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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음 Oct 24. 2024

인터미션에는 커튼콜이 없다

11학년을 위한 주니어 프롬파티가 열렸다.  

아침부터 윤이와 친구들이 집에 모여서 손목에 묶을 코사지를 만들고 화장을 하느라 속옷 차림으로 돌아다녔다. 윤이의 드레스는 오프솔더에 시스루 퍼프소매를 단 남색 머메드 롱드레스였다. 온라인 마켓에서 45불에 주문한 것으로 맞춘듯이 딱 맞아서 손 댈 데가 없었다. 디자인이 파격이라 할 만했지만 이미 윤이는 미국아이가 되어 엄마의 손을 벗어나고 있음을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이름도 미국식 이름을 공식적으로 쓰고 있었다. 


아무리 단정한 입음새를 강조해도 단정하다는 말의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단정함과 노출의 연관 관계에 대해 이해시키기 보다, '가려!'라고 말하는 것을 더 잘 알아들었다. 그렇다고 말을 듣는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평상복이라면 몰라도 파티에서 몸의 일부가 드러나는 꼭 끼는 드레스를 입는 것은 윤이에게는 예의에 속했다. 

일 세대가 지나가고 일 점 오 세대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었다. 앞으로 그녀는 자신의 기치관 많이와 엄마의 교육 조금을 힘입어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만들어 갈 것이다. 


그리고 준이도 그랬다. 스무 살이 된 남자가 살 곳을 스스로 정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다. 

준이는 한국의 대학에 진학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말로 설명하는 대신 모든 준비를 일부러 눈에 띄게 했다. 서류들은 다 볼 수 있게 집 곳곳에 놓았고 국제 전화도 들으라는 듯이 기숙 씨가 있는 데서 했다. 

아포스티유를 받아내고 원서를 쓰는 일이 착착 준비되고 있는 듯했다. 아무도 등 떠밀어 주지 않는 그 복잡한 일들을 놀랍게도 준이는 아주 잘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준이가 비로소 말로 꺼낸 것은 일의 마무리가 되어갈 때쯤 이었다. 그는, 들을 준비가 돼있어?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이없게도 자신이 오래 기다려 줬다는 투였다.

“언제나 준비가 돼있었어.”

“그럼 내가 오해했네. 난 엄마가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어.”  

“어떻게 그래? 니가 나한테 잘못 살았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녀는 또 어겨라고 말했다. 그만 헤어지자는데 아이 기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엄마는 뭐에 화가 난 거야? 내가 한국으로 간대서? 엄마 말을 안 들어서?”

“여기 사는 동안 넌 돌아갈 궁리만 했잖아. 엄마 때문에 오게 됐다고 원망하면서.”

“그럼 내가 어떻게 했어야 해? 좋은 척하고 살았어야 해?”

준이는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은 끝내하지 않았다. 

기숙 씨는 준이 느끼는 절망감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지만 굳이 자신을 이해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설명하려고 한다면 내가 누구 때문에 여길 왔는데로 시작해서, 내가 니들을 어떻게 키웠는데를 거쳐, 내 인생은 어디 갔냐에 이르는 홀어머니 전용 넋두리 삼종세트가 다 나와줘야 했다. 

욕심으로는 남매가 모두 이 땅에 잘 정착해서 엄마의 판단은 옳았으며, 그러므로 엄마의 삶은 고단한 중에도 가치가 있었다고 말해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녀의 여름이 끝나고 당당하게 늙어갔으련만 준이는 끊임없이 뒤돌아보며 엄마가 억지로 떼놓은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돈은 어떻게 할 계획이야?”

아무래도 자신의 마음을 설명할 재주가 없는 그녀가 말을 돌리며 물었다.

“내가 알아서 하기를 바라?”

“대학을 간다면 등록금하고, 방은 있어야 하니까 렌트비는 엄마가 내줄 거야. 여기 있었어도 해 주기로 한 거니까.”

그녀 역시 마음의 준비를 하며 매일 계산하고 준비했던 말을 했다. 아이가 주립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장학금을 받고 있었으므로 상대적으로 학비가 싼 한국 대학이라지만 부담이 만만치가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내년엔 윤이도 대학을 가야 했다. 

“생활비는 벌어야 할 거야. 부지런히 일해서 렌트비까지 보태면 좋고.”

“땡큐, 맘. 이해해서 주는 게 아닌 거 알아.”


