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편-귀신 들린 아유타야(상)

by 리유


방콕에서의 울적한 마음을 다잡겠다며 호기롭게 출발했던 아유타야. 출발은 완벽했다. 기차역에 여유 있게 도착했고, 기차도 정시에 출발했다. 도착한 아유타야의 날씨도 최상이었다. 구름이 햇살을 부드럽게 가려주어 강렬한 열기를 피할 수 있었다. 자전거를 빌리는 일조차 속전속결. 뭐 하나 꼬이는 것이 없었다. 그는 들뜨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빌려 지도를 따라 첫 번째 사원부터 차례대로 돌아보았다. 예상보다 훨씬 웅장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에 그는 '이래서 사람들이 유적지 관광을 하는구나'라고 실감했다. 연예인들이 "장소에 압도당하네요."라고 하던 멘트가 절로 나왔다. 게다가 관광객도 많지 않아 매우 한적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완벽해, 정말!"



다음 사원으로 향하던 찰나, 그는 등 뒤로 싸늘한 기운을 느꼈다. 적당히 햇빛을 막아주던 하얀 구름은 비를 가득 품은 거대한 먹구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로부터 5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까. 하늘이 터지기 시작했다. 천둥소리와 함께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사나운 바람까지 더해져 우산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낭만 하나만 믿고 온 여행자. '이 비가 나를 멈추게 할 순 없을 거야'라며 오기를 부렸다. 그것은 명백한 오판이었다. 그는 자전거를 세운 채 비가 멈추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주변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비를 바라보며 멈출 때까지 기다리는 것 또한 청춘'이라며 홀로 정신을 다잡았다.



약 40분 후...



거칠게 내리던 비는 점차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아주 미세하게, 실비처럼. 이제 곧 그치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 더 기다렸다. 하지만 비는 끈질기게 완전히 그치지 않았다. 마치 들떠있는 그의 꼴을 보기 싫다는 듯한 하늘이었다. 그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에 비를 맞으며 자전거에 올라탔고 곧장 숙소로 향했다.

"이 정도 비는 맞아도 괜찮잖아."



숙소에 도착하는 동안 비는 멈추지는 않았지만 더 거세지지도 않았다. '역시 그냥 출발하길 잘했어.' 그는 긍정적인 건지, 아니면 단순하게 고집이 센 건지 모르겠다. 숙소에 도착하여 젖은 몸을 씻고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것이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다.



오후 4시가 넘어가는 시간. 눈이 번쩍 떠졌다. 하늘은 언제 비가 왔느냐는 듯, 청량하기 그지없었다. 날씨는 좋았지만, 그는 '뭘 하기에도, 어딜 다녀오기에도 너무 애매한 시간이네.' 하며 다시 잠을 잘까 고민했다. 그러나 곧바로 그는 그런 나약한 생각을 뿌리치고 휴대폰과 지도 한 장을 챙겨 숙소를 나섰다. 일몰이 아름다운 사원이 있다는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애매했던 시간은 그 사원을 방문하기에 완벽한 시간이 되었고 그는 지도 한 장에 의지하여 서둘러 페달을 굴리기 시작했다.



20분이면 도착할 줄 알았던 사원은 아무리 달려도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돌아갈까...?'라는 생각이 수만 번 머리를 스쳤다. 돌아갔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껏 달려온 것이 너무 아까웠고, 오늘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멈추지 않았다. 그냥 고집이 센 아이였던 것 같다. 그 지점에서 또다시 20분쯤 더 달렸을까. 맞은편에서 대형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돌아 나오고 있었다. '거의 다 와가는구나.' 그는 확신했다. 모든 버스가 지나가고 마침내 사원의 거대한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무사히 사원에 도착했다.



그는 물었다. "입장 가능한가요?" 관리자는 20분밖에 남지 않았다며 서두르라 했다. 나는 재빨리 자전거를 세워두고 입장했다. 사원의 규모가 생각보다 작아서 20분이면 충분히 돌아보고 나올 수 있겠다 생각했다.



상당히 멋있었다. 이름 모를 일몰이 아름다운 사원. 그는 그에게 주어진 20분을 꽉꽉 채워 구경하고 나가기로 했다. "오기 잘했네. 역시 뭐든 중간에 포기하면 안 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사원에 들어서자, 해는 빠르게 서쪽 하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둠이 깔리자 달이 점점 선명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그는 주변이 어두워졌음을 인지했다. 조명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했고 남아있던 몇 안 되던 관광객들도 모두 나가고 없었다.



고요함만이 남은, 해가 저문 이 이름 모를 사원의 아름답고 웅장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을씨년스러운 공포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조명에 비친 돌부처상들은 하나같이 머리가 훼손되거나 날아가 있었고, 그 모습이 더욱 공포감을 자극했다. 그는 마치 이 드넓은 유적지에서 나 하나쯤 없어져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 순간 저쪽 한 모퉁이, 부처 상이 있는 석굴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끼야아약"



'뭐지, 나 혼자만 있는 거 아닌가?' 순간 그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다음화 : 귀신 들린 아유타야(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