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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도 족보가 있다”

궁, 전, 각, 루 통해 보는 집의 랭킹

by DKNY JD

한 때 “영어 이름일 경우, 그것도 길고 복잡할수록 아파트의 가격이 올라간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다.


“시골에 계신 시어머니가 영어로 된 아파트 이름을 외우지 못해, 며느리 집을 찾아 올 수가 없어서”라는 웃고픈 이유에 서다. “영어 발음이 어렵고, 길면 길 수록 비싸다”라는 조크가 후편이었던 기억이 난다.


암튼 시월드(시집을 일컫는 표현) 와의 갈등구조는 한국 사회 아니 ,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인류 사회 전체에서 풀기 어려운 , 영원한 숙제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파크(park), 뷰(view), 캐슬(castle), 레이크(lake), 센트럴(central) 등은 한국 아파트 단지 이름의 대명사다. 이는 오래전 등장했다.


한 건설업체는 ‘acro(아크로)’를 또 다른 건설업체는 ‘래미안’ 브랜드를 자신들이 짓는 아파트 단지의 이름으로 반드시 사용한다.


래미안은 미래의 아름다운 안식처라는 뜻의 한자 신조어다.


아크로는 ‘최상의, 최고의’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아크로 비스타는 가장 좋은 경치를 뜻하는 것이고, 아크로 뷰는 최상의 절경, 아크로 리버 하면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강의 뷰를 의미한다.


요즘에는 이 아파트 이름이 다시 한글로 바뀌고 있다는 우스개 소리가 들린다. “이름이 어려워 총기 있는 딸(시누이)을 대동하고 방문해 며느리(올케)가 그때마다 비명을 지르고 말아서”라고 한다. 웃기지만, 슬픈 현실이다


과거에는 신분뿐만 아니라 , 한국 사회의 집에도 계급이 명백히 존재했다고 한다.


집의 크기, 그 집에 누가 사느냐?, 집주인의 계급이 무엇이냐? 에 따라 그 격에 맞는 집의 이름이 명명된 것이다.


최상의 격은 당연히 ‘궁’과 ‘전’이다. 대궐, 궁궐을 의미하는.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이 대표적이다. 임금이 사는 곳에만 붙여지는 이름이다.


임금을 호칭하는 ‘전하’라는 표현도 근정전에 사는 임금을 부르는 것이다. ‘아랫사람이 임금님 거처하는 곳, 아래에서 조아린다’라고 해서 임금님을 ‘전하’라고 부른 것이다. 참고로 ‘슬하 몇 남매를 두었다’ 할 때의 ‘슬하’ 역시, 무릎 아래에 있는 자녀를 의미하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전’을 호칭하는 집이 또 있다. 대웅전, 극락전 등 절에서 붙이는 이름에 ‘전’이 들어간다. 아마도 불교를 예우하는 차원에서 임금과 동급의 이름, 즉 전을 사용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나 싶다.


다음은 ‘각’이다. ‘전’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나름 큰 규모의 집에 붙여지는 이름이다. 임금 아래 최고위층들의 집이나 관공서 건물 이름이다. ‘규장각’ 등을 연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각하’라는 명칭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하인이 각하라고 칭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지금은 임금이 없으니까, ‘전하’라는 표현은 없는 까닭에 ‘각하’가 최고 칭호가 됐다. ‘대통령 각하’가 또렷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중국집 이름에 흔히 ‘각’ 자가 붙어서 별개 아니네 라면서 지나쳤었던 것 같은데 ‘각’도 상당히 높은 사람이 사는 집이다.


그리고 넓은 마당이 있으면 ‘대’라고 부른다. ‘하석대’가 이에 해당한다. 누각이 있으면 ‘루’다. 쉴 뜰이 있는 곳은 ‘정(뜰 정)’, ‘정(정자 정)’으로 불렀다. 여러 사람이 모이면 ‘관’이다. 여관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인 집은 ‘당’, ‘재’, ‘옥’, ‘실’등으로 불린다.


요즘의 우리네 집은 어떠한가? 아파트, 단독주택, 다세대 주택, 오피스텔, 주상복합 등이 얼핏 떠오른다. 주거용도와 상업용도가 섞여 있으면서 다세대가 공동으로 거주하는 형태가 주상복합이 아닐까 싶다.


선비들이 정자에 앉아 술 한 하면서 글 쓰고 그림 그리고 했던 당시 누각에서의 풍류가 그립다.


하석대, 촉석루… 이런 이름 대신에 역세권, 초역세권이 인기인 세상이다 보니 뭔가가 허전하다.


온고이지신 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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