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그림에서 시작된 저의 개인적인 상상과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브람스의 간주곡 2번 가장조 op.118과 함께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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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조안나. 가장 좋아하는 색은 하얀색.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친구들과 함께 정원에서 꽃을 돌보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부터 나의 하루 일과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아침 6시 30분이 되면, 내 방 창문으로 하얀 햇살이 선물처럼 내려오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눈을 뜬다. 아, 세상에 살아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 거실로 나가면,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가 아침을 하고 계신다. 어머니와 간단한 아침을 먹고, 내가 직접 뜨개질한 작은 가방에 그녀가 싸주신 과일을 넣고 집을 나선다. 학교에 도착해서, 요새 배우고 있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공부하고 나면, 친한 친구들을 만나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한 후, 가끔은 쇼핑을 가기도 하고, 집에 돌아와 피아노를 치기도 한다. 아, 사실은 대부분의 시간을 나가서 보낸다. 나는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고, 심지어 우리 과의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한 번쯤은 모두 나를 좋아해 본 적이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체한다. 가끔은 데이트를 하기도 하지만, 진지한 관계로 발전한 남자는 한 명도 없었다. 나는 그렇게 사랑받고, 사랑하고, 거의 항상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지낸다.
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소피. 난 그녀가 싫다. 그녀는 나의 친구 중 한 명(사실 친구라 부르고 싶지 않다)인데, 매일 우울해하고, 불평불만이 가득하다. 가끔은 슬픈 표정으로 내 눈을 바라보곤 하는데, 그게 나에겐 역겹게 느껴진다. 문제는 그녀는 나와 매일 만난다는 거다. 수업에서 마주칠 때도 있고, 길을 가다가 만날 때도, 열명이 넘는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슬그머니 그 사이에 껴서 침울한 표정으로 날 바라볼 때도 있다. 한 번은 우리 집에 놀러 온 적이 있다. 아, 물론 내가 초대한 것은 아니다. 아마도 그녀를 좋아하는 우리 어머니가 초대하셨겠지. 그녀는 이상하게 소피에게 마음이 간다며, 그 친구에게 잘해주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난 그녀가 싫은걸. 눈을 반쯤 감고 있는 것도 싫고 매일 짜증 나는 노란색 옷만 입는 것도 싫다. 가끔은 그녀가 내 립스틱을 따라 사서 바르곤 하는데, 그럴 때면 소피에게 욕을 퍼부어주고 싶다.
어느 날은, 어머니의 강요에 못 이겨 그녀와 함께 쇼핑을 간 적이 있다. 나는 쇼핑을 좋아하지만 소피와 함께 하는 쇼핑은 정말 지루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건 정말 지루한 일이었다.
“그 노란색 옷은 그만 입고, 예쁜 하얀색 옷을 좀 사자. 네 얼굴 톤에 그 색깔은 맞지 않아.” 나는 날카롭게 말했다.
“이건 노란색이 아니라 크림색이야. 그리고 내 눈엔 이게 예뻐.” 소피는 지지 않고, 그러나 내 눈은 마주치지도 못하고 대답했다.
짜증이 확 나자, 그녀의 손을 이끌고 눈에 보이는 여성복 가게에 들어갔다. 그리곤, 눈에 보이는 레이스가 달린 하얀색 원피스 하나를 꺼내 그녀의 품에 안겨주었다.
“이거 입어봐.” 내가 짜증 내며 말하자,
“싫어.” 그녀는 으르렁댔다.
“그럼 난 너 두고 갈 거야. 너 알아서 해.”
소피는 내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슬픈 눈을 하고는 옷을 가지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그래, 그녀는 내가 그녀와 '놀아주지 않는다고' 하면 또 말을 그렇게 잘 듣는 것이다. 참으로 멍청한 아이 아닌가!
탈의실에서 나온 그녀는 꽤 아름다웠다. 하얀 원피스가 그녀의 얼굴을 더 밝게 만들어주었고, 가느다란 허리가 돋보여 예뻤다.
“봐봐, 내 말이 맞지? 훨씬 낫다니까.” 나는 코웃음을 치며 그녀의 어깨를 톡톡 쳤고, 그녀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 식으로 우리 관계는 흘러갔다. 그녀는 어찌 되었든 나와 함께 있고 싶어 했고, 나는 그녀가 싫은데도 강제로 그녀와 함께 있어야 할 때가 많았다. 가끔은 부모님에 의해, 가끔은 교수님에 의해, 심지어 정말 아무 이유도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가 내 옆에 있을 때가 많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작은 수제가방 가게에 취직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곳의 상사였다. 상사는 나를 괴롭혔고, 말도 안 되는 업무를 시키기도 했다. 나는 손재주가 좋아서 혼자 가방을 만들거나 옷을 만들곤 했는데, 상사는 나에게 아주 시시한 일들만 시키는 것이다. 커피를 타라던지, 책상 정리를 하라던지 하는 것들을. 한 번은 못 견딘 내가 그녀에게 대들었는데, 그녀는 곧장 나에게 욕지거리를 날리고는 나를 해고해 버렸다. 그날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날이었다. 잘못한 게 없는데도 욕을 먹고,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내가 살아온 방식이 아니었다. 그때 내 옆에는 노란색 옷을 입은 소피가 있었다. 집에 가는 길 공원 벤치에 앉아 맥주 한 캔을 마시면서 울먹이고 있는데, 그녀가 어디선가 나타나 내 옆에서 함께 맥주를 마셔주었다. 별 말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옆에 앉아있기만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것이 아주 위안이 되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그렇게 힘든 일들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친했던 친구들이 갑자기 떠났던 날도 있었고, 첫사랑과 울며불며 헤어진 날도,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도. 참 이상하게도 그때 항상 내 옆에 있었던 사람은 소피였다. 여전히 그 노란 옷을 입고, 슬픈 눈을 하고, 차가운 손으로 내 어깨를 토닥여줬다.
“괜찮아. 그런 날도 있는 거야.” 고작, 그 한 마디를 하고는, 내가 괜찮아질 때쯤 그녀는 다시 돌아갔다.
그 많은 일들을 겪고서도, 여전히 나는 하얀색 옷을 좋아하고, 빨간색 립스틱을 바르고, 자신감 있는 미소를 띤 채 살아갔다. 엄마가 남기고 간 하얀 소파에 누워서 책을 읽거나 사색에 잠길 때가 많았는데, 어느 날, 굉장히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날은 화창한 토요일이었고, 친구와의 약속도 없고, 남자친구도 연락이 없어서 그저 비스듬히 누워서 홀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요새 나의 취미는 텔레비전으로 오케스트라 연주를 보는 것이었는데, 그날 내가 선택한 곡은 브람스의 간주곡이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 곡을 듣는데,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의 왼쪽에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그 서늘한 감정이 나를 덮쳤다.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내 옆을 바라보았고, 그곳에 소피가 있었다. 여전히 그 노란 옷을 입고, 슬픈 눈을 한 채로. 나를 쳐다보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깨달음. 그것은 아주 빠르고 직감적으로 다가왔다. 언제나 내 곁에 있었던 소피, 그녀는 나, 조안나였다. 내가 그토록 혐오하고 밀어내고 싶었던 그녀는, 또 다른 나였으니.
나는 몸을 일으켜, 그녀의 파란 두 눈을 응시했다. 그리곤, 그녀의 노란 원피스 아래 차갑고 서늘한 몸을 끌어당겨 내 품에 안았다.
그녀의 몸이 내 온기로 따뜻해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