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형 인간
오늘의 주제 인물은 아마 '그'가 아닌 나일 것이다. 부제에도 적혀 있지만 나는 전형적인 회피형 인간이다. 다툼을 피하고 불편함을 외면한다. 즉 누군가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불편한 상황으로 인지하고 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가진 크나큰 단점 중 하나이다. 회피. 앎에도 나는 스스로에게 미덕이라고 여기는 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런 핑계로 스스로가 불편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큰 사람이다. '그'를 탐구하고 '그'에 대한 일지를 쓰고 '그'를 파악해보려 하고 '그'를 이해하려 노력해 보았다. 많은 데이터가 축적되고 결괏값들이 도출됐음에도 나의 현재는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기로 했다. 또 회피를 선택한 것이다.
일지를 쓴다는 것은 고찰일 수 도 있었고 성찰일 수도 있었다. '그'라는 주제만을 가지고, 나의 회사 팀의 장을 관찰한다는 것만 가지고 약 4개월간 글을 썼다. '그'에 대한 솔직한 감정도 담겼고 '그'에 대한 분노와 불신이 가득하지도 했다. '그'에 대한 다른 점들도 발견했고 '그'에 대한 실체도 어느 정도 추론하고 경험해 보고 실제 문제가 실체화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하나의 주제만을 가지고 달려오며 내겐 하나의 생각으로 귀결되는 느낌도 들었다. 그것은 시간낭비하지 말자는 것. '그'는 유치하고 치사하며 이기적이고 개인적이며 감사함을 모르고 간사하며 독사 같고 쫌생이 같다. 그런 사람에게 유한함을 가진 나의 에너지를 그리고 나의 시간을 들이고 싶지 않아 졌다.
어느 순간 '그'에게 연결되어 있을 끈이 툭 하고 끊어졌다. 아마 내가 가위를 들고 있었을 것이다. 나의 에너지와 나의 시간을 '그'에게 진실로 사용하고 싶지 않아 졌다. 알면 알 수록 낭비고 투자하면 투자할수록 내가 연소될 뿐이었다. '그'에게 긍정적으로 대하고자 했던 내가, 나의 과거가 아쉬물 만큼 끈을 잘라내는 데는 큰 결단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묶여 있던 끈은 힘없이 땅으로 떨어졌다. 그리곤 나는 해결하자고 했던 강박과 노력해 보자 했던 강단이 없어지니 자유스러워졌다.
그렇다. 회피하기로 한 것이다. 수많은 핑계가 있다. 그리고 핑계를 댈 것이다. 그럼에도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지키는 일이다. 내가 흔들리면서 까지 내가 아닌 타인을 어떻게든 붙잡고 싶지 않고 애쓰고 싶지도 않다. 지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상황이 더더욱 나를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나는 그와의 끈을 끊었다. 더 이을 가치도 없다고 판단했다. 여전히 그는 유치하고 치사한 사람이기 때문에. 삶의 가치엔 여러 가지 방식과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나는 회피를 선택했지만 그 또한 내가 삶의 가치를 지키고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방법이다.
이제는 '그'에게 어떠한 말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에게 베풀었던 좋은 행동들도 하지 않는다. 함무라비 법전처럼 대응하기로 했다. 끈을 끊고는 나는 나의 방어막을 구축했다. 과거 나를 향해 날아오는 가녀리고 썩은 화살들은 약하디 약했음에도 나에게 꽂혔지만 이제는 나에게 다가오지도 못한 채 땅으로 고꾸라 진다.
'그'는 나에게 이게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회피의 미학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