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까지 곤두설 필요는 없다
아이는 태어난 직후부터 조리원을 나설 때까지 여러 검사를 받았다. 처음으로 받았던 검사는 선천성대사이상검사였다. 검사를 위해 아이를 간호사에게 넘길 때 이런 말을 들었다. 엄마, 놀라지 말아요. 피를 뽑을 건데 아이가 많이 울 수 있어요. 그래도 너무 놀라지 말아요. 괜찮아요. 검사를 받으러 가기 전에 조리원의 한 여자도 그때 들은 아이의 울음소리가 너무 안쓰러워 손이 달달 떨렸었다고 말했었다. 과연 그들의 말처럼 온힘을 다해 악을 지르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덩달아 마음이 불안해졌지만 그들의 말처럼 원래 그렇게 우는 것이고, 이건 꼭 받아야 하는 검사였다. 마음을 가다듬고 아이를 기다렸다. 그다음으로는 G스캐닝검사라는 유전자 검사와 난청 검사를 받았다. 두 검사와 달리 G스캐닝검사는 따로 비용을 지불하여 받는 추가 검사였다. 처음에는 받을 생각이 없었는데 수간호사가 아이의 일자 손금을 보더니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괜찮아 보이긴 하지만 마음이 편해지려면 검사를 받아두는 게 좋다는 것이었다.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돈은 이십만 원이 넘었다. 딸의 심약함을 익히 알고 있던 아빠가 돈을 내줄 테니 당장 검사를 받으라고 하였다. 검사 결과 모두 정상이었다. 결과지를 받아들었을 때에는 꼭 큰일을 치른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제야 모든 게 끝났다는 안도감이 들며 마음이 한결 가뿐해졌다.
아이는 아무 문제 없었다. 두혈종과 안면 비대칭, 쇄골 골절, 연어반 등의 증상이 있긴 하였으나 이는 신생아들이 자주 겪는 증상인 데다 시간이 흐르면 나아질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걱정을 멈출 수 없었다. 왜 젖병을 물고만 있고 잘 빨지는 않지? 평균치보다 적은 양을 먹는데도 시간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지? 몸무게는 왜 늘지 않는 거지?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매해 얼마나 자랐는지, 몸에 이상은 없는지를 병원에 가서 확인받아야 한다. 병원에서는 아이의 대근육 운동, 소근육 운동, 인지, 사회성 등등의 발달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정상의 범주에 있는지), 몸무게와 키가 또래에 비하면 어느 정도인지 굳이 백분율로 알려준다. 나는 이 영유아 검진이 싫었다. 어떤 보호자는 이를 아이가 얼마나 잘 자랐는지 확인받는 이벤트로 생각하는 듯했다. 또래보다 키가 훌쩍 크고 살이 잘 올랐다는 검사 결과지를 사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고 그걸 본 사람들은 댓글로 감탄사를 연발했다. 검사받을 때마다 애가 빼싹 말랐어요, 고기를 더 먹여야겠네 따위의 말을 듣는 나에게는 낯선 광경이었다. 굳의 의사뿐만 아니라 동네에서 마주친 사람들도 곧잘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얼마 전에도 놀이터를 마구 뛰어놀던 아이에게 간식을 건네던 할머니가 나에게 아이의 나이를 묻더니 저렇게 작고 말라서 어떡하냐고 위로했다. 아이가 쭈뼛거리며 간식을 거절하자 그러니 이렇게 몸집이 작지 같은 말도 하였다. 아이보다 한 살이 많은 그 할머니의 손녀딸은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었는데 과연 할머니가 보기에 아이가 걱정스러울 만도 했다.
처음에는 이런 일들이 신경 쓰였다. 아이가 태어나 처음 받은 검진에서 의사는 아이의 소근육 운동을 눈여겨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당장은 너무 어리므로 이런 수치가 곧 문제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장할 때 주의 깊게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의사 말대로 아이는 너무 어렸으므로 어떤 신체 반응만을 보고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타부타 말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의사가 집중했던 아이의 문제 행동은 겉보기에는 딱히 유별나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권위 있는 의사가 아이를 유심히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하니 괜히 마음이 불안해졌다. 두 번째 검진에서는 발달 정도는 준수한 편이나 아이의 키와 몸무게의 백분율이 많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50퍼센트를 넘겼지만 지금은 20퍼센트가 되었다고, 엄마가 더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이전부터 아이의 발달 정도에 신경이 곤두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도드라지는 문제가 있지 않는 이상, 아이의 성장 속도는 제각각이므로 이 시기에 이런 운동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불안해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면서도 의사가 육 개월도 안 된 아이를 앞에 두고서 미간을 살짝 찌푸릴 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의사의 말에, 검사 결과지의 수치에 휘둘리고 있었다. 아이를 보통의 아이처럼 키우고 싶어서. 오십 퍼센트 전후의 백분율을 가진 아이로 키우고 싶어서. 웃기는 일이다. 나는 이십대 후반 이후로 늘 살쪄 있고 운동 능력도 바닥이다. 체력도 나보다는 아이가 훨씬 좋다. 나부터 보통의 성인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는데 왜 아이에게만 이토록 신경 쓰는가. 왜 검진 결과지를 제출하라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연락을 받고선 마음 한쪽이 불편해지는가.
다행히 지금은 이런 일들에 덜 휘둘리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 먼저 검진받는 소아과부터 바꿨다. 소아과의 할아버지 의사는 내가 제출한 검사지를 보더니 점수가 너무 박하다며, 할 수 있으면 잘할 수 있는 것과 다름없다면서 내가 매긴 점수를 수정해줬다. 또 검진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눈에 띄는 문제가 없다면 세세하게 확인해볼 필요가 없다는 식이었다. 아이의 기저귀에 주황색의 무언가가 묻어나와도, 아이의 감기가 너무 오래가는 듯싶어도 모두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반년이 지나도록 흡수되지 않는 두혈종도 곧 괜찮아질 거라고 이야기해주었는데 정말로 의사의 말처럼 모든 게 괜찮아졌다. 게다가 의사의 말투처럼 나의 마음도 느른해져서 인제는 아이의 몸무게 백분율이 5퍼센트 내외가 나와도 참 몸의 효율이 좋지 않은 아이군 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대체로 음식을 잘 먹는 편이고, 또래보다 적게 나간다지만 아이의 키나 몸무게는 매해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은 생각보다 공고하지 않다. 그러므로 늘 되새겨야 한다. 왜 불편하지? 뭐가 불편한 거지? 질문을 던지고 거슬러 올라가면서 불안의 씨앗을 찾아 실체를 확인해야 한다. 그렇게 확인하다 보면 마음속 불안이 대개는 별것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런 식으로 마음을 다지는 것이다. 마음이 단단해져 남의 말에 덜 휘둘리도록. 아이가 너무 말랐으니 고기를 더 먹여야겠다는 말을 듣는 게 뭐가 어때서. 소근육 운동이 여전히 미진하니 집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듣는 게 뭐가 어때서. 어린이집에 다닌 지 반년이 넘도록 다른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등 사회성이 부족해 보인다는 말을 듣는 게 뭐가 어때서. 그냥 염려해주는 그들의 마음만 고맙게 생각하면 된다. 물론 마음먹은 대로 쉽게 되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는 아직 태어난 지 몇 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판단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다. 아마 아이는 잘 자랄 것이다. 아이의 어떤 수치가 보통의 범주 안에 들지 않아도 결국 아이는 아이대로 잘 자랄 것이다. 수치보다는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랄지가 더 중요하겠다. 그걸 늘 생각해야 한다. 잊어버리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