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 트리상점이 열렸다.
서둘러 가지 않으면 마음에 드는 나무를 고를 수 없기 때문에 12월이 되면 사람들이 트리상점으로 몰렸다. 나무를 고르고 흥정이 끝나면 직원이 밑둥이 잘린 전나무를 트럭 짐칸이나 자동차 지붕에 끈으로 묶어 실어 주었다.
그리고 나면 집안 어디를 뒤져서 장식이 든 상자를 찾아 왔다. 트리 장식 상자를 여는 일은 흥분되다 못해 엄숙하기까지 한 행사인 듯했다. 아이들은 숨을 죽이고 상자가 열리는 순간을 지켜보았다.
대를 이어 사는 글랜데일의 가정은 가보가 될 만한 오너먼트 몇 개씩은 가지고 있었다. 장식 하나를 꺼낼 때마다 장식에 얽힌 이야기 하나씩이 딸려 나왔다.
윤이와 기숙 씨는 니나의 상자를 함께 연 적이 있다. 상자는 그녀의 다락에 있었다. 천장에 달린 줄을 당기면 나무 계단이 딸려 내려오는 오래된 다락이었다. 사다리가 약한지 후들거려서 몸이 가벼운 윤이가 올라가서 가져왔다.
상자에는 트리장식 말고도 다른 것들이 많이 들어 있었다. 부활절 토끼도 들어 있고, 새 둥지 모양으로 생긴 계란 바구니도 있고, 아이들이나 봐야 뭔지 알 수 있을 정체 모를 구조물도 나왔다. 추억이 하나씩 더해지느라 상자를 푸는 데만도 종일이 걸렸다.
나무 꼭대기에 예수님 별을 다는 것은 가장 작은 아이 몫이라고 했다. 별을 다는 영광은 윤이에게 돌아갔다. 예수님 별이 나무 위에 걸리고 점등식을 하고 나면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 열렸다.
크리스마스였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아이들은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다. 학교를 마치면 윤이도 곧장 교회로 갔다.
청년들이 트리를 세우고 장식을 하는 동안 윤이는 유아반 아기들에게 율동을 가르쳤다. 아이들을 실어 나르고 먹이고 하느라 부모들도 바빠졌다. 12월 내내 예배당과 교회 마당에는 불이 환하게 밝혀지고, 엄마와 아빠들은 번갈아 가면서 국수를 삶고, 떡국을 끓이고, 피자를 주문했다.
기숙 씨도 저녁이면 교회로 갔다. 유치뷰 아이들에게 빨간색 체크천으로 치마와 반바지를 만들어 입히는 일도 그녀 몫이었다.
“크리스마스는 무슨 날이지요? 파티하는 날?”
“아니요~”
“선물 받는 날?”
“아니요~”
“그럼 무슨 날이지요?”
“예슈님 태어 나신 날~”
아이들이 제 얼굴 만한 마이크를 잡고 작은 입을 열심히 벌려서 대답할 때마다 언니 오빠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대학으로 떠났던 아이들도 다시 돌아왔다. 준의 야윈 얼굴은 전보다 나아 보이지 않았다. 뭐라도 해서 먹이고 싸보내고 해야 할 텐데 미국식 크리스마스 음식은 추수감사절과 별 차이가 없었다. 준이에게 그런 식의 상차림은 일 년에 한 번이면 족했다.
그러는 준이라도 버펄로윙이라면 좋아라 했다. 한국식 치킨과 닮은 익숙한 맛이기도 했지만 그에게 슈퍼볼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인 듯했다.
기숙 씨와 윤이를 앞세워 버펄로윙을 먹겠다고 뉴욕주의 버펄로까지 간 적도 있다. 별점을 보고 찾아 간 식당은 뜻밖에도 허름한 시골 동네 선술집이었다. 맛집이라기에 번듯한 식당이겠거니 생각한 기숙 씨와 남매는 주차장에 차를 대기도 전에 낭패다 싶었다.
통나무 식당의 삐걱거리는 문을 열자 남자들(이라는 것은 모두 남자들뿐이었다는 뜻이다)의 시선이 일제히 그들에게로 향했다. 자욱한 실내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문고리를 잡고 서있는 그들에게 한 남자가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체크 남방에 멜빵바지를 입고 있는 그 남자는 일을 끝내고 한 잔 걸치러 온 마을 사람인 듯했다.
메뉴판도 없고, 카드도 안 되고, 돈은 미리 받겠노라고 친절하게 알려 준 나이 든 웨이터가 추천한 버펄로윙의 맛은 기가 막혔다.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 그 멜빵바지 남자가 눈을 맞추며 손에 쥔 맥주잔을 들어 보였다.
기숙 씨는 크리스마스 오찬으로 버펄로윙과 갈비와 로스트비프를 하기로 했다. 미리 덜어서 얼려 놓으면 준이에게 들려 보낼 수 있을 것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대형 트리를 보러 록펠러 센터에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성탄절의 계획은 그녀 뜻대로 흘러가주지 않았다. 식사를 다 마치기도 전에 레이철에게서 엄마인 젠에게 가봐달라는 전화가 왔던 것이다.
