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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음 Apr 01. 2024

나는 태엽시계를 차고 키루나로 간다

 키루나는 스웨덴의 라플란드에 속한 도시다. 북극에서 200킬로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최북단이라 할 만하다. 얼음 호텔 말고 이곳이 유명한 다른 이유는 '무빙 키루나' 때문이다.


 말하자면 도시 하나를 그대로 옮기는 작업이란다. 상상이 되는가. 집 하나 교회 하나를 땅에서 떠서 트레일러에 싣고 옴팡 옮긴다는 거다. 멀리도 안 간다. 고작 3킬로 움직이자고 4억 달러가 넘는 비용을 들여 마을을 통째로 옮기는 중이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들이 선택한 방법이다. 광산 개발로 지반이 침수되자 개발을 멈추는 게 아니라 마을을 들어내기로 한 것이다.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철광석과 구리 생산량을 보면 포기하긴 무리다싶긴 하다.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 굳이 건물 전체를? 하는 거다. 아주 기술도 첨단이다.


 사실 이 지역의 주인은 원주민인 샤미족이라고 한다. 목축을 업으로 하는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당연히 이주가 아니라 채굴을 멈추는 것이다. 광산 위 지표면은 대대로 순록을 방목해 온 목초지다. 첨단 기술은 다 됐고 이 일로 순록을 먹일 이끼가 줄어들까 봐 그게 걱정인 사람들이다.

 옮길 것이 아니라 새 도시를 건설하자는 목소리도 있었을 테고 죽어도 못 간다는 사람은 왜 없었겠는가. 얼마나 많은 전쟁을 치렀을지 남의 일이지만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픈 와중에,


 이 상황을 케이크에 비유한 한 주민의 인터뷰가 그럴 듯했다. 케이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기정사실인데 토핑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개인의 이익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거다. 뻔한 얘기지만, '남이사!'로 들려서 괜히 뻘쭘해졌다. 어쨌든 키루나는 지금 이사 중이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시간'이다. 그들이 보존하고자 하는 것이 문화라고 한다면, 문화는 집이 아니라 생활 방식이라는 것을 그들도 안다고 했다. 그런데도 굳이 집이며 교회며 회관을 떠서 옮기는 이유는 그들만의 시간 사용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간은 어차피 제 갈 길을 간다. 그 속에서 각자의 속도대로 살아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땅 속에서 철광석을 캐고, 어떤 사람은 그 위에서 순록을 치고, 어떤 사람은 집을 통째로 들고 이사를 간다. 하, 얼음 호텔을 얼리는 사람도 있다.


 나한테는 할아버지의 손목 시계가 있다. 돌아가시고 나서야 겨우 내 차지가 된 그 시계 말이다. 할아버지가 밥을 준다던 시계다. 어린 마음에 난 한참 동안 그게 진짜로 밥을 먹는 줄 알았다. 시시하게 태엽을 감는 건 줄 알았다면 그토록 애타게 호시탐탐 노리지도 않았을 거다. 그런데 이게 뜻밖에 물건이다. 생각해 보라. 태엽을 감아 줘야만 시간이 가는 것이다. 내가 밥을 먹이는 그 시간 만큼은 내 고유의 시간이다. 나를 놔두고 너무 빨리 가버리는 시간을 쫓아가느라 가랑이가 찢어진 뱁새가 나다. 매일 t' 만큼 앞서 가는 사람들을 향해 가슴을 움켜쥐고, "틀렸어, 먼저 가.."를 외치며 이불 위로 쓰러지던 나다.


 나는 북극에서 200킬로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키루나로 간다. 자신만의 속도대로 시간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다. 남이 내준 월세방 보증금을 찾아서, 우주 고양이 미루와 함께 대륙을 거슬러 올라가, 배를 타고 밤이 긴 키루나로 간다.

 누가 알겠는가. 운이 좋다면 짧은 낮 동안에 눈을 퍼내고 얼음을 깨 집을 들어내는 광경을 볼 수 있을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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