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은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심성도 여리고 야물지도 못했다. 그런 그녀가 혼자 레이철을 키우며 영주권을 받아낸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을 한 거라고 늙은 여인들은 말하곤 했다.
거기다가 레이철의 발병까지, 그녀의 상황은 이미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고 있었다.
그동안 자잘한 속임을 당한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무르기만 한 그녀에게 도대체 학습이라는 게 없는지 자꾸 어려운 처지로 자신을 몰아갔다. 남편이 꼭 있어야 하는 여자가 존재한다면 그녀이겠는데 어쩌다가 혼자 미국으로 올 결심을 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몇 해 전 그녀의 남편이 아주 오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착한 남편은 누이 집에 살며 돈울 벌어 보내오고 있었는데,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내와 딸이 있는 미국으로 올 준비를 했던 것이다.
육 개월짜리 관광비자로 들어와서 어떻게든 해 볼 생각이었다. 남편이 올 결심을 하자 젠은 단비 맞은 꽃처럼 생기가 돌아서 그가 미국에 정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다녔다.
“노스 캐롤라이나나 조지아 같은 데 닭공장은 어때? 5년만 일하면 영주권이 나온다매.””
늙은 여인들도 덩달아 분주해져서 베이커리에 모일 때마다 그녀의 남편 걱정을 했다
“그게 언제 적 얘기야? 지금은 신분 없는 사람은 뽑지도 않는대요.”
“알래스카에 가면 금방 받는다는데?”
“그거 다 헛소문이야. 물가도 비싸고 고용도 까다롭기로 유명한 데가 거기야. “
직업만 구한다면 일자리는 있었지만 영주권을 받아야 하는 게 문제였다. 불법체류는 말 그대로 불법이라 발 딛고 살기도 쉽지 않았다.
“왜 다들 미국땅으로 들 못 와서 난린지. 한국도 먹고 살만 하다더만.”
교표 중에서도 가끔씩 쥐어박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럴 때면 늙은 여인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미국 사람들도 한국 살러들 가는데 한국은 영주권 받기가 더 힘들대요. 서로 오가면서 사는 거지."
그러나 서로 오가면서 사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의 관광비자가 거절된 것이다. 바로 무비자 입국도 거절되었다. 젠이 영주권 과정 중이었던 데다가 그가 서둘러 직장을 그만둔 것이 원인일까 추측되었지만 알 수없는 일이었다.
젠은 남편을 대장장이라고 불렀다. 레이첼이 숙제로 외워가던 롱팰로우의 ‘마을 대장장이의 노래’에 나오는 주인공이라고 했다. 그녀는 딸이 시를 읽을 때마다 혼자 몰래 눈물을 흘렸다. 누이 집에 얹혀살며 혼자 견디고 있을 남편이 생각나서였다.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는 게 분명했고 그녀의 착한 남편도 틀림없이 그럴 텐데 생이별과 다름없는 상실의 애통이 자꾸 헛발을 딛게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매주 시작부터 끝
아침부터 밤까지
그의 풀무질 소리가 들리고,
일정한 간격으로 천천히
마치 예배당지기가 교회종을 울리듯이
그는 무거운 망치를 내리친다.
해가 질 때까지 그의 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열린 문을 통해
타오르는 용광로를 구경하고
풀무가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타작에서 일어나는 겨같이 날아다니는 불꽃들을
잡으려고 애쓰며 즐거워한다.
일요일이 되면 그는 교회에 가
아들들과 앉아서
목사님이 기도하고 설교하는 것을 듣는다.
성가대에서 노래하는
그의 딸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의 가슴은 기뻐 요동친다.
그에게는 마치 아이의 엄마가
천국에서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 같아서
새삼 무덤에 누워있는 아내를 떠올리며
딱딱하고 거친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