들이 나를 메뚜기라고도 하고, 여치라고도 한다. 내 이름은 베짱이!!!


난 알에서 태어났어. 알에서 태어나면 유명해지는 거 알랑가?  아주 오래전 아시아 극동지역에 고구려의 시조 주몽왕도 알에서 태어났고, 그 옆나라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임금도 알에서 태어났다. 또 그 옆나라 '가야'라는 나라에서도 김수로왕이 알에서 태어났지. 알에서 태어났고 모두 왕이 된 거야. 나도 알에서 태어났으니 그 사람들처럼 유명하고 특별한 메뚜기 왕이 될 것이 분명해!!! 나는 아주 특별한 메뚜기야. 그 이름도 유명한 "베짱이 왕"이다!!! 헛헛헛!

메뚜기의 왕 베짱이

나는 알 안에서 내 몸이 점점 커져갔어. 아직 아무것도 보이는 것은 없었지. "아휴 답답해!!! 여길 언제쯤 나갈 수 있는 거야" 알껍질을 작은 손으로 툭툭 처 봤지만 부드러운 알껍질에 구멍조차 낼 수 없었지. "어! 이거 방탄인가? 왜 이렇게 단단하냐?" 나는 힘을 길러야 했어. 알을 깨고 나가려면 지금의 내 힘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지. 좁은 알 속에서 손 발도 움직여보고 뒤척여가며 나 혼자 힘을 길렀어. 언젠가는 이 좁은 알집에서 나가게 될 거야. 준비를 해야지. 알을 깨고 나가면 어떤 일이 있을까? 엄마 아빠는 어떤 메뚜기일까? 알을 깨고 나가면 무엇을 해야 할까? 내 마음에 드는 짝꿍을 만날 수 있을까? 혼자만의 꿈과 희망에 부풀어 있었지.


며칠이 지난 것 같다. 알 속에서는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몰라. 그냥 내 느낌이야. 드디어 나는 알을 깰 아니 찢고 나올 만한 힘이 생겼어. 내 뾰족한 앞발로 힘껏 알을 푹 찌르니 알에 상처가 생겼어. 상처가 생간 곳을 내 앞발로 계속 공격했어. 한 곳만 집중 공략하면 뚫리게 되어 있지. 그게 세상의 이치야. 여러 군데를 두드리며 이것저것 해 보는 것보다 약한 부분 한 곳만 노리는 거야. 그러면 어렵지 않게 뚫리게 되어 있어. 드디어 알이 찢어지며 구멍이 생겼지. 나는 그 구멍을 벌려 알에서 나올 수 있었어. 내가 알을 힘들게 깨고 어렵게 나오고 있는데도 엄마 아빠는 도와주지도 않는 거야. 무심한 엄마 아빠! 살짝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


아마도 엄마 아빠 메뚜기는 '나 베짱이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도와주지 않고 나 혼자 만의 힘으로 나올 수 있도록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 거야!' 


'이것저것 아이가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해줘 버리는 엄마 아빠보다는 낫지 머. 엄마가 다 해주면 아이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잖아. 어려운 일이 있어도 인생은 나 혼자 헤쳐나가야 하는 거야. 이제부터 나의 결정으로 내 인생은 결정이 되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알을 깨고 나왔어. 난 어린아이에게도 자기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데 이상하단 말이야. 난 분명히 알을 깨고 나왔는데도 아직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뭐지? 

내 촉감으로 보자면 차가운 작은 돌과 흙만 내 주변에 가득한 느낌이었아. 아! 난 땅속에 있는 거구나. 내 수명이 다 되어 죽었을 때나 땅 속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지금 태어나고 있는 건데 왜 땅 속에 있는 거지? 할아버지들이 죽을 때쯤 하는 말이 "땅으로 되돌아간다!"라는 말이 이해가 갔어. 땅 속에서 태어났으니 그 땅으로 돌아간다는 말이었던 거야. 나는 위쪽을 앞발로 파고 조금씩 올라갔어.


이건 너무 힘든 작업이야. 알을 깨고 나오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어. 공간도 없어서 앞발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지.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도 고팠어. 그런데 주변에 흙과 돌뿐이라 먹을 게 없는 거야. 이러다 땅 속에서 나오기도 전에 굶어 죽어 그냥 땅에 묻히는 거 아니야? 점점 힘도 떨어지고 지쳐갔어. 할아버지들이 "당 딸어졌다!"라고 하는 게 이런 느낌일까? 얼마나 더 파 올라가야 밝은 빛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 잠시 멈춰 생각해 보니 알껍질을 먹으면 될 것 같았어. 그러려면 내가 다시 알 쪽으로 파 내려가야 했지. 


