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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지만 그래도 좋은 건

미국에 살면서 느낀 사소한 것들

by yesomeday

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를 갈 일이 있을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막연히 '언젠가 한 번쯤은 가보고 싶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미국에서 지낸 지 벌써 4년이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이제는 더 이상 한국의 미국 환율 기준으로 가격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초반에는 물건을 살 때 항상 '이 돈이면 한국돈으로 얼마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미국 물가에 익숙해지다 보니 더 이상 환율을 계산하지 않았다. 이 생각을 계속한다면 미국에서 팁까지 포함해서 3-4만 원 가까이 되는 돈을 주고 순두부찌개를 먹지는 못할 테니..


상상했던 미국과 비슷한 부분도 있었지만

막상 살아보니 조금은 달랐고, 전혀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도 많았다.


미국에서 지내며 느낀 사소한 차이들과 그 속의 생각들을 적어보려 한다.



느림의 미학, 여유를 즐기는 나라


문을 잡아주는 문화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우는 건지, 아니면 살아가면서 몸으로 익히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미국에서는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간 사람이 뒤따라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몇 걸음 떨어진 거리라도 뒤에서 사람이 오고 있으면 문을 잡아주는데 이런 소소한 배려를 받을 때마다 괜히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내리는 것

한국도 비슷하지만 미국은 비행기에서 앞줄부터 한 줄씩 내리는 질서에 한층 더 엄격한 편이다. 미국에서 국내선이든 국제선을 탈 때 안전벨트 해제 사인이 켜진 뒤 뒷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이 짐을 챙겨 앞으로 나가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고지서 발송도 천천히

우리나라가 빠른 건 알았지만 여긴 너무 느리다고 느꼈던 것 중 하나가 고지서 발송. (모든 고지서가 그런 건 아니지만) 남편 회사 출퇴근길에 과속으로 벌금 티켓이 날아온 적이 있다. 과속한 날로부터 한 달이 넘어서야 과태료 고지서를 받았고 혹시 그날 이후에도 같은 위치에서 과속을 하지 않았을까 며칠 동안 마음 졸여야 했다.

참고로 그 구간은 Traffic laws photo enforced 표지판(카메라 단속 구간 안내)이 없었는데, 티켓을 우편으로 받고 난 이후로 새로 생긴 곳이었다. 뭐가 됐든 신호위반은 잘못된 거지만..


관공서를 가거나 음식점을 가도 서두르는 사람이 없다. 빨리 주문을 하고 싶은데 우리 담당 서버는 옆 테이블 손님과 한창 대화중이니.. 한국의 빠른 업무 효율을 떠올리면 너무 느긋하고 편하게 일을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순간도 많지만, 가끔은 이런 느린 속도가 어쩌면 더 인간적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친절과 오지랖, 그 사이

스몰 토크(small talk)

미국오기 전부터 익숙하게 알고 있던 문화였지만, 실제로 눈이 마주치면 항상 알던 사이처럼 인사하고 눈이 마주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말을 건넨다. 가게에서 물건을 고르다 보면 함께 쇼핑 온 친구처럼 "이건 어때?" 하고 물어보거나,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면 인사를 나누며 짧은 대화를 할 때가 종종 있다.

여행지에서 한국 사람을 마주치면 서로 모르는 척 지나치는 경우가 더 많은데 미국 사람들은 오히려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대화 상대를 만나면 그 자체로 즐거워하는 듯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운전하면서도 창문으로 눈 인사하기

미국에서는 자동차 유리 틴팅(window tint) 허용 기준이 주마다 다르다. 오하이오주의 경우, 앞 좌석 양쪽 창문은 VLT(Visible Light Transmission) 50% 이상의 투과율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운전하면서 사람의 표정과 행동이 거의 다 보일 정도라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는데 좋은 점도 있었다.


예를 들어 주유소에서 다른 차가 도로로 진입하려 할 때 쉽게 들어올 수 있게끔 자연스럽게 공간을 비워주거나,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에서 비보호 좌회전을 하려는 차를 위해 잠시 멈춰주는 등 호의를 베풀었을 때, 상대방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그 짧은 인사 하나에 기분이 괜히 좋아지고 좀 더 정감 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쉬운 점도 있는데 너무 잘 보여서, 내가 비보호 좌회전을 하려다 타이밍을 놓친 순간에 뒤차 운전자가 답답한 표정으로 고개를 젖히거나 손짓을 하는 모습까지 rearview mirror로 너무 쉽게 보인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

병원은 물론 쇼핑몰이나 휴게소 등 어느 곳을 가도 장애인을 위한 자동문 버튼을 쉽게 볼 수 있다. 누구나 불편함 없이 드나들 수 있도록, 어디든 접근할 권리가 사회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그리고 인상 깊었던 병원에서 본 의자.

몸집이 큰 사람도 편하게 앉을 수 있게끔 폭이 넓은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만큼 다양성을 존중하고, 편견과 차별을 배제하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사람 중심의 아날로그


활발한 텔레마케팅과 우편 문화

우편함을 열면 마트 전단지와 내 이름이 새겨진 손글씨로 쓴 듯한 광고 편지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편지의 끝에는 늘 전화번호와 함께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전화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요즘 같으면 온라인 프로모션 페이지 하나로 끝낼 일인데, 이곳 사람들은 여전히 직접 통화하며 대화로 관계를 맺는 방식을 좋아한다.


열쇠 사랑

미국은 여전히 디지털 도어록보다는 열쇠를 사용하는 집이 많다. 처음에는 항상 열쇠를 들고 다녀야 한다는 점이 조금 불편했지만, 어차피 외출할 땐 차를 타고 나가야 하니 차 키에 열쇠만 더 달면 돼서 점차 익숙해졌다. 이제는 어디 나갈 때 열쇠가 없으면 어색할 정도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가장 아쉬울 것 같은 편리한 분리수거와 넓은 주차 공간


한국보다 분리수거 규정이 까다롭지 않아 음식물 쓰레기를 일반 쓰레기와 함께 버리거나 분리수거도 크게 분류할 필요가 없어 쓰레기를 버릴 때 훨씬 수월하다.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요일에 집 앞에 쓰레기통을 놔두면 이른 아침 또는 낮 시간대에 쓰레기를 수거해 간다.


시골 동네라 한 번에 주차가 가능한 널찍한 주차 공간도 미국에서의 삶을 한결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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