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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음 Mar 18. 2024

갈 뻔했던 곳으로 다시

 믿기지 않겠지만 북극이라고 불리는 지역에 갈 뻔한 적이 있다. 거의 갔다고 봐야 한다. 부모의 지원을 받아 살아도 부끄러움이 없던 나이에 남이 주는 돈으로 당당하게 유럽을 다녀왔다. 우리 대학 동기 세 명은 이탈리아 북부 어디에서 식당을 한다는 모르는 친구의 매제의 후배의 아무개 되는 사람이 운전하는 낡은 푸조를 타고 국경을 넘나들었다. 

 나중에 합류한 만큼 이미 만들어진 일정에 이의가 없는 나였지만, 떠나기 전에 혹시 원하는 게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북유럽 일정을 추가할 수 있겠느냐고 묻긴 했다.


 착한 동기들은 난감해하는 낯빛 없이 '간 김에'라고 하며 최대한 일정을 조정하고자 했다. 그때는 내가 경험이 없어서 몰랐지만 '간 김에'라고 하기에는 말도 안 되게 큰 변동이라는 것을 나중에 깨닫고 미안했다. 아마 계획을 처음부터 뒤집어엎어야 했을 것이었다. 아무튼 역시 경험 부족인 이 혈기 넘치는 자유 여행가들은 여기저기서 7일이라는 시간을 빼내 결국 북유럽 일정을 추가해 내고야 말았다. 


 복병은 이탈리아 북부의 어디에 산다는 친구의 매제의.... 그 모르는 사람이었다. 공항에 우리를 픽업 나온 그는 초면에 컹! 하고 코웃음을 쳤다. 북유럽이라구요?


 그의 설명은 이랬다. 차가 있으니 비행기는 제외하자. 자, 러시아를 가로질러 갈 생각이 아니라면 폴란드로 가서 발트 3국을 지나 배를 타고 핀란드로 가거나, 독일을 가로질러 올라가 배를 타고 스웨덴이나 핀란드로 가거나, 덴마크로 가서 배를 타고 노르웨이나 스웨덴으로 가거나. 

 덴마크에서 스웨덴으로 가는 육로가 있기는 하지만 그 구간만 12시간을 넘게 운전을 해야 하는 거리다, 그랬다.


 안 되는 이유는 또 있다고 했다. 날씨였다. 때는 겨울이었고 북유럽의 기온은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지고 있긴 했다. 무식하고 젊은 혈기에 추위가 문제 될 것은 없었으나 문제는 타이어였다. 노르딕 3국은 스노타이어 장착이 의무였다. 타이어 교체 비용만 천 유로가 넘게 들었고 또 원래 타이어를 맡아 줄 서비스센터를 찾아야 했다. 무엇보다 눈이 많지 내리지 않는 서유럽에서 눈타이어를 구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저 말간 얼굴로 쳐다만 보는 우리한테 분명히 욕처럼 들리는 이탈리아말을 뭐라고 중얼거린 그는 다 포기하고 어느새 배편을 알아보고 있었다.  


 독일 북쪽의 맨 끝 작은 항구도시에 마침 싼 배편이 아직 남아 있었다. 트라베문드라고 하는 지도에도 나와있지 않은 마을이었다. 핀라인을 이용해 헬싱키까지 30시간이 넘는 항해였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에서 아우토반을 달려 항구로 가는 도중에 뜻하지 않은 눈폭풍을 만나고 말았다. 스노타이어는 장착도 하기 전이었다. 항구에 도착했을 때 승선은 이미 끝난 뒤였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헬싱키 항구의 바다가 얼어서 입항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대부분의 도로는 눈으로 막혔고 관광지도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친구의 매제의 아무개 되는 사람이 우리를 위로하겠다고 한 말이니 믿거나 말거나지만 어쨌든 그랬다. 연일 폭설로 오로라 지수도 바닥을 쳤다.


 한 번 해봤다는 게 이렇게 무섭다. 아무리 나라도 그 길을 되짚어가는 일이 영 불가능하다 싶지 않다. 눈치챘겠지만 여전히 나는 지도 위에서 널을 뛰고 있고, 고양이 미루 녀석의 시간과 내 시간이 따로따로 흐르기 시작한 것만은 틀림없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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