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왕은 신라 마립간 시대의 마지막 왕이자 고구려 장수왕 집권시기부터 문자왕 집권기까지 함께한 신라의 왕이다. 고구려 광개토대왕 이후로 또 한번의 위기가 신라에게 있었다면 소지왕 시기였을 것이다. 눌지왕이 433년에 백제 비유왕과 함께 나제동맹을 체결한 이후로도 고구려의 위협과 긴장은 계속되고 있었다.
소지왕이 집권한 지 3년 만에 고구려 장수왕은 신라를 공격해서 7개의 성을 함락시키고 미질부로 진격하였나, 신라는 백제, 가야와 연합해 고구려를 물리치며, 신라만의 힘으로 천명에 이르는 고구려군을 격파하기도 했다.
소지왕과 고구려의 첫 충돌인 미질부에서의 충돌은 백제, 가야 동맹의 힘을 빌려 힘겹게 막아내는데 성공했지만 소지왕이 집권한지 3년밖에 되지 않은 틈새를 이용하여 공격한 고구려 장수왕의 거침없는 침략은 백제와 신라소지왕을 두렵게 하는데 충분하였다.
신라는 소지왕 집권기에 고구려의 최대 전성기동안 끊임없는 침략을 견뎌내야 했다.484년 3월, 토성이 달을 가린 것이 불길한 징조였을까? 아니면 행운을 부르는 징조였을까? 4개월 후 고구려는 신라의 북쪽 변경을 침공하였으나 모산성에서 신라는 백제와 공조하여 고구려를 크게 물리쳤다. 이후 신라는 485년 2월 고구려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구벌성을 쌓았는데, 이 성은 현재 경북 의성 부근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소지왕의 고구려 파상공세에 대비한 노력은 기록에도 잘 나타나 있다. 삼년산성과 굴산성을 다시 고쳐 쌓았는데, 삼년산성은 자비왕 때 삼년 동안 쌓았던 성으로 삼국시대 난공불락의 성으로 알려져있으며 현재 보은에 위치해있다.
496년, 고구려 문자명왕이 장수왕에 이어 현재 충북 청주인 신라의 우산성을 공격하자 실죽 장군이 이를 막아내는 데 성공했으나 1년 뒤인 497년, 고구려의 거듭된 공격에 결국 우산성을 빼앗기고 말았다. 위와 같은 대비에도 불구하고 우산성을 함락당한 것은 신라가 아직까지는 고구려보다 군사적역량이 많이 부족한 탓이라고 볼 수 있겠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을 때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 되는 경우 말이다. 그러한 때를 잘 견뎌야 기회가 생기는 법이다. 신라에게는 그 시기가 바로 소지왕 집권기였다.
소지왕은 전성기인 고구려에 비해 매우 약한 국력으로 국가적으로 위기였으나, 내실을 기하여 큼직한 업적으로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대표적으로 신라의 지방과 중앙을 연결하는 도로를 정비하였고, 역마다 숙식까지 제공하며 공문서 전달과 관물운송등을 할 수있도록 역의 역할을 확장하였다. 이를 우역이라하며 조선시대까지 이어졌으니 신라 소지왕의 대단한 업적이라 할 수있겠다. 이러한 지방과 중앙을 연결하는 기반 산업의 정비는 나라를 더욱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해주었고, 소지왕의 큰 역할을 보여준다. 이러한 노력은 훗날 지증왕 시기 6부5주로 지방행정을 정비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소지왕 시기에 백제의 동성왕과 이벌찬 비지의 딸의 혼인으로 인해 나제동맹이 더욱 강화되었다. 눌지왕 때는 일반적인 공수 동맹이었던 것에 비해 결혼동맹으로 소지왕때 와서 발전한 것이 큰 의의가 있다. 이렇게 나제동맹이 더 끈끈하게 발전되어갔다. 그 성과를 예로 들자면 신라의 실죽 장군이 포위되었을 때 백제의 도움으로 풀려난 일, 신라가 백제의 치양성이 고구려에게 공격받을 때 원군을 보낸 일 등이 있다.
나제동맹은 군사적 약체인 신라와 백제에게 강한 군사력을 가진 고구려를 맞설수 있는 몸집으로 보일수 있었으며, 고구려가 아산만에서 영일만 앞바다까지 몰아붙였어도 결국 삼국통일은 지혜로운 신라가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게한 신의 한수라고 볼 수있다. 눌지왕과 소지왕 시기에 고구려의 압박을 견딘 것은 나제동맹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위기를 극복하고자 한 신라왕들의 국가적 지략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지혜를 배울 수 가 있다. 우리의 인생이 힘겨울 때에는 고통이 영원할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이 있다. 신라는 그 오랜 시간 동안 고구려의 그림자 속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면서 위협을 견뎌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이 힘들고 고통의 시간이 오래될 때 신라의 5세기를 떠올려 보자. 소지왕의 시대가 끝나면서 지증왕 시기부터 신라의 역전의 순간이 점점 가까워 오고 있음을 알아차린다면 우리에게 고통도 다른 의미로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