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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가 아닌 ‘빈칸’을 던지는 브랜드

by 혜온
말하지 않았는데, 기억에 남는다.


브랜드를 만들다 보면 그 안에서 자꾸만 더 많은 걸 말하고 싶어집니다. 이건 어떤 기능이 있고, 왜 특별하고, 어떤 방식으로 사용해야 하며, 이 브랜드만의 핵심은 무엇인지. 그렇게 모든 걸 말하고 나면 이상하게도 브랜드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말했기 때문에, 오히려 아무 말도 전달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오히려 말하지 않은 브랜드가 더 오래 우리의 마음에 남기도 합니다. 의도적으로 침묵을 택한 브랜드. 단정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느끼게 만든 브랜드. 우리가 그 브랜드를 떠올릴 때 머릿속에 구체적인 문장보다 어렴풋한 감정이 먼저 떠오른다면, 그건 브랜드가 ‘빈칸’을 잘 설계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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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건, 바로 그 ‘여백의 브랜딩’입니다. 브랜드는 콘텐츠를 통해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하기 보다는, 소비자가 자신의 감정과 해석을 투영할 수 있도록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의 단서를 던질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브랜드가 남기는 ‘말하지 않은 감정의 여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요즘은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이어가는 데 더 매력을 느끼는 시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브랜드는 점점 더 완결된 메시지를 던지기보다는, 의도적인 ‘여백’과 ‘빈칸’을 통해 소비자에게 상상할 여지를 주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콘텐츠가 넘쳐나는 지금, 사람들은 오히려 모든 걸 말하지 않는 브랜드에 더 오래 머뭅니다. 왜냐하면, 그 ‘말하지 않은 부분’이 오히려 나만의 경험과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1712272d733f0ee699eafaa0691bc32a.jpg photo by @ryad

사람들은 명확한 슬로건보다 애매한 여운에 더 오래 머뭅니다. 예를 들어, 무인양품의 광고는 늘 말이 적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브랜드는 이렇습니다”라고 선언하기보다, 고요한 일상 속에 스며든 장면 하나를 보여주며 우리 스스로 해석하도록 유도합니다. 거기엔 부차적인 해설도 없고, 억지로 이해시키려는 메시지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 여백을 읽으며, 무인양품이 말하고자 하는 태도와 철학을 ‘느낍니다’. 그게 바로 브랜드가 던지는 빈칸이고, 그 빈칸을 소비자가 채울 수 있을 때, 브랜드는 비로소 스토리로서 기억됩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 이 시점에 '빈칸'이 중요할까요?

그 이유는 지금의 콘텐츠 환경 자체가 과잉 전달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스크롤을 멈추는 순간마다 우리는 브랜드의 주장, 제품의 장점, 인플루언서의 리뷰에 노출됩니다. 이 모든 정보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하나의 콘텐츠를 기억에 남기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 되었죠. 이럴 때 필요한 건 ‘더 많은 설명’이 아니라 ‘설명하지 않는 미묘함’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무드, 단정 짓지 않는 문장, 의미를 단정하지 않는 영상. 바로 그런 방식이 소비자의 머릿속에 브랜드를 남깁니다.

1fd0227a1cae0807b7606c924ad6f92c.jpg photo by @drogonted

브랜드는 콘텐츠를 만들 때 우리는 다음의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이 메시지를 본 유저는 과연 무엇을 상상하게 될까?”

모든 걸 설명하지 않아도, 오히려 소비자의 해석과 참여로 브랜드는 완성됩니다. 그리고 이런 해석은, 곧 브랜드에 대한 ‘몰입’을 만들어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공백이 전략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메시지가 없는 것이고, 전달하고 싶은 핵심을 너무 명확하게 말하면 스토리가 끝나버립니다. 브랜드는 이 중간 지점을 설계해야 합니다. 핵심을 명확히 하되, 전달 방식은 미묘하게. 말은 덜하되, 감정은 더 깊게. 요즘 소비자들은 이 은근한 뉘앙스를 기막히게 감지합니다.


저는 브랜드 스토리텔링이란 게 결국 이 빈칸을 얼마나 매력적으로 설계하는가의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콘텐츠를 만들 때 ‘무엇을 더 말할까’보다 ‘무엇을 남겨둘까’를 먼저 고민해야 할 때도 있다는 말입니다. 브랜드는 직접적으로 소비자에게 말하지 않아도, 오히려 소비자가 스스로 브랜드에 대해 말하게 만드는 힘을 가져야 하니까요.




SUMMARY

1. 브랜드는 모든 걸 설명하기보다, 소비자가 해석할 수 있는 ‘여백’을 남겨야 한다.


2. 과잉 전달의 시대일수록, ‘설명하지 않는 뉘앙스’가 브랜드를 더 오래 기억에 남게 만든다.


3. 콘텐츠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소비자가 직접 의미를 완성해가는 장치로 설계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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