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주음 Feb 19. 2024

 암호명, 북한산 고양이 프로젝트

 나는 50일을 몰아서 나가있으려고 한다. 사람들이 보통 여행이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원래 나같은 사람에게 중간이란 없다. 런던의 포그 씨처럼 한꺼번에 50일간의 외출을 하는 것이 우리 방식이다. 여기서 나 같은 사람이란 뭣에든 빠지기 쉬운 유형의 사람들을 말한다. 보통 중독적 성향이 강한 타입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냥 집착이 강한 정도라고 하고 싶다.


 <타르박사와 페더교수의 시스템>은 정신병 치료법이라고 한다. 어딘지 이상해 보이는 원장과 더 괴상해 보이는 직원들이 있는 남프랑스 정신병원에서 고안된 방법이다. 병원을 방문한 한 남자는 화려한 식사 자리에 초대되어 이 치료법에 관한 설명을 듣는다. 그러나 환자를 치료하다 같이 미쳐버렸는지 기괴한 직원들의 광기가 극에 달할 때쯤 가둬두었던 정신병자들이 탈출하는 사건까지 일어나고 만다.


 몸에 타르와 깃털이 범벅인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대며 난입한다. 미치광이들과 더 미치광이 같은 직원들과 타르와 깃털이 난무하는 가운데 밝혀진 진실은 이렇다. 미친 수용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의사와 직원들을 가두고 그들 행세를 한 것. 그러니까 타르와 깃털이 범벅인 비명을 질러대며 난입한 자들이 진짜 의사와 직원들인 것이다. 페더교수 어쩌구 하는 치료법도 다 미친 소리란다. 여기서 오해 마시길. 불편한 용어들은 이 소설에 나오는 100여 년 전의 정신분석학적 단어를 그대로 인용했을 뿐이다.


 단순한 플롯에 비해 내용은 쉽지 않은 소설이다. 작가인 포우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미치지 않은 척하는 미친 사람들의 이 길고 장황하기는 한데... 어렵다. 뭔 소린지 모르겠다. 읽다 보면 내가 미친 건가 싶다. 안 미친 척했던 그들이 사실은 미쳤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안도감마저 든다. 그건 그렇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집착에 관해서다. 자유를 얻은 그들이 원한 것은 병원을 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남아서 의사 노릇을 하는 일에 집착한 것이다. 당시의 정신분석학적 기준으로 볼 때 미쳤다는 기준이 모호하기도 하다. 광기로 몰고 간 감이 좀 있긴 하지만 내가 말하는 집착이란 이런 종류다.


  다시 말하지만 그렇다고 안 나가겠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해결해야 할 일들의 순서를 정하려고 한다. 가장 우선적인 일은 우리 집 고양이 미루다. 사실 돈이 우선이었다가 집이 우선이었다가 왔다갔다 하긴 한다. 백한가지 이유를 대라면 댈 수도 있지만 집을 봐줄 사람이 없고, 돈이 없고, 고양이를 맡길 데가 없다는 세 가지 이유로도 못 나갈 핑계는 충분하다. 하지만 돈과 집과 고양이는 따로따로 같아도 결국 하나다. 트라이앵글 법칙에 따라, 삼단논법으로 봐도 그렇고, 지정합이라고 해도 언수외의 분야를 통틀어 딱 떨어지는 하나다. 빼도 박도 못하게, 집을 내놔서 돈을 마련하고 고양이를 데리고 떠나면 된다.


 그런데 녀석이 제 집이라고 믿는 이 집을 에게서 빼앗는 일이 잘하는 일일까. 백한 가지 중 네 번째 핑계다. 여기는 단순한 집이 아니다. 미루에게는 우주정거장이며 캬라반이고 베이스캠프이다. 그런 집을 없애고 여행길에 데리고 나서는 것이 옳은가 말이다. 고양이에게 의견을 물을 일이 지금으로서는 당면한 과제다. 대화가 잘 안 풀린다면 뭐라도 걸고 네고를 해야 할 수도 있는 막중한 일이다.


 얼룩 고양이 샘은 2차 대전 중 지브롤터에서 은퇴하기까지 여러 차례의 선박 침몰에서도 살아남아 언싱커블이라는 명을 얻었다. 그 이전에 고영이들은 바이킹과 함께 발트해를 넘어 호주와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했다고 하며, 더 그 이전에는 인도에서 배를 타고 이집트로 넘어갔다고 하니 미루라고 못할 것은 없다 싶기도 하다. 응당 고양이라 함은.


 수년 전에 오트밀이라고 불리는 시애틀의 만화가는 고양이를 수감자로 만드는 캠페인을 벌였다. 일명 '키티 컨빅트 프로젝트'다. 내용은 별거 없다. 그냥 집고양이에게 아이디 태그를 단 오렌지색 죄수복을 입히는 것이다. 꼭 옷이 아니어도 목줄이든 넥타이든 스카프든 오렌지 색이면 다 된다. 실내고양이의 브랜드화란다. 깜찍한 발상이지만 목적은 분명하다. 누구든 죄수복을 입은 고양이가 바깥에서 뛰어다니는 것을 본다면 녀석이 탈옥수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정확한 자료를 제시하지는 않지만 매년 7백만 마리의 고양이가 뛰쳐나오고 26%만이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나는 단언한다. 고양이가 집을 나가도록 문을 열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본다. 아마 대부분은 고양이가 집에 없다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 창문 밖이나 길 건너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녀석이 왜 저기에 있는지 의아해할 뿐이다. 제 고양이인지 못 알아보는 사람도 있단다.


 나 역시 미루의 몇 번의 부재를 경험한 에 경각심을 갖고 '북한산 고양이 프로젝트'나 '길에서 살아남기' 같은 기획을 한 적도 있긴 하다. 이것도 별 거 없다. 미루의 두 팔을 잡고 위협적으로 휘두르는 훈련을 강도 있게 반복적으로 시키는 거다. 포악한 고양이 소리는 덤이다. 물론 소리는 내가 낸다. 불행히도 안일한 녀석은 아주 진저리를 친다.


 미루를 데리고 나가기로 결심한 것만 해도 아주 큰 일을 해낸 거다. 드디어 갈고닦은 프로젝트가 빛을 발할  순간이 왔다. 나는 고양이용으로 오렌지색 망토를 하나 주문했다. 망토라고는 하지만 뒷덜미나 겨우 가려주는 정도다. 이마저도 질색을 할 것이 분명하지만 녀석의 의견이 어떻든 함께 떠나는 작전은 이미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다. 암호명, 북한산 고양이 프로젝트다.


 


 

 


 


이전 13화 이상한 세상으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