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에게 낙인을 찍었나

PART1. 상처와 결핍

by 미고

그렇게 떠날 거면 낳지를 말지, 버리고 가버릴 거면 사랑을 주지나 말지.

엄마가 떠났을 때, 내 동생은 고작 두 돌이 지난 아기였다.


사람들은 그 어린 핏덩이에게도 낙인을 찍었다.

“부모 갈라놓는 자식이 있다더라”,

“그 집은 둘째가 태어나더니 자주 싸우더라.”

그렇게 동생은 모르는 사이, 말 한 줄짜리 낙인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열한 살이었던 나는 뭘 안다고,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화가 치밀었다.


한편으로는, 나 자신을 향한 분노였다. 사실 우리 부모님을 갈라놓은 건 동생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나였다.

엄마에 대한 모든 걸 아빠가 알아야 하고, 아빠에 대한 모든 걸 엄마가 알아야 한다고 믿었다.
내가 본 것, 들은 것,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숨기지 않았다. 그런 나의 순수함이 오히려 두 사람 사이에 오해를 만들었다.


어려서부터 '애늙은이', '똑순이' 소리를 들었던 나였다. 부모님은 그런 어린 나의 말을 너무 신뢰했던 것 같다. 그저 어린애가 한 말이거니 하고 넘겨줬다면 좋았을 텐데, 꼭 그 말이 화근이 되어 싸움이 일어나곤 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엄마가 우리를 떠난 이유는, 어쩌면 동생이 아니라 나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동생은 너무 어려서 그런 얘기가 오갔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거다. 낙인은 그 아이에게 향했지만, 감당은 오롯이 내가 해야 했다. 그래서 더 무거웠다. 너무 어렸던 동생 대신, 나 혼자서 그 말들을 기억하고, 삼키고, 끌어안았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하지 말았어야 할 일들이 수백, 수천 가지는 될 것 같았다.
방학 때 일기 좀 밀리지 않고 쓸걸.
엄마 아빠 말 좀 더 잘 들을 걸.
동생을 좀 더 보살펴줄걸.

정확히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잘한 것도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
엄마를 붙잡아 둘 만큼의 힘이, ‘나라는 존재’만으로는 역부족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 죄책감 같은 것이 열한 살의 마음속에 피어나 자라고 있었다. 나의 전부였던 엄마가, 나 때문에 떠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짓누를 때면 고구마 백 개를 한 번에 먹은 것처럼 목이 꽉 막혀 통증이 심해졌다.

큰소리로 엄마를 부르며 울부짖었지만, 그 누구도 내가 엄마를 부르며 우는 소리를 들은 사람은 없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눈물이 났던 적도 있었지만, 절대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다.


그렇게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이번에도 할머니는 알아차리신 모양이다.
내가 아주 많이 반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빠도, 나도, 동생도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할머니는 온몸으로 부정하셨다.

동생을 씻기면서도 “나쁜 년, 이 핏덩이를 두고…”
밥을 먹다가도, 청소를 하다가도, 시도 때도 없이 엄마 욕을 해댔다.


나는 소리 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할머니는 보란 듯 더 큰 소리로 말했다.

그 모습이 그때는 너무 싫었다. 엄마를 욕하는 할머니가 미웠다.
전부 다, 도망간 엄마 탓으로 돌리는 게 야속했다.


하지만 그래서…
그래서 우리가 살 수 있었다.

모든 게 엄마의 탓이어야만 남은 사람들이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열한 살의 나도, 두 돌 된 동생도, 삼십 대의 아빠도.


지금 생각해 보면, 할머니가 우는 모습을 나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어쩌면 모진 욕이 할머니에겐 눈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욕을 해야 견딜 수 있었고, 욕을 해야 주저앉지 않을 수 있었던 거다.


그렇게, 예순이 넘은 할머니의 육아가 다시 시작됐다.
상처받은 자신의 장남과 그 새끼들이
어떻게든 엄마를 잊고 새롭게 살아가기를 바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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