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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음 Oct 24. 2024

세상이 그들을 지우기로 했다면

성식이가 죽었다. 

바람이 한 점 없던 날, 먹색 하늘을 메운 구름이 소박눈 되어 흔들흔들 내리던 날, 윤이가 허방을 짚는 발길질로 구르듯이 들어오다가 제 발에 걸려 풀썩 넘어지며 어린애같이 울었다. 

제이콥이 죽었대. 

발이 풀린 기숙 씨가 진열대를 짚고 한 바퀴 도는 것을 준이 잡아서 의자에 앉혔다. 

사인은 약물과다이었다.


한국으로 가 있어야 할 아이는 한국이 아닌 뉴욕의 어느 허름한 스튜디오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자퇴를 해서 연고가 없어진 아이의 주검은 어디 먼 데를 돌고 돌다가 보름이 지나서야 학교로 찾아온 모양이었다. 

윤이가 빛과 소금에 갔다가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미 장례를 치르고도 한참이 지난 뒤였다. 학교에서 쉬쉬하는 동안 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성식이 엄마인 은영 씨는 뉴욕에서 만난 이후로 연락을 끊었다. 그녀가 뜸하다며 궁금해들 했지만 기숙 씨는 아무 얘기도 해주지 않았다. 은영 씨가 돌아올 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어서였다. 

기숙 씨의 입에서 나온 얘기가 눈먼 말이 되어 돌아다니다가 그녀의 귀에라도 들어간다면 늙은 여인들이 있는 베이커리로 돌아올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무심하게 전해진 존재감 없던 아이의 부고는 이제야 폭풍이 되어 불어닥친 듯했다. 날이 저물기도 전에 한인 엄마들이 베이커리로 몰려왔다. 저마다 믿을 만한 혹은 못 믿을 만한 소문들을 하나씩 들고서였다. 

그들은 발 빠르게 급전통을 돌려서 이미 시신과 함께 땅에 묻힌 사건을 다시 끄집어 내 부검을 시작했다.

누구는 발견된 장소가 중독자들의 아지트였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마약 조직과 연루된 사건이라고 했다. 

귀로 들은 말이 입으로 가는 동안 거치게 되는 머리통에서 각각의 뇌의 기량대로 증폭 돼버린 무엄스러운 난도였다. 

권력을 잡은 자가 진실을 호도하면 수군거리는 사회가 되는 것처럼, 성식이의 죽음에 대한 불명확성이 주는 불안감이 동병상련의 부모들을 끝없이 추측하도록 몰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들의 분투가 도를 넘어서 막말로 이어지려는 순간 안 쪽 테이블에 떨어져 앉아있던 수지가 박차듯이 일어났다. 미세스바이라고 불리는 배 씨가 일치감치 와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가, 성식이 엄마는 장례도 마치기 전에 부리나케 도망갔다대, 하고 난 뒤였다. 

“은영이가 도망가는 거 당신이 봤어?”

“미세스 리야, 장례를 안 치른 것도 아니고 도망간 게 뭐 어때서?  그 사정 모르는 사람 여 있어요?" 

바이의 목이 메는가 싶더니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맥없이 꺾인 수지가 의자에 도로 주저앉았다. 사실 바이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불체자 신분으로 그랬대도 뭐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만 아이의 장례식이 얼마나 조촐했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다시 미어졌다. 


한 풀 꺾인 분위기가 파장으로 이어져 여자들이 자리를 뜨고 수지와 조앤만이 남았다. 

“성식이가 학교를 그만뒀었다는 게 무슨 말야. 아는 사람 있어?”

“아이가 전에도 마약 문제가 있었어요. 강제 출국 당하기 전에 미리 한국으로 보내려고 했던 것 같아요.”

기숙 씨가 숨 죽은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은영이가 돌아가려고 했다고?”

“아이 아빠가 미국에 계셨던가 봐요. 따로 계셨던 것 같은데...,  아빠가 함께 가신다고...”

지난 일을 되짚어 가던 과거 어느 시점마다 멈칫멈칫 발길이 멎었다. 기숙 씨의 입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무래도 제가 잘못한 거 같아요. 말했어야 했는데”


그날 이후로 늙은 여인들은 은영 씨를 찾으러 다녔다. 광고는 이미 내려져 있었고 전화도 닿지 않았다. 집도 비운 후였다. 그들은 각자 시간이 날 때마다 그녀가 다녔다는 뉴욕의 거리들을 돌아다녔다.

신기하게도 사진작가들 중에도 그녀를 봤다는 사람은 커녕 안다는 사람도 없었다. 그녀가 있었다는 증거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한 남자아이가 태어났고 살았고 죽어서 이 먼 땅에 묻혔다는데 그 아이의 탄생과 삶과 죽음을 이야기해 줄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찾는 것을 그만두기로 한 날 기숙 씨는 마지막으로 그녀를 만났던 월스트리트의 작은 테이크아웃 카페를 찾아갔다. 카페는 폐업을 한 것인지 그녀가 찾지 못하는 것인지 이곳이라고 생각한 자리에 없었다. 세상이 은영 씨와 성식이의 존재를 지우기로 했다면 놀랄 일도 아니었다. 


성식이의 묘는 뉴저지의 공원에 있었다. 늦은 조문에는 늙은 여인들과 윤이가 함께 했다. 보자기만 한 아이의 묘에 눈이 내리고 녹고 다시 내려서 지층 같은 구릉이 덮여 있었다. 

얘야 어떡하다 그랬니. 어쩌다 그랬니. 

기숙 씨는 자꾸 자기의 탓인 것처람 느껴졌다. 아이가 깊은 중독에 이미 빠져 있었다면 그녀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녀가 과묵했던 탓에 기도할 기회조차 놓쳐버린 늙은 여인들의 애통은 또 다른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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