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은 선생님들의 단골 메뉴였다.
칠판을 지울 때 같이 지워지는 부분을 덧 써넣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싹 지우고 다시 쓰는 식으로 항상 칠판의 한쪽 귀퉁이에 적혀 있었다.
그분들이 전해 주고 싶었던 메시지는 마지막 연이었을 것이다. 어른이 된 기숙 씨 역시 이 시를 아이들 눈앞에 펄럭여 주고 싶은 충동을 여러 번 느꼈었다. 그러나 사춘기의 아이들에게 속이 보이는 노골적인 비유는 직설적으로 말하느니만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
시를 빌어 잔소리를 하려는 의도만 거둬낸다면 마지막 연만큼 그녀를 오래 고민하게 한 문장도 많지 않았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것을 깨닫게 될 인생의 먼 훗날이 도대체 언제인가 하는 고민 말이다.
“도대체가 뭐 마무리되는 게 없긴 하지.”
기숙 씨가 프로스트의 시 얘기를 꺼냈을 때 수지가 말했다. 자신도 정리가 안 돼서 횡설수설했던 것 같은데 찰떡같이 알아들은 수지의 대답에 그런가 하는 심정으로 되물었다.
“내 말이 그런 뜻야?”
“내가 미국에 처음 와서 말야, 영어도 안 되는데 할 일은 산더미인 거라. 다 관공서 일이니 스트레스가 말도 못 했지. 미국 공무원이 어떤지 다 알잖아.” "
악명 높은 미국의 공무원을 상대하는 일이었다니 얼마나 진이 빠졌을지 말 안 해도 다 알았다. 게다가 영어도 안 될 때였다니.
“죽자고 뛰어다녀도 마무리되는 일이 없는 거야. 서류가 더 필요하다, 부서가 다르다, 담당자가 근무 시간이 아니다. “
“아휴, 징글징글하다.”
“그지? 저녁에 녹초가 돼서 들여다보면 해결된 일은 하나 없고 그 위에 또 새 일 얹히는 거지.”
“그거 우리만 그런 거예요? 우리가 여기 살아서?”
조앤이 심각한 얼굴로 되물었다.
“다른 사람들이야 내가 아나, 우리가 그렇다는 거지. 사는 게 도대체 마무리라는 게 없어. 오죽하면 우리 이름이 늙은 여인들의 여름일까.”
수지는 준이의 일로 기숙 씨를 위로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준이는 더 이상 말이 없었고 학교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준이보다 먼저 한국으로 돌아간 사람은 젠과 레이철이었다. 젠은 살던 집을 정리한 보증금과 남편이 보내준 돈을 합쳐 가게 빚을 갚고 비행기표를 샀다.
선택이 오롯이 레이철의 몫으로 주어졌을 때 그녀가 기숙 씨를 찾아왔었다. 기숙 씨는 교수님에게 레이철의 케이스에 관한 슈퍼비전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결정할 사람은 레이철 자신이어야만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단순히 환경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알아낸 바로는 네임이는 한국어를 할 줄 몰랐다. 그동안 영어로 된 상담을 해왔기 때문에 놓치고 있었던 네임이의 정체성이었다. 두 사람이 한국어로 상담을 진행하면서 알게 된 중요한 사실이었다.
그들은 영어로만 대화한다고 했고 한국 방문 중에는 네임이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추측되었다. 추측이라고 한 것은 레이첼조차도 그 사실을 처음 깨달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네임이를 만난 적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확실하게 대답을 해내지 못했다. 돌아가기로 결정한다면 네임이를 잃을 각오도 함께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기숙 씨를 찾아온 날 아침 레이첼은 중요한 결정을 말하러 온 사람답지 않게 가벼운 어투로 돌아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내가 결정할 일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무심한 듯하지만 흔들리는 눈동자로 말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오히려 맘이 편해요.”
기숙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힘든 결정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개입이나 지지없이 알아서 말하도록 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꼭 가야 하는데 내가 안 간다고 하면.”
레이첼이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엄마 앞에서는 절대로 보이지 않았을 모습이었다. 안쓰러웠지만 이 또한 그녀의 결정이었다. 강한 아이였다.
생각해 보면 레이첼은 언제나 강했다. 그녀는 삶의 순간마다 강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이들의 폭력에서 자신을 지킬 때도, 사람들로부터 네임이를 지킬 때도, 자신의 상담자를 스스로 선택할 때도 그녀는 언제나 강하고 당당했다.
레이첼은 엄마를 대신해서 차를 팔고, 살림살이를 중고 사이트에 올리고, 이삿짐을 보내고, 이민 가방 네 개를 터질 듯이 꾸려 놓았을 때까지 잠잠하다가, 아무것도 남지 않은 빈 집이 되었을 때 기숙 씨게 전화를 해서 다시 돌아와도 되느냐고 물었다. 미국인으로 살았지만 연고라고는 없는 레이첼의 비빌 언덕이 그녀였을까. 마음 붙일 친구 하나 만들지 못한 땅이었음에도 이곳을 돌아올 집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었다.
네임이가 없을 수도 있는 삶이 어떤 것인지 가보기 전에는 알 수 없기에 기숙 씨는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도록 방 하나를 비워두겠다고 했다.
때로는 재회의 여지를 주는 인사가 더 완벽한 이별이 될 수 있는 법이다. 언제든지 돌아오라는 말은 반드시 가야 할 사람을 보낼 때 쓰는 말이다.
그렇게 젠과 레이첼은 그들의 남편이며 아빠인 착한 가장이 사는 한국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