젠은 불이 꺼진 실내에 혼자 앉아 있었다.
레이철에게 듣기로 변호사를 대동해서 왔다는 유대인 건물주는 이미 돌아간 뒤였고 레이철도 가게에 없었다.
그녀는 한인거리에서 카페를 하고 있었다.
한인거리에 흔히 있는 한국식 디저트를 파는 곳이었다. 한인타운에 가면 두 집 걸러 한 집일 만큼 이미 포화 상태라 젠으로서는 막차를 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의외일 것도 없이 장사는 안 됐고 그럴수록 가게에 더 매달리면서 젠이 기숙 씨의 베이커리에 발을 끊은 것도 그즈음이었다.
카페에 돈을 댄 사람은 양사장이라 불리는 여자였고 젠은 이른바 명의사장이었다.
양 씨와 젠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보석상에서 영업직으로 일하면서 만났다. 순금을 주로 취급하는 도매상으로 두 사람의 영주권 스폰서가 돼주고 있었다. 순금은 흑인들만 한 고객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사는 동네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두 사람이 일하던 보석상도 브루클린에 있었다.
보석상에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강도가 들었다. 경찰이 와도 별 수가 없다는 것을 경찰도 알고 주인도 알고 강도도 알고 있어서 경찰은 신고를 받아도 알아서 안 왔고 주인들은 쇠창살을 치고 총을 사서 스스로를 지켰다. 그래도 자리를 잡고 지역주민으로 받아들여지면 생각만큼 위험하지는 않다고 했다.
의심 많은 중국인 사장은 가게를 지키는 일은 혼자 했다. 젠과 양 씨가 하는 일은 한인 소매점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일이었다. 중국인 보석상이 영주권 스폰서를 하면서까지 한국인 직원을 두는 이유였다.
양 씨의 남편은 멕시코인이었다. 남편 호르헤 역시 같은 보석상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라티노 특유의 쾌활함과 탁월한 영업 능력으로 중국인 사장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는 중국인 사장에게 보석을 받아서 슈트케이스에 담아 미국 전역으로 팔러 다녔다.
그렇게 돈을 모은 양 씨 부부는 브루클린을 벗어나 한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서 카페를 열고자 했던 것이다. 젠이 먼저 영주권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양 씨는 자본을 대고 젠은 명의를 대는 형식으로 둘 다 사장 직함을 달았다. 명목상은 동업이라지만 젠은 한 푼 보태지 않았으므로 분수를 지켜가며 일했다.
“왜 하필 휴일에 이 난리래. 그 사람들은 쉬지도 않는데?”
크리스마스에 집주인이, 그것도 변호사까지 대동해서 찾아오는 일은 이례적이고 무례한 일이었다.
“연락이 안 되니까 문 열리는 거 보고 있다가 들이닥친 거래.”
“연락이 왜 안돼? 가게 문 안 열었었어?”
“응. 양사장이 겨울이라 장사도 안되니 좀 쉬자고 해서... 오늘은 대목이라 혹시나 해서 문을 열었던 건데.”
“레이철 말로는 자기를 보러 왔다던데? 자기를 왜 찾아?”
“양사장이 연락이 끊겼다나 봐. 사업자는 내 명의로 돼있다 보니까.”
장사가 안되자 양사장이 젠에게 다 떠 넘기고 잠적을 한 모양이었다.
“월세가 얼마나 밀렸는데?”
“넉 달 안 냈대.”
젠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넉 달 치 월세라면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그것 만이 아니고.. 밀린 유틸리티 비용이 만 불이 넘는대요.”
“전기나 가스, 수도세 그런 거 아냐? 뭐가 그렇게 많아?”
“아무래도 양사장이 맘먹고 한 일 같아. 장사가 안 돼도 그렇게까지는 아니었거든. 장사는 거의 내가 했잖아. 내가 못 가져가서 그렇지 월세하고 관리비 낼만큼은 나왔단 말이야.”
기숙 씨는 젠의 어리숙함에 기가 찰 지경이었다. 그녀의 말은, 월급까지 반납해 가며 죽어라 일한 돈을 양 씨가 몇 달에 걸쳐 챙겨 달아나도록 눈치도 못 채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래? 변호사는 뭐 어쩌라고 같이 온 거고?”
안된 마음과는 말이 곱게 나가지지 않았다.
“보증금으로 두 달치 까고, 두 달 월세만 더 내면 남은 계약 기간은 면제해 주겠대. 대신 밀린 유틸리티 비용을 해결하고 시설만 철거해서 원상복구 하래요.”
그러나 건물주가 제시한 금액도 만만한 액수는 아닌 것이 문제였다.
“그게 다 얼마나 되지?”
“철거비가 얼마나 될라나… 다 해서 한 삼사 만 불 될라나.”
젠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기숙 씨도 울고 싶어졌다.
삼사 만 불이면 먹고 죽을래도 없는 돈이었다. 그 돈을 양사장이 다 들고 튄 것을 생각하니 미칠 노릇이었다.
“사는 게 왜 이래.”
참아왔던 감정이 터져 나오는지 젠이 발을 탁탁 구르며 부르짖듯이 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