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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음 Feb 12. 2024

이상한 세상으로

 그래서 나는 이제 더 버틸 힘이 없어졌다. 다른 사람들은 밖에서 버틸 힘이 없을 때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온다고 하는데, 나는 거꾸로 집에서 버틸 힘이 없어서 바깥으로 끌려나갈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버틸 힘이 없다는 말은 힘을 쥐어 짜내야 한다는 의미와 같다. 집에 있을 힘도 없는 사람에게 어떡하든 힘을 만들어서, 기어나가든 문턱에서 고꾸라지든 태양을 마주 보는 밖으로 나가라는 말이다. 이쯤 되면 그러지 말라고, 안 그래도 된다고 다들 말려야 인지상정 아닌가. 니체는 우리를 죽이지 않는 것이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했지만 나는그냥 거기서 죽을지도 모른다. 아아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떠밀려 나가고 있다. 나는 빛의 입자성에 예민한 사람이란 말이다. 


 자,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하루의 3분의 1을 밖에서 보낸다고 치자. 아니라고? 그냥 그렇다고 해두자. 약 일곱 시간이다. 일주일 이면 49시간이고 한 달이면 30일로 쳐서 210시간이다. 6개월이면 1200시간이다. 이것도 아니라고? 그냥 그렇다고 해두자니까. 1200시간을 일 수로 계산하면 50일이다. 결론은 사람들은 한 해의 50일을 밖에서 지내는 거다. 에라잇 다 아니라고? 하, 이것도 억 소리가 나는데?


 그래서 나는 야바위의 계산법에 따라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산출된 결과물에 의거해서 50일을 태양을 피해 다니기로 한다. 태양을 등지고 지는 쪽으로 다니겠다는 소리다. 나가야 한다면 태양의 반대쪽에 있을 생각이다. 그게 어디 있든 말이다.


 이상한 나라들만 골라서 여행을 하게 된 사람이 있다. 되지도 않는 형편에 어릴 때부터 의사가 되겠다고 10년을 고생고생하다 결국 친척들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되기는 한다. 그랬으면 죽어라 열심히 살 법도 한데 이 양반은 그저 설렁설렁 만고강산이다. 내가 아는 사람은 왜 다 이 모양이냐고 하겠지만 아무튼 무려 의사인 사람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래 꿈은 여행가였던 것 같고 의사가 되기로 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뭐 그런 이유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 그런가 이 양반은 뭐에 홀린 듯 자꾸 배를 탄다. 탈 때마다 뭐에 홀린 듯 매 번 조난을 당한다. 또 그러다 매 번 기적처럼 집으로 돌아오고 그러면 또 배를 탄다. 처음에는 선상의사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아예 자기가 선장이 돼서 떠난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뭐에 홀린 듯 가게 된 나라가 '사고하는 말'이 다스리는 후이넘스 랜드다. 무슨 소리냐 하면 혹성탈출의 유인원처럼 문명적인 말horse이 주인인 나라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야후라 불리는 휴먼종족이 함께 산다. 이들은 아주 더럽고 추악한 원시 종족으로 오래 전 해안에 떠밀려 온 인간의 후예라고 추측되어진다. 


 사실 이 양반이 릴리퍼트와 브로브딩내그, 하늘에 떠있는 라퓨타 섬 얘기를 할 때만 해도 나는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얘기가 아주 과학적이고 정치적인 게 그럴싸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라퓨타 섬의 부양 원리나 화성의 두 개의  달 이론은 선구적이기까지 하다. 게다가 상세한 지도까지 제공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릴리퍼트에서 소인들이 이 양반의 크기를 재 적절한 양의 먹을 것을 제공하는 계산 방식은 정교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혹할 밖에.


 여기서 멈췄으면 좋았을 것을 후이넘의 나라는 기어이 선을 넘고 만 느낌이다. 순전히 내 생각만으로 얘기하자면 잘한다 잘한다 했더니 너무 나가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이 양반이 말하고 싶은 진정한 결론은 이 후이넘스 랜드에 있다고 한다. 미개 휴먼종족인 야후에 대한 묘사는 그가 자꾸 제 나라를 떠나는 이유를 짐작케 한다. 마지막으로 집에 돌아온 그는 인간에 대한 혐오로 말하고만 대화를 나누며 살았다는데, 그 말이 그 말이 이닐텐테 철학적이고 정치적이며 과학적인 전개에 비해서 마지막이 좀 허술하긴 하다. 어쨌든 이 양반의 여행기의 정식 제목은 대충 이렇다. '세계의 여러 먼 나라들로의 여행, 네 편의 이야기. 처음엔 외과의사, 그리고 여러 척의 배의 선장인 사뮤엘 걸리버가 지은'.


 내 생각은 그렇다. 인간적으로 아내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자. 결혼도 했고 얼마든지 먹고살만했을 외과의사 남편이 번번이 집을 나가는데 죽었는가 싶으면 또 번번이 살아 돌아온다고 생각해 보잔 말이다. 한동안 소인국이니 떠 있는 섬이니 하는 흰소리를 하다가 또 사라진다. 그렇게 네 번이고 마지막에 살아 돌아와서는 아내마저 혐오하며 말하고만 대화를 나눈다고? 매반 살아 돌아오는 그 양반보다 올 때마다 그 자리에 있는 아내가 더 놀랍다. 누군가 그 아내에게 떠나는 것이 맞다며 등을 떠민다면, 지금 내 심정이 그렇다. 어떤 이유가 됐든 뭐가 옳고 그르든지 간에 본인이 됐다는데 자꾸 등을 떠밀리는 심정 말이다.


 그렇다고 버티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버틸 힘도 없어졌다. 나는 이제 걸리버와 같이 태양을 등지고 이상한 세상으로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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