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에 갔다가 혜화동까지 걸었다. 자주 걷는 길이다. 원남동 사거리를 지나 이화사거리로 향했다. 그 길 이름이 '율곡로'라는 것은 방금 확인했다. 중간 쯤 놀이터에서 젊은 가족이 놀고 있었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와 삼십대로 보이는 부부, 그들은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아 보였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아서 계단에 걸터 앉아 구경했다. 계단의 높낮이와 한 단의 면적이 의자처럼 앉기 좋았다. 몸에 잘 맞았다. 계단이 의자가 된다는 것이 아름다운 이치라고 느꼈다. 그들이 곧 사라졌고, 다섯시 반 쯤 되자 빌딩에서 빠져나온 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가기 시작했다. 계단에 홀로 남아 그들을 관찰했다.
조금 더 움직여 마로니에 공원에 도착했다. 마로니에 공원의 사람들은 대부분 가만히 앉아 있다. 걸어다니거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보기 드물다. 다들 그냥 머물고 있다. 그 느낌이 좋다. 나도 커다란 나무 아래 의자에 자리를 잡고 책을 펼쳤다. 책을 읽고 있는데, 갓난아이와 어떤 가족이 맞은 편에 앉았다. 갓, 난, 아이를 보는 것 만으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들의 부모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책을 보는 것보다 갓 난 아이를 보는 것이 더 현명한 일 같아 그렇게 했다. 텀블러에 담아 챙겨 나온 목련차를 마시며 편히 쉬었다. 여섯 시 삼십팔 분에 공원의 불들이 켜졌다. 저녁이 시작되었다. 오후와 저녁의 경계는 정의하기 어려운데, 조명들이 그 선을 그어주는 것 같았다. 사십 분 동안 마로니에 공원에서 사람들을 관찰했다. 갓 난 아기와 부모를 보았고, 연극인으로 보이는 젊은이를 보았다. 휠체어를 탄 젊은이, 말을 잘 못하는 젊은 농인과 그와 대화하는 중년의 여자. 아빠와 붕어빵을 먹는 꼬마. 집에 가져갈 빵 한 봉지를 들고 잠시 앉아 버스가 한산한 시간을 기다리는 직장인인 것 같은 여자. 러닝복을 입고 한바퀴 도는 아줌마. 여러 쌍의 데이트하는 연인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어떤 사람들을 보았다.
집에 가기 전에 일부러 소극장 골목길을 탐색했다. 여러 예술가들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도 예술가가 되거나 좋은 관객이 되고 싶어지는 느낌이었다. 예전에 사귀었던 아이는 서울 주변에서 나고 자라 서울의 공연 문화를 접하며 자랐다. 그이는 자연스레 공연을 기획하는 꿈을 꾸고 직업으로 삼았다. 그런 것이 꿈을 얻는 가장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애가 보고 싶기도 했고, 부럽기도 했다.
집으로 가려고 버스정류장에 섰다. 피아니스트 김광민씨가 보였다. 그가 왜 버스정류장에 있지,라는 생각이 어색할 정도로 그는 편안한 복장과 약간 취기가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것 같더니 102번 버스에 올라 탔다. 그 버스는 우리집으로 가는 것이 아닌데, 그를 따라 올랐다. 그가 앉은 반대편 한 칸 뒤 의자에 앚았다. 그의 옆모습과 귓볼과 뒤통수를 봤다. 버스에 있는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그것을 아쉬워하는지, 편하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정중하게 싸인을 받아볼까 생각했지만, 말았다. 싸인을 요청해서 무례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존재하지만, 싸인을 요청하지 않는 것이 무례할 가능성은 0이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정류장에서 내렸다. 덕분에 나는 그가 어떤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을 끝까지 볼 수 있었다. 여러가지 감정이 스쳤지만 무엇인지 모를 감정이었다.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은 분명하다. 그가 피아노 의자에 앉은 것을 직접 본 적 없지만, 그가 시내버스 의자에 앉은 것을 직접 봤다.
2025년 9월의 어떤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