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가장 힘든 것은 외출이다.
유모차를 태워 집주변을 산책하는 정도는 상관없다.
주말에 아이와 단둘이 하는 외출은 큰 도전이고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음~ 엄마랑 둘이 나왔구나"
"아빠는 어디갔어? 엄마랑만 나왔어?"
아이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방긋 방긋 웃었다.
포동포동한 얼굴에 보조개를 하나 박아 넣고는 부끄러워서 어깨를 움츠리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정형성에 맞추려고 노력하고 조금이라도 다른 것을 참지 못하는 것 같다.
산도 하늘도 가리고 병풍처럼 늘어선 고층 아파트를 올려다 보면 처음 63빌딩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느낀 공포감이 떠오른다. 작은 화면의 숫자가 변할 때마다 중력을 거스르고 있다는 기분 때문이었을까 억지로 끌어올려져서 힘겹게 위로 향하는 듯 엘리베이터가 끙끙대는 것 같았다. 귀가 멍멍하고 땅에서 발이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당장이라도 추락할 것만 같던 생생함이 오금을 타고 올라왔다.
내가 여러가지 이유로 아파트를 싫어하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켜켜이 쌓아올린 사각형의 공간이 만들어낸 열망과 노력이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었고 내가 바라는 것은 늘 땅과 가깝고 많은 이들이 바라보는 방향이 아니었다.
그들은 남들과 다르지 않은 정형화된 공간은 나도 다른 이와 비슷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남들이 누리는 것에서 뒤쳐지지 않고 있음에 성취감과 안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여태까지의 나의 삶이 남들이 애써 맞추려고 하는 정형성에 꼭 들어맞지 않음은 내가 추구하는 것이었고, 결국엔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나는 그것에 전혀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었나 보다.
다르다는 것, 무엇인가가 빠져버렸다는 것에 말할 수 없는 상실감과 두려움에 휩싸여 위축되어가는 스스로에 놀라면서 인정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속으로 망설이고만 있다.
나갈까?
그냥 집에 있을까?
나가 볼까?
며칠 전 아이와 손을 잡고 집주변을 걷고 있었다. 한 손에 꼭 쥔 작은 손이 귀여워 마냥 행복했다.
이제는 이렇게 함께 걸을 수도 있구나.
삑삑 신발을 신고 연속해서 발을 내딛는 아이는 열심을 다해 걸었다. 아이의 두 눈동자는 편평한 구체가 아니라 유독 볼록한 구체를 이루고 있어 무언가를 주의깊게 바라볼 때는 검은 눈동자가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앞서서 저 멀리 엄마, 아빠와 양손을 잡고 걸어가는 또래를 보는 아이의 눈빛은 강렬하고 집요했다. 한 손만 내어주어 균형을 잃은 어깨가 안쓰러웠다.
아무렇지 않은 듯했지만.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양손을 잡고 손그네도 못 태워줬네.
양손으로 균형을 잡고 걸음마도 못 해줬네.
아빠없이 엄마가 혼자 데리고 나가면 사람들이 우리 아이를 어떻게 쳐다볼까?
속으로 무슨 얘기를 할까?
아이와 둘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상상으로 그려 보았다.
타인의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그래, 주말에만 외출할 수 있는건 아니니까. 평일에 가자.
평일에는 엄마랑만 나가도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할거야.
근데,
왜?
속상해서.
그냥, 이것 저것.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우리도 완벽한 구성이었을 때가 있었잖아.
진짜로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 때는 속상하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어.
그냥 매일이 살얼음판 같았으니까.
머리 뒷쪽이 늘 휑했어. 찬바람이 거기로만 부는 것처럼.
그 때 걸음마 시작했는데, 엄마 아빠 손 잡고 걸음마 한 적 있었어?
음....
생각해 보니 한 번도 없었네.
딱 한 번, 호수를 둘러 보고 눈밭에서 할머니랑 한 쪽씩 손 잡고 걸었던 적은 있었지.
그 때 속상했어?
아니, 아무 생각도 없었어.
그냥 오늘 하루 아무 일도 없이 잠들기만 바랄 뿐.
눈 밟는 소리를 들으며 한 발씩 내딛는 아이가 대견하고 사랑스럽기만 했어.
아무것도 아닌게 아닐까?
길을 지나면서 수많은 사람과 스치지만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이 있어?
하루 이상 기억에 남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어?
글쎄...
오늘 날씨가 정말 좋다
나도 다른 사람들한테 관심이 없는데 다른 사람들도 나한테 관심이 없겠지?
당연하지.
그럼 나가볼까?
오늘 정말 날씨 좋다.
미술관에 갈까?
호안 미로 전시를 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래. 거기를 가야겠다. 전시 보고 들어오면 좋겠어.
오늘 날씨도 좋고 바람도 불고.
애기 데리고 카페에 갈 수 있을까?
한 번 해보지 뭐.
"우리 씻자~ 엄마랑 놀러가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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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적끈적한 검은 섬모가 움찔하며 수축되었다.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어둠에게
"나는 간다. 손잡이가 없는 문을 열고. 나는 나간다"
고 외쳤다.
문은 아주 가볍고 쉽게 열렸다. 문이 열리는 감각조차 느낄 수 없게 부드럽고 가볍게 열렸다.
어쩌면 문이 없었는지도.
하지만 문을 열기 전까지. 그 문은 이음새도 열고 닫기 위한 장치도 없었다. 두꺼운 벽처럼 점점 좁혀들어올 뿐이었다.
몸을 움츠릴수록 공간을 줄어들고 있었다. 문은 더욱 열지 못하는 것으로 변하고 있었다.
더이상 몸을 움츠릴 수 없을만큼 공간이 줄어들었을 때 문을 열고 나온 것인지도 몰랐다.
용기를 내기까지 잠을 자지 못하고 방안을 서성일 만큼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용기는 마음의 준비가 완성되었을 때, 더이상 담아두지 못할 만큼 바라고 다친 것이 아물어 단단해지고,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수많은 경우를 만들어 낸 후에야 조금씩 생겨나는 것이었다.
하얀 바탕에 단순한 선과 도형으로 이뤄진 호안 미로의 그림은
어린 아이의 마음처럼 보였다.
빨강, 검정, 파랑.
원색의 도형과 선을 그린 작은 그림을 보는 아이의 눈동자가 사랑스러웠다.
혼자서 유모차를 끌고 있는 나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동통한 허벅지를 드러내고 사람들과 눈을 맞추는 아이만 바라볼 뿐.
먹지도 못하는 커피 사탕과 카라멜을 건네며 사람들이 다가왔다.
"애기가 엄청 예쁘네. 엄마 닮았구나"
"아유, 너 외교관 될 얼굴이다"
"자알~ 생겼네"
"감사합니다"
주전부리로 가득 채워진 주머니가 걸을 때마다 부스럭 거렸다.
아이와 외출하면 항상 마음이 꽉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이렇게 사랑을 많이 받을 수 있을까.
나는 기도한다.
"주여, 우리 아이가 사랑할 줄 알고 사랑받을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게 해 주세요.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받은 사랑을 주변에 나눌 줄 아는 삶을 살아가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