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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음 Mar 04. 2024

또 쟤네들이야???

 '만약'으로 시작되는 문장들을 반나절은 생각할 때가 있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시간이 싫지는 않다. 일부러 그러는 걸 수도 있다. 과거를 되짚어 보고 후회한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희망이 남아있다는 소리다. 두려운 것은 발전이다. 생각이 생각에서 그치는 동안은 발전적이란 게 없어도 된다. 막말로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나의 만약은 늘 시제가 과거다. 금을 하나 긋는다고 생각해 보자. 금을 밟고 지나온 시간 쪽으로 선 다음 한 걸음씩 걸어가는 거다. 내 관점으로는 내림차순이고 시간의 관점으로는 올림차순이다. 발이 멈칫하는 순간마다 멈춰 서서 만약이 들어간 문장을 끝도 없이 생각한다. 그때 그랬다면 지금 이랬을까 하는 것들이다.


 또 그래서 나는 미래를 가정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계획이라고 부르는 것 말이다. 영어권에서는 'if' 말고 미래를 가정하는 관용구가 따로 있다고 하는데 주로 나쁜 일을 가정할 때 쓰인다고 배웠다. 'what if'다. 눈 속에서 길이라도 잃게 된다면? 순록이나 곰이라도 맞닥뜨린다면? 미루 녀석이 창 너머로 달아나기라도 한다면? ... 이런 거다.


 그도 그럴 것이, 북유럽의 표지판을 보면 내가 괜히 걱정이 많은 것이 아니다. 

 어떤 표지판 사진에는 <여기서 도로 끝!>이라고 돼 있는데 그 뒤로도 눈 덮인 길이 계속 나있다. 그럼 그 길 다음엔 뭐가 있다는 거지? 

 노란 표지판에 <경고!>라고만 써놓고 사격 범위를 알리는 것도 있다.

 스웨덴의 길거리에 눈과 얼음이 녹고 있다는 경고판도 심상치 않다. 눈과 얼음이 거의 빙하급이다. 


 웬 설원의 눈구릉 앞에는 <교회 앞>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있는데 거기 적힌 문구가 아주 희망적이다. <다 잘될 거야!>. 교회는 눈더미 밑에 있는 것 같다.

 야영지는 오프로드카도 안되고, 스노카도 안되고, 모터사이클도 안되고, 그냥 사이클도 안되고, 말도 안 되고, 개도 안되고, 야영도 안된다. 순록하고 곰만 된다. 걔들 야영지였던 거다. 하. 

 수영은 해류가 있어서 안되고, 낚시는 나무 선착장이 약해서 안되고, 댐 근처는 언제 물을 방류할지 모르니 위험해서 출입금지고, 해변에 돌을 던지지 말라는 경고판도 있는데 그 이유가 해변은 목욕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란다. 목욕은 할 수 있다 치자. 돌은 왜 던지는 거지? 이러니 what if.. 일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을 무릅쓰고 꼭 가야 한다면, 이 되는 것 없고 아는 것 없는 나라들에 가고자 하는 것은 몇몇 표지판에 나타나 있는 동물에 관한 사랑과 위트 때문이다. 

 스웨덴의 한 표지판에는 닭과 병아리와 고양이가 그려져 있고 이렇게 쓰여있다. "또 쟤네들이야???"

 주택가의 고양이가 그려진 경고판에는 "교통법규 같은 거 모르는 고양이들이 여기 살아"라고 돼있는데 그림 속의 고양이들이 아주 늘어진 상팔자다. 

 노르웨이 엘크 경고 표지판은 도로에만 있는 게 아니다. 산에도 있고, 숲에도 있고, 주택가에도 있고, 사람은 절대 없을 법한 설원에도 있다. 내 생각에는 둘 중 하나다. 설원이 원래는 도로였든지, 아니면 사람 보라고 만들어 놓은 표지판이 아닌 거다. 


 이런 표지판도 키루나의 개썰매 경고 표지판에 비하면 그래도 이해 가능이다. 도로에 개 썰매 하나만 떡하니 그려놓고 뭐 어쩌라는 건지. 가능한 해석은, 개썰매가 다니니 차는 조심할 것! 정도다. 썰매와 차가 같이 쓰는 도로다. 곰도 엘크도 순록도 같이 쓴다. 고양이와 닭도 쓴다. 가끔 엘프도 쓴다. 트롤하고 펜리르도... 이러니 what if.. 일 밖에. 그래도 뭐니 뭐니 압권은 시뻘건 경고판이 맞긴 맞는데 눈이 덮여 보이지 않는 표지판들이다. 아, 이러니 wha...


 북유럽으로 가고자 한 것은 아니다. 딱 표지판들이 눈에 띄었을 뿐이고 그러다 보니 그만 시작도 하기 전에 기가 꺾이고 말았다. 소심해진 내 눈에는 뭐가 안 되는 게 많은 표지판들이 거기 사람들의 배타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것처럼 생각됐던 거다. 그러나 미루 녀석으로서는 어쩌면 거기가 천국이다 싶다. 북한산 고양이가 아니라 노르딕 고양이가 될 판이다. 고양이에게 더 친절한 사람들이 미루에게, 또 너냐?라고 말 걸어줄 게 틀림없다. 그러나 배타적일 거라는 건 어쨌든 들은 말이고 속단은 무지다. 일반화도 오류다. 가보기 전엔 모르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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