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르누아르의 그림에서 시작된 저의 개인적인 상상과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모차르트의 곡 클라리넷 협주곡 가장조, K.622:2. Adagio와 함께 읽으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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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투. 내가 살고 있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의 이름이자, 나의 강아지 이름이기도 하다. 강아지 이름을 샤투로 지은 이유는, 그 아이를 이곳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샤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우리 마을의 가장 나이 많은 노인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매년 그 노인이 곧 돌아가실 것이라고 장담하곤 했으나, 그 노인은 소문 후로도 10년을 더 살았다. 그의 실제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저 그가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는 것만은 알았다. 아주 작고 귀여운 하얀색 강아지, 품종은 아마도 말티즈라는 것 같았다. 샤투에 봄이 찾아온 어느 아침, 그 노인은 아침으로 스크램블에그와 소시지 한 개, 호밀빵 하나를 구워 먹은 후, 깨끗한 흰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잠에 들었다. 그 곁을 작은 강아지가 지키고 있었다.
그 노인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작은 강아지 하나만 남겨둔 채로.
사람들은 노인이 죽은 것을 일주일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것도 그의 마지막을 발견한 사람이 나였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그날도 평소와 같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씻고, 노란색 밀짚모자를 쓰고, 회색조끼와 회색바지를 입은 채로 집을 나섰다. 별 일이 없다면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샤투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 하얀색, 푸른색, 붉은색, 노란색의 다채로운 꽃들이 초록빛 풀들의 물결 속에서 헤엄치는 작은 숲으로 가곤 했다. 봄이면 그곳은 나의 푸른색 눈을 더 푸르게 채워주었고, 가끔 다리에 달라붙는 작은 벌레들조차도 아름답게 보이게 했다. 빛들이 나의 어깨와 꽃들의 화사한 얼굴에 사뿐히 내려앉을 때면 나는 엄청난 행복감을 느끼곤 했으니, 그날도 그곳으로 갔던 것이다.
단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곳에 샤투, 그래, 이젠 나의 강아지인 그 작은 말티즈가 슬픈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에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그 아이는 들국화를 한 곳에 모아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 강아지가 너무나도 작고 하얘서, 심지어 꼼짝도 않고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강아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어색한 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사람만 보면 그렇게 꼬리를 흔드는 이 작은 생명체를,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는 풀밭에 작은 흔적들을 남기며 내 앞으로 다가와, 꼬리를 흔들었다. 슬픈 눈으로.
그때 나는 직감했다. 이 강아지는 노인의 강아지야. 그리고 그는 아마 지금 이곳에 없어. 그 사실을 깨닫자, 나는 밀짚모자를 손으로 푹 눌러쓰고 노인의 집 쪽으로 달려갔다. 차가운 이슬이 맺힌 풀잎들이 내 발목을 촉촉이 적시고, 강아지는 나를 따라 폴짝폴짝 뛰었다.
장례식은 조촐하게 치러졌다. 가족도, 친구도 없던 노인의 장례식은 마을 측에서 비용을 대서 진행했고, 우리 모두 그 사실에 이의는 없었다. 그는 마치 우리 마을의 수호신 같은 존재이기도 했으니. 문제는 그날 이후부터 강아지가 나를 따라왔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엔 강아지를 밀어냈으나, 그 아이는 끈질기게 내 앞에 나타났다. 특히, 아침에 나만의 푸른 작은 숲에 가면 그는 시간을 어떻게 알고 그곳에 나타나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살게 되었다. 딱히 동물을 좋아하지도 않고, 키워본 적도 없는 내가, 샤투와의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귀찮고, 강아지가 무엇을 먹는지도 몰라서 밥을 먹고 남은 것을 던져주곤 했다. 강아지에게 관심이 없었던 내가,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나만을 따르고, 마치 그의 온 세상이 나밖에 없다는 듯 행동하는 모습에 연민과 동시에 무언가 알 수 없는 따스한 감정이 느껴졌다. 후에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은 샤투가 음식을 게워낸 일이 있었다. 노란색 토였는데, 그는 힘 없이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쿵하고 밑으로 떨어지는 기분에, 나는 손을 덜덜 떨면서 그를 안아 들고 마을에 단 하나뿐인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의사는 아무거나 먹이면 안 된다며, 사료를 줘야 한다고 나를 질책했다. 다행히도 샤투는 다시 건강해졌고, 그날 나는 또 다른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샤투가 열살쯤 되었다는 것이었다. 너무 작고 여려서 새끼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나이가 많았다.
