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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애 Sep 22. 2022

그냥은 절대 못 버려

그냥은 절대 못 버려

한동안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를 즐겨 봤다. 사람 사는 게 연예인은 딴 나라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들의 생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신박한 정리’에 집 정리를 의뢰한 연예인들의 집 내부를 보고 어떻게 저렇게 쌓아놓고 살고 있을까 싶다.

‘물건을 비우면 공간이 보이고 공간이 보이면 사람이 보인다. 정리를 하면 자리가 보인다.’고 한다. 우리 집도 과감한 정리가 필요한데 마음은 굴뚝같으면서도 막상 버려지지가 않는다. 충분히 쓸 수 있는 물건을 못 버리는 건 내 천성으로 봐야 할까? 어쩔 땐 스스로 생각해도 궁상스럽게 여겨지면서도 바뀌지가 않는다. 

우리 집이나 점방에 헌 비닐봉지 모아둔 자루도 있다. 남편이 비싼 집에 허접스런 것들을 쟁여놓아서 값어치 떨어지게 한다며 버리자고 하자 다 쓸 데가 있다고 똥고집으로 맞섰을 때 남편이 정곡을 찔렀다.

“왜 그렇게 비닐봉지에 집착한가? 자네, 그러다 늙어서 TV에 나오겠네.” 

저장강박증세로 온 집 안을 쓰레기더미로 발 디딜 틈 없이 쌓아놓은 쓰레기 할머니가 될 기질이 다분히 보인다고 한다. 알뜰이나 근검절약과는 다른, 일종의 병이라는 것이다. 그제야 남편의 신경을 건드리면서까지 빈 박스랑 폐지를 모으고 비닐봉지를 버리지 못하고 집착하고 있는 나를 돌아본다. 인정하기 싫지만 내 안에는 고물 할매 근성이 뿌리 박혀 있는 것 같다. 이러다 진짜 고물 리어카 끌고 골목을 배회하며 쓰레기더미나 뒤지지 않을지.

어려서부터 길을 가다가 못이나 고무 밴드, 옷핀 하나를 봐도 주워 담았다. 굴러다니는 빈병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주워오는데 알루미늄 캔이 값이 나간다는 말을 들은 후부터 빈 캔에도 눈이 간다. 

쓰레기 분리수거하여 버리러 갔다가 전봇대 밑에 버려진 쇼핑봉투 안에 플라스틱류와 섞여 있던 소주병 두 병을 주웠다. 여전히 나 스스로를 알뜰과 근검 정신에 가둬두고 세입자들이 버린 빈 캔을 모은다. 구겨진 종이와 비닐을 따로 분리하고, 아직 쓸 만한데 버린 물건을 챙긴다. 통닭이며 피자를 시켜먹고 버린, 뜯지 않은 간장 소스, 피자 소스, 나무젓가락을 챙긴다. 누군가 쓰다 버린 공책을 봐도 아까운 생각이 들어 쓴 부분만 찢어 폐지로 처리하고 안 쓴 부분은 챙긴다. 아이들에게 수학 문제나 영어 단어라도 더 익혔으면, 하는 바람이 빈 노트에 대한 집착으로 남았을까. 창고에 30년 묵은 B5 용지들이 누렇게 빛바랜 채 있다. 

요즘 아이들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있어 노트에 쓰는 것과는 거리가 먼 시대에 살고 있고 질 좋은 종이들이 나와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는데도 그냥은 절대 못 버리겠다. 아깝다고, 언젠가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놔뒀지만 아직도 쓸 일이 없는 물건들 중 넘쳐나는 볼펜은 언제 다 쓸까? 버리지 못한 미련의 늪에 빠졌다. 

한 무더기의 볼펜을 세어봤다. 세어본 볼펜만 263자루. 내 평생 다 못 쓰고 남을 분량이다. 삼성생명, 교보생명, 흔들흔들 잎새주, 이름도 제각각이다. 안 세어본 볼펜이 또 나온다. 이 방, 저 방, 주방 서랍에서도 발견되고 여행 가방에서도 나온다. 유행가 가사 ‘니가 왜 거기서 나와?’가 절로 나와 뒷목 잡는다.

‘오메! 저걸 언제 다 쓸 것이여?’ 내가 봐도 많다. 좀이 아니고 아주 많다. 남편이 그걸 보더니 자기 친구인 정구 씨한테 열 자루를 갖다 주자고 한다. 주는 것은 상관없으나 받은 사람 손에 들어가 천덕꾸러기로 굴러다닐 걸 생각하니 주저하게 된다.

우표 수집하듯 일부러 사 모은 건 절대로 아니다. 아이들이 쓰다 둔 것도 있고 세입자가 이사 나가면서 몽땅 버리고 간 것을 쓰레기 분리수거하다가 모으다 보니 그렇게 됐다. 길을 가다 유기된 걸 주워온 볼펜도 있다.

정리의 시작은 ‘버리기’라고 한다. 명품 옷이나 가구, 값비싼 신발들도 미련 없이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고 하지 않던가. 그냥 깡그리 버리면 되는데 남들이 쓰다 만 볼펜이나 헌 노트가 뭐라고 다 쓰지 않은 상태로는 도저히 못 버리겠다. 

어떤 사람은 종이가 없어서 신문지에다 그림을 그리고 다 쓴 볼펜을 수백 자루 모아두었던데 나는 어느 세월에 다 쓸까. 옛날 같으면 영어 단어 암기를 먹지처럼 새까맣게 만드는 숙제에 썼으련만 이제 어디에 쓸까. 펜화에 소질이 있다면 딱 좋겠다. 머리 색칠만 해도 쑥쑥 줄어들 것인데 재주가 메주다. 

나름의 쓰는 방법을 모색했다. 필사의 효용을 실천하여 ‘시집 필사하기’다. 다른 사람이 쓴 시를 반복해서 쓰고 외워보자. 수필 필사도 해볼까?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쓰고 또 쓰다 보면 노트도, 펜도 조금씩 줄어들겠지. 한 자루를 다 쓰는 데 며칠이나 걸릴까.

손가락 운동과 뇌 운동을 겸하게 되니 치매 예방도 되겠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 잡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시집 한두 권은 외워지겠다. 그야 말로 일석이조다. 그런데 몇 날 며칠을 써도 볼펜 한 자루를 다 못 쓰고 있다. 이 속도로는 한 자루로 한 달도 더 쓰겠다. 얼마나 줄어들었을까, 볼펜 몸통을 비틀고 볼펜심을 불빛에 비춰 봐도 요즘 볼펜심 대롱은 불투명하여 속이 보이지 않으니 남은 양을 알 수가 없다. 부지런히 필사하고 일기 쓰고, 마르고 닳도록 쓰고 또 쓰다 보면 줄어들까. 

내 남은 날 안에는 다 쓸 수 있을까. 남겨 놓고 눈이 감길까. 아마 눈을 감았다가도 “오메! 저거 다 써야 한디!” 하고 벌떡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내가 다 못 쓰고 가면 니들이 이어서 마저 쓰라고 물려주고 갈까. 

‘우리 어매는 돈 되는 것이나 남겨주고 가지, 쓰다 만 볼펜이랑 헌 노트를 무슨 신주단지처럼 꼭 끌어안고 움켜쥐고 있다가 남겨주고 가나? 물려줄 것이 그라고 없는 모양이네.’ 하지 않을까

다시 시집 외우기에 돌입한다. 넘쳐나는 볼펜을 그냥 버릴 수 없어 쓰는 데까지는 써 볼 참이다. 내 남은 날 안에 다 쓰고 가려면 필사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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