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상처와 결핍
어른들이 농담처럼 던진 말은 때론 어린아이의 마음에 평생 남는다. 엄마가 떠난 뒤, 사람들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내게 유독 더 날카롭게 다가왔다. 누구네 집이 어젯밤에 부부싸움을 했다더라, 둘째가 태어나면서 싸우는 일이 잦아지더라, 결국엔 여자가 집을 나갔다더라…
그럴 때일수록 나는 고개를 더 빳빳이 들고 다녔다. 그 누구네가 우리 집은 아니라고 애써 부정하듯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어른들은 대놓고 쐐기를 박아버리기도 했다.
할머니의 심부름으로 집 앞 슈퍼마켓에 미원을 사러 갔다. 슈퍼마켓 아저씨는 거스름돈을 내게 주며 말했다.
“이제 네가 밥 하니?”
단 일곱 글자였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명확했다. 동정도, 위로도 아니었다. 그건 조롱이었다. 나는 아저씨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거짓말을 했다.
“우리 엄마가 해요.”
무슨 상관이에요?, 어른이 아이한테 할 말은 아니잖아요?, 불난 집에 부채질하세요? 속으로 온갖 말을 쏟아냈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최대한 나에게 닥친 현실을 부정하는 것. 나에겐 이제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티 내지 않는 것. 그저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최선이었다.
집에 돌아와 슈퍼마켓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자 할머니의 얼굴이 붉어졌다. “다시는 그 가게에 가지 마라.”
할머니의 목소리에 섞인 분노가 이상하게도 내 속을 조금 풀어줬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아빠는 인천으로 발령이 났다. 나와 동생은 아빠와 떨어져 할머니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3층짜리 다세대 주택이었는데 한 건물에 같은 반 친구가 살았다. 등교할 때도 같이 가고 방과 후에도 같이 다녔다. 우리 집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셨으니 주로 친구네 집에서 자주 놀았다.
어느 날은 친구네 엄마가 내게 물었다.
“그런데 너희 엄마는 어디 가셨니?”
“여행 갔어요.”
할머니는 누가 물어보면 엄마는 여행 갔다고 말하라고 했다. 그 당시엔 이혼도 흔치 않았을뿐더러 꽤나 큰 흠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여행 갔다고 대충 둘러대면 더 이상 묻지 않을 줄 알았지만 아줌마는 집요했다.
“어디로 가셨는데?”
“음…”
목이 바짝 말랐다. 어느 나라로 갔다고 말해야 호기심 많은 이 아줌마를 납득시킬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렸지만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지자, 성급한 아줌마가 대신 답을 내렸다.
“세계일주라도 가셨나 보구나?”
“네….”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꼭꼭 숨겨두었던 우리 집의 비밀을 누군가 용케도 찾아낼까 조마조마했던 순간이었다. 다행히 아줌마의 힌트 덕분에 나는 그 뒤로도 누가 물어보면 엄마는 세계일주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믿을 거라고 생각할 만큼 순진했다. 아줌마가 단순히 호기심에서 물었던 건지, 아니면 비꼬기 위해 한 말이었는지 이제는 알 길은 없다. 다만 그 말은 내가 처음으로 엄마의 부재를 세상에 인정한 순간이었다. 아주 길고 먼 여행,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를 여행을 떠났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