준이가 5월 말일로 돌아갈 날짜를 잡고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날이 풀리면서 가게도 바빠졌다. 기숙 씨는 매일 우유를 졸이고, 홍차를 우리고, 에끌레르에 아이싱을 입히는 일에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몸이 고되면 생각이 없어진다는 말은 그녀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일인 듯했다. 반죽을 하염없이 젓고 있노라면 오만 가지 생각이 졸여지기 직전의 우유처럼 끓어올랐다. 이런 다념이 끓어 넘치지 않도록 숟가락 하나를 푹 꽂아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늙은 여인들이었다. 

은영 씨가 사라지고 젠이 돌아가고 난 뒤 늙은 여인들의 여름은 수지와 조앤과 지나를 중심으로 다시 모이고 있었다. 에디는 보석이 되어 학교로 돌아왔고 학교에서는 교사를 지정해 모든 수업을 아이와 동행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이들이 기숙 씨가 빵을 굽는 밤 시간에 대부분 함께 있어 주었다.


“자식은 부모의 면류관이라는데,” 

기숙 씨가 말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이어지는 말이 없자 수지가 우유를 젓고 있던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 키워봐야 아는 거지.”

“이만큼 키웠으면.”

"모르는 소리 한다. 아직 멀었어. 끝나야 끝나는 거지."

“그런 거예요?”

조앤이  대신 물었다. 작은 아들인 존이 사춘기를 지나고 있어서 애를 먹고 있다고 했다.

“그렇더라고. 중간에 누가 잘하고 있다고 박수라도 쳐주면 좋겠는데 그런 건 없더라고.”

지나의 눈이 붉어졌다.

“그러다 누가 그 세월을 어떻게 살았느냐고 묻는 날이 오면, 아 내 여름이 끝이 났구나 하고 생각하겠지.”

“그 세월을 어떻게 살았느냐고 묻는 날이 오면.”

기숙 씨가 수지의 말을 되뇌며 말했다.

“그래. 어느 젊은 늙은 여인이 나를 선생 삼는 날이 오면.”


준이 떠나기 전 날 세 사람은 거실에 요를 깔고 함께 누웠다. 오전에 JFK 공항까지 가려면 일찍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었다. 

기숙 씨는 쌀을 씻어 밥솥에 안쳐두고 미역을 불려 바로 끓일 수 있게 준비해 두었다. 현관 앞에는 이민 가방 두 개와 슈트케이스 하나를 미리 내놓았다. 

막상 짐을 싸려고 하니 가져갈 것이 많지 않았다. 가방에 넣은 것보다 방에 남겨둔 것들이 더 많았다. 

아이가 쓰던 학용품과 운동기구들, 악기, 액자와 상패, 각종 사진과 앨범, 주차장에 묶여있는 자전거의 열쇠, 전자기기와 용도를 알 수 없는 무수한 선들이 박스에 차곡차곡 담겨서 방 한쪽에 놓였다. 아이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대로 담겨진 채 유물로 남을 것들이었다.

아마 그녀가 죽고 난 뒤에 누군가 정리하며, 

"와서 이것 좀 보겠어? 이런 걸 버리지도 않고 잘도 모셔놨네?"

할 공산이 크다고 기숙 씨는 생각했다.

한국땅에서 나서 사십 년은 살았는데도 아이를 보내려니 연락할 곳이 없었다. 가서 따로 연락하겠다는 제 아빠를 제외하면 마중은 고사하고 지낼 방이라도 알아봐 줄 일가붙이 하나가 없었다. 

준이는 그녀가 미국에 처음 와서 겪었던 그 모든 과정을 제 나라에서 겪어내야 할 것이었다. 


 불을 끄고 누워 있으니 깜깜한 통창으로 벌써 반딧불이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날이 눅눅해질 모양이었다. 깜깜한 허공에 대고 기숙 씨가 오래된 사슬에 녹을 닦아내는 듯한 목소리로 엄마와 아빠의 헤어진 이야기를 들어 보겠냐고 물었다. 준이 역시 허공에 대고 엄마의 일일 뿐이라는 뜻의 영어로 대답을 했다. 윤이가 듣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기숙 씨는 어느 물안개가 올라오는 호숫가로 시작되는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밤으로는 끝나지 않을 어떤 늙은 여인의 여름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 아이들은 깜빡깜빡 졸다 깨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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