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화장실에 들어가는 여자

by 조각들

문은 그냥 통로가 아니다. 분명한 경계선이다. 파란색 픽토그램, 남성 전용임을 알린다. 남자화장실 문이 조용히 열린다. 한 여성이 들어선다. 망설임이 없다. 십수 년 동안 자기 자리였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60대 정도의 여성. 작은 어깨. 능숙한 손길에는 낡은 바구니와 젖은 걸레가 들려있다. 내가 볼일을 보러 화장실을 찾았는데 '청소중'이라는 간판이 세워져있다. 가끔 어떤 곳에선 '여성노동자가 청소중'이라고 쓰여진 적도 있었다.


이 장면은 도시에서 흔하다. 매일 반복된다. 침묵의 입장. 이것은 무엇을 묻는 것일까. 우리는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어떤 그림자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중년 여성을 '어머니'라 부른다. 헌신과 돌봄의 상징처럼. 쉽고 당연하게. 화장실 청소도 왠지 그 이미지의 연장선처럼 느껴진다. 지저분함을 치우고 깨끗하게 되돌리는 일. 하지만 그녀의 손이 닦는 곳은 가족의 화장실이 아니다. 낯선 남성들이 스쳐 간 익명의 공간이다. 가장 방치되고 무심했던 곳일 수 있다.


왜 가장 사적인 이 영역의 청소는 낮은 임금의 중년 여성에게 맡겨졌을까. 우리 사회는 '더러운 것을 치우는 일'을 하찮게 여긴 것은 아닐까. 그래서 가장 싸게 해결하려고 했던 것일까. 그 저렴한 노동의 자리에 여성을 배치하는 것이 가장 쉽고 당연했던 것일까. 이 모순은 어디서 시작된 걸까.


청소 같은 필수 서비스직은 오랫동안 저임금에 머물렀다. 그 일은 유독 여성 노동자를 끌어당겼다. 여성이 더 깔끔해서도, 더 헌신적이어서도 아닐 것이다. 남성 중심의 경제 구조 속에서 여성이 저렴한 임금으로 고용되는, 젠더화된 시장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남자화장실 문턱을 넘는 행위. 성별의 경계보다 생존이 더 중요하다는 여성 노동자의 경제적 취약성을 상징하는 듯하다. 더 안타까운 점은, 이 역설적인 풍경이 같은 여성들에게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반 여성들에게 남자화장실은 미지의 영역이다. 그 닫힌 문 안에서 또 다른 여성의 땀방울이 흐른다는 사실. 우리는 알기 어렵다. 일상에서 마주치지 않는 모순은 쉽게 잊히거나 무시되는 것은 아닐까. 성별이 분리된 공간이 만들어낸 단절이다.


우리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거창한 사회 비평은 잠시 내려두자. 가장 단순한 '엄마'라는 이미지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그녀들에게 헌신과 청결의 의무를 부여했다. 가족의 건강과 청결을 책임지는 사람. 하지만 그녀는 지금 낯선 남성들의 가장 깊은 더러움을 치우고 있다. 생계를 위해서.


이것이 우리가 만든 모순 아닐까. '어머니'라는 이미지 뒤에 숨겨진, 저임금 노동의 현실. 우리는 그녀의 헌신적인 돌봄은 사랑했지만, 그 노동에는 합당한 가치를 지불하지 않았다. 그 문턱은 단순히 남녀의 공간을 가르는 문이 아니다. 우리가 여성에게 부여한 낭만적인 책임감과, 냉혹한 경제적 현실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저 오늘도 낯선 경계를 넘는다. 이 풍경은 우리에게 묻는 것 같다. 우리 사회는 이 어머니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청결을 언제까지 모른 척할 것인가. 그녀들이 변화를 바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이 침묵하는 모순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노동의 가치를 성별이나 이미지 대신 공정함으로 평가하는 작은 변화는 결국 우리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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