나는 선택을 해야 했어.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알 쪽으로 다시 파내려 가서 알을 배불리 먹고 다시 올라오던가, 아니면 조금만 더 파면 땅속을 벗어날 수도 있기 때문에 계속 파올라 가던지. 태어나자마자 나는 선택을 해야 했던 거야. 인생은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라는 말이 생각이 나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내 인생이 달라지는 거지. 아니 이건 죽고 사는 문제야. 다시 파내려 가는 것이 귀찮고 힘들어서 계속 파 올라갈까? 아니면 다시 땅을 파내려 가 알을 먹고 올라올까? 어떻게 할까? 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였어.  태어나자마자 이런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다니, 베짱이 인생이 앞으로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생각해 보자. 만약 이대로 땅 위에 올라간다고 해도 내가 먹을 수 있는 먹이가 바로 옆에 있다는 보장도 없잖아. 그렇게 되면 열심히 땅을 파고 올라간 보람도 없고, 더 중요한 것은 어렵게 태어난 내 메뚜기 인생이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끝난다는 거야.

어렵게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단 한 번의 모험적인 선택으로 내 생명을 저버리기엔 너무 아까웠어. 내 인생의 삶과 죽음을 걸고 도박하기는 싫었어. 나 베짱이는 다시 알 쪽으로 파 내려갔지. 이게 뭐 하는 짓이야. 헛고생했잖아.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아쉽더라도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하나 알게 되었지. 좋은 삶의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하자!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나는 다시 땅을 아래로 파고 내려갔어. 다행히도 땅이 잘 파져서 파내려 가는 것은 파 올라오는 것보다는 수월했지. 알껍질로 배를 가득 채우고, 남은 알껍질 덩어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버리기엔 아까웠어. 다시 배가 고프면 어떡해! 며칠 동안 땅을 파올라 가야 할 수도 있잖아. 나는 알껍질 덩어리를 입에 물고 땅을 다시 파 올라갔어. 몇 시간이 지났지만, 나에게는 며칠이 지난 것 같았어. 이제 조금만 더 파올라 가면 땅 속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다른 곤충들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으니까.


드디어 마지막 돌을 치우고 땅 속을 나왔어. 세상은 빛으로 밝았고 시원한 바람이 내 더듬이를 간지럽혔어. 드디어 나는 태어난 거야. 그리고 나 혼자만의 힘으로 알을 깨고, 혼자 힘으로 땅을 파서 올라온 거야. 나는 대단해. 나는 감격해서 눈물을 살짝 글썽이며 먼 곳을 쳐다보며 우두커니 서있었지. 내 힘으로 알을 깨고, 내 힘으로 땅을 파 올라온 거야. 그 기쁨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지. 성취감이라는 것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지.

아참!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엄마 아빠를 불렀어. "엄마~, 아빠~ 저 베짱이가 알을 깨고 땅 속에서 나왔어요. 어디에 계세요?" 있는 힘껏 불러보았지만 엄마 아빠는 나타나지 않았어. 엄마 아빠는 나를 두고 어디에 간 거지? 나는 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혼자 남겨진 거야. 아빠 엄마 없는 불쌍한 베짱이!!!


난 엄마 아빠가 없는 고아가 된 거야. 한동안은 엄마 아빠가 없는 고아라는 생각과 함께 나 혼자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모든 의욕을 잃고 말았어. 식욕까지도. 메뚜기 보육원을 내 힘으로 찾아가야 하는 걸까? 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아이인데 말이야. 


나는 생각을 고쳐먹었어. 난 알에서 태어난 대단한 메뚜기야. 나는 힘도 세고 머리도 좋은 천재 메뚜기야. 혼자 이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을 거야. 난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어. 부모 없다고 비관하는 건 나랑은 안 맞아. 아이를 학대하는 못된 부모가 있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리고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태어난 것도 너무 감사해. 비관 적인 상황에서도 상 감사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놔야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거야.


내가 태어난 환경을 탓하고, 부모를 원망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어. 내 인생만 망가질 뿐이야. 한번 아파하고 털어내자. 그래! 정신 차리자. 엄마 아빠가 없더라도 신나게 한 세상 살다 가면 그뿐 아닌가?

나는 특별한 메뚜기야! 알에서 태어났으니까. 나는 특별하니까! 난 혼자 자수성가할 몸이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에 먹을 것들이 지천에 널려있는 거야. 신선한 먹이를 골라 먹으며 내 몸을 키워 나갔어. 굳이 나를 낳아놓고 사라진 엄마 아빠가 이젠 생각나지도 않아. 그래! 그런 슬픈 기억은 생각 안 하는 게 나한테 좋아.



1화 끝! 다음화에 계속~


이너바스 이실장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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