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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의 기억은 메시지가 아닌 무드로 남는다

by 혜온

어떤 브랜드는,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집니다. 이름을 말하면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떠오르고, 광고를 본 기억은 없어도 브랜드의 인상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죠. 우리는 브랜드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도, 어떤 감정을 줬는지는 잊지 않습니다.


이건 단지 브랜드가 말을 아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브랜드가 말하지 않는 대신, 감정의 단서를 감각적으로 설계했기 때문입니다. 말보다 먼저 도달하는 것들, 예컨대 브랜드의 톤, 색감, 비주얼 구성,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질감적인 기억, 그리고 콘텐츠의 호흡. 소비자는 그것을 "이 브랜드는 그냥 좋아"라는 말로 요약하곤 하죠. 그런데 그 '그냥'이라는 말 안엔 사실 무의식적으로 감지된 수많은 정서적 단서들이 숨어 있는 겁니다.


이제 브랜드는 소비자의 머릿속에 직접 '스토리'를 심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단서들을 남기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단서들은 대부분 말이 아닌 감각으로 이뤄집니다. 단정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느끼게 만드는 방식이죠. 말의 세기와 강도를 높이기보다, 반복되는 무드와 분위기를 통해 감정을 축적시킵니다. 그렇게 소비자는 브랜드와의 직접적인 경험 없이도, 어렴풋한 이미지와 감정을 기억하게 되는 것이지요.



감각이 먼저 도착하는 브랜드

예를 들어 볼게요. 뷰티 브랜드 "템버린즈(Tamburins)"는 제품보다 공간과 분위기를 먼저 보여주는 전략을 씁니다. 프로모션 영상에는 나레이션도, 제품 설명도 없습니다. 대신 몽환적인 색감과 익숙하지 않은 연출, 묘한 리듬의 음악이 흐르며 감각을 자극합니다. 브랜드는 직접적으로 아무것도 말하지 않지만, 소비자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도록 유도합니다. 그것은 설명할 수 없는 ‘기분’으로 남고, 브랜드는 감정의 기억으로 소비자의 머릿속에 자리 잡습니다.

Tamburins Perfume Exhibition In Seoul




조용한 무드가 기억을 만든다

또 다른 예로는 "오라리(AURALEE)"라는 일본의 패션 브랜드를 들 수 있습니다. 오라리는 특별한 메시지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화려한 광고도, 자극적인 문구도 없습니다. 대신 매 시즌 발표되는 룩북과 캠페인 영상은 늘 같은 무드를 유지하며, 조용하고 섬세한 리듬으로 브랜드의 태도를 전달합니다. 음소거된 색감, 절제된 포즈, 주변의 사운드를 배제한 영상들 속에서 소비자는 무언가를 ‘이해’하기보다 ‘느끼게’ 됩니다.


오라리의 콘텐츠는 명확한 설명이나 구조가 없습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그 안에서 오히려 더 깊이 몰입하게 됩니다. “왜 저 장면을 썼을까?”, “이런 이미지가 왜 이렇게 편안하지?” 같은 감각적 질문들이 떠오르죠. 오라리는 소비자에게 완성된 해석을 주지 않고, 해석의 여지를 남깁니다. 그래서 브랜드는 더욱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브랜드가 정확히 언급하지 않았더라도, 소비자가 몰입하여 이야기로 확장시켜주는 방식입니다.


이처럼 브랜드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소비자는 콘텐츠 속에서 단서를 찾아 스스로 이야기를 구성하기도 합니다.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비자가 느끼고, 느꼈기 때문에 더 오래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Project : Chino Days, Auralee




분위기를 언어처럼 쓰는 브랜드, A.P.C.

프랑스의 패션 브랜드 A.P.C.(일명 아페쎄)는 설명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SNS 콘텐츠에는 화려한 그래픽도 없고, 자극적인 설명도 없습니다. 심지어 모델들도 무표정한 채, 조용한 배경에서 브랜드의 룩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무표정함이 바로 A.P.C.의 언어입니다.


그들은 ‘나는 당신에게 강요하지 않겠다. 당신이 이 무드를 어떻게 입을지는 당신의 선택’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 말하지 않는 태도가 곧 브랜드의 철학이 됩니다. 설명을 덜어내고, 그 자리에 무드를 채우는 방식이죠.


A.P.C.를 떠올릴 때 우리는 한 문장보다 하나의 ‘정서’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 정서가 브랜드와의 감정적 연결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설명 없는 브랜드는 왜 오히려 선명하게 남을까?

브랜드가 콘텐츠를 만들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습니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에만 집중하고, 그 말이 어떤 ‘여운’을 남기는지는 놓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논리보다 감각을 먼저 기억합니다.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던지는 말이 너무 정리되어 있고, 너무 명확하면, 소비자는 받아들인 후 바로 흘려보내게 됩니다. 반대로, 뭔가 해석이 필요한 콘텐츠는 머릿속에 잠시 머뭅니다. ‘이건 무슨 의미지?’라는 질문을 하게 되죠. 바로 그 시간이 브랜드의 감정을 각인시키는 골든 타임이 됩니다.


이때 중요한 건 콘텐츠가 불친절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비워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브랜드는 스토리를 직접적으로 던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보세요.


스토리가 아니라, 정서의 여운과 해석의 자유도가 브랜드를 남기기도 합니다.




정보가 아닌 정서를 남기는 브랜드 설계

우리는 너무 많은 콘텐츠를 소비합니다. 그 수많은 메시지 중, 여러분의 브랜드는 어떤 방식으로 기억되고 있을까요? 정보를 제공하려는 브랜드는 많지만, 정서를 남기려는 브랜드는 드뭅니다. 하지만 정서는 가장 오래 기억되는 형태입니다.


브랜드는 정보보다 정서를 남겨야 하고, 콘텐츠라는 전달 수단에 집중하기 보다 그 본질로 돌아가 분위기를 설계해야 합니다. 분위기는 메시지보다 오랫동안 소비자의 감각 속에 남습니다.

브랜드의 슬로건 없이 감각적 무드만으로 구성된 캠페인 컷이란?



이러한 방식이 중요한 이유는, 지금의 콘텐츠 환경이 과잉 전달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브랜드가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지, 무엇이 특별한지를 설명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브랜드가 스스로 해설하지 않고, 단서를 남겨두는 방식은 오히려 ‘차별화된 기억’을 만들어냅니다. 기억은 메시지보다 감정에 오래 머무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의 브랜드 스토리텔링은 스토리를 ‘완성하는 기술’이 아니라, 스토리를 소비자에게 ‘맡기는 전략’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콘텐츠는 정보를 제공하는 창구이기도 하지만, 조금 다르게 바라보면 그것은 감정과 감각을 설계하는 수단이며, 브랜드의 분위기를 반복적으로 누적시켜가는 과정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소비자는 느낍니다. 그리고 느낀다는 건, 이미 그 브랜드의 일부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소비자는 브랜드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일원이 됩니다. 브랜드는 말하지 않았지만, 소비자는 자신만의 감정과 경험으로 각자의 삶 속에서 조금 더 자신에게 맞게 브랜드의 서사를 완성해가는 것이죠.

말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설계하는 일.

브랜드는 이제, 그렇게 기억에 남습니다.




SUMMARY

1. 스토리를 설명하지 않아도, 무드를 설계하면 소비자가 느낄 수 있다.


2. 정보보다 정서, 문장보다 분위기가 브랜드를 오래 남긴다.


3. 감각의 단서를 남겨 소비자의 해석을 유도해보자, 유저들의 몰입을 이끌어낸다.






Thumbnail's photo by @Octavio Otálva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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