샤투와 사계절을 함께 보냈다. 나는 모자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데, 모자를 만드는 시간에도, 손님을 맞을 때도, 가게 문을 닫을 때도 그는 항상 내 곁에 함께 있었다. 한 번은 그를 위해 아주 작은 모자를 만들어 준 적이 있다. 작은 노란색 밀짚모자였는데 모자가 떨어지지 않게 얇은 끈으로 리본을 만들어 그의 머리에 씌워주곤 했다. 그는 밀짚모자를 정말 좋아해서 만들어준 다른 모자들은 쓰지 않았지만 그 모자만큼은 군말 않고 썼다. 마치 내가 쓰는 밀짚모자를 자신도 썼다는 듯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내 앞에서 꼬리를 한껏 치켜올리고 서있었다.
샤투는 나처럼 작은 숲을 사랑했다. 그곳에서 그는 마음껏 뛰어놀며, 들국화, 미나리아재비, 양귀비꽃의 향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왈왈 짖기도 했다. 가끔은 책 하나를 가져와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인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틀어놓고 읽고 있으면 내 무릎 위에 올라와 잠이 들기도 했다. 보송보송하고 부드러운 그의 털은 내 체온과 함께 어우러져 우리 사이의 공기를 포근하게 만들어주었다.
샤투와의 행복한 시간은 8년 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7년째 되던 해, 그는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았다. 초롱초롱하게 나를 바라보던 그 큰 눈망울엔 하얀색 막이 끼인 듯, 그의 시야를 가로막아버렸고, 급기야 그의 윤기 있는 털들이 푸석푸석 메말라가며, 통통한 분홍빛의 배도 홀쭉하게, 점점 말라갔다. 그럼에도 그는 단 한 가지, 나와의 아침 산책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나의 품에 안겨 매일 아침 상쾌한 숲의 공기를 들이마셨고, 끙끙거리며 꽃의 숨결을 느끼려고 고개를 쭉 빼기도 했다. 나는 그런 그를 어루만져주고, 작은 숲에 앉아 한참 동안 온몸에 빛을 받으며 그를 응시했다. 마치 그 빛이 그를 치유해주기라도 하는 듯이.
어느 새벽, 항상 내 옆구리에 자신의 배를 대고 잠에 들었던 그가 내 옆에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거실로 나가보니, 구석에, 하얀색 꽃들이 수놓아진 쿠션 위에서 그는 편안히 눈을 감고 잠들어 있었다. 아니, 닿을 수 없는 먼 길을 떠났다.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나는 그의 옆에서 한참을 울었다. 소리 없는 울음이 내 눈에서 흘러 흘러, 내 볼에 여러 갈래의 투명한 길을 냈다.
나는 그를 우리의 작은 숲의, 그의 하얀 털색과 닮은 들국화가 아름답게 피어있는 곳에 묻어주었다. 그 앞에 내가 직접 새긴 작은 비석과 그가 사랑했던 조그마한 밀짚모자를 둔 채. 그리곤, 그곳에 한참을 서있다가, 들국화를 한 움큼 꺾어 품에 꼭 끌어안고 앞으로 걸어갔다. 하늘은 푸르렀고, 나무와 풀들은 봄바람에 살랑거렸다. 나는 잠시 멈추었다. 멈출 수밖에 없었던 건, 샤투를 만나고 몇 년동안이나 큰 나무에 가려져 있던 센강이 나무들 사이로 조심스레 얼굴을 내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센 강에 반사되어 생긴 하얀 빛조각들이 물결의 리듬에 맞춰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들국화가, 흩날렸다.
여전히 그는 이곳에 있다는 듯, 샤투의 봄이 내 눈앞에서 하얗게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