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조각을 잘라

by 은의 정원

실링팬을 설치한 지 일주일째다.

올 여름 최고의 선택이었다.

천정에서 바람을 일으켜 공간 전체의 공기를 순환시켰다. 덕분에 하루종일 집 안 기온이 서늘해졌다.

에어컨의 냉기 때문에 감기 걸릴까봐 아이에게 얇은 내복을 입히고, 껐다 켰다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실링팬은 하루종일 켜두어도 온도가 적당해서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를 피해갈 수 있었다.

가족 모두가 실링팬 설치를 만족해했지만 단 한 존재만이 온 몸으로 이를 거부하고 있었다.


부릉 하고 팬이 돌아가기 시작하면

'이양'

외마디 외침과 함께 침대보 밑으로 잽싸게 몸을 숨겼다.

바들바들 떠는 작은 몸을 하얀 천 밑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뭐가 무서워서 그래?"

침대보 밑에서 바짝 웅크린 몸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야옹"

작고 애처로운 소리다.


"샤샤야. 저게 그렇게 무서워?"


"야옹"

쉰 목소리다.


실링팬을 설치한 지 꼭 한 달만에야 샤샤는 이불보 밑에서 나왔다.

우웅~하고

시동을 켜는 소리에도 놀라지 않고, 침대보 위에 앉아서 바람을 맞았다.


"저렇게 겁 많은 고양이는 처음이야"


실링팬을 설치하기 몇 주 전에도 쇼핑백 더미 사이에 숨어있던 샤샤를 찾기 위해 온 집안을 뒤졌다. 쌀쌀한 봄이 지난 후 바람이 좋아 창문을 열어둔 채 외출하고 온 날이었다.

집에 들어와

"샤샤"하고 부르면 어디선가

"야옹~" 하며 대답을 하곤 했는데,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샤샤~ 어디갔어?"

창문인 열려있긴 하지만 방충망이 닫혀 있는데... 어디로든 밖으로 나갈만한 곳은 없는데...


"샤샤~"

아무 대답도 없는 아기 고양이를 찾아 온 집안을 뒤졌다.


"어머! 얘! 너 왜 여기 있어?"

빈 쇼핑백을 모아놓은 틈 사이에서 빼꼼 내밀고 있는 작고 노란 얼굴.

뾰족한 귀를 모은 채 자신을 찾아주길 기다리는 표정이었다.


"뭐가 무서웠어?"

"이야옹"

아주 작은 소리로 대답하는 아기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개를 살짝 숙여서 손길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으이구 불쌍해라. 이제 괜찮아. 자~ 이리와"

쇼핑백 더미에서 끄집어 내서 품에 안으니 한없이 파고들었다.


우리를 만나기 전 한 달 동안 샤샤는 어떤 시간을 보낸걸까?


나의 첫 고양이는 미야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 좋아하고 명랑한 개냥이였다. 낯을 가리는 고양이들이 놀러오면 신기하게 기다려주고, 긴다리를 쭉 펴고 걸으면서 사진 찍기를 즐겼다. 무릎 위를 떠나지 않고 잠을 자다가 손님이 오면 일어나 인사를 하던 고양이였다.


공방에서 지내다 집에 잠깐 데려왔을 때,

수반 속에서 유영하는 물고기를 발견한 미야는 두 발을 모서리에 올린채 동그란 눈으로 비린내를 풍기는 작은 존재들의 움직임을 좇았다.


"너어! 발 집어넣지 마!"

앞발로 물을 살짝 헤치며 사냥태세를 잡으려는 미야에게 엄마가 경고했다.


"미야우(알았어. 너무 재미있는 게 있잖아)"


"미야. 너 발 담그면 정말 혼난다!"


"미양(알았다니까)"


앞발에 물 속에 집어넣던 미야는 비린내만 맡고 수반을 떠났다.

딱 하루였지만 미야는 그렇게 집 안 곳곳을 탐색했다. 그래서 미야가 사고로 떠난 후 미야를 떠올리면 아주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던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샤샤야. 뭐가 그렇게 무서워? 샤샤야~ 걱정하지 마"

밤이면 침대보 밑에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실링팬이 멈추면 밖으로 나오던 어린 고양이가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적응한 후에 태풍이 몰려왔다.

침실 창 밖으로 은행나무가 비바람에 흔들리고 천둥 번개가 요란하게 지나갔다.

천둥번개와 비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낮동안 샤샤는 동굴처럼 포근한 집에 들어가서 잠을 자고, 밤이 되면 침대 가드에 앉아서 창 밖으로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와 검은 하늘을 가르는 섬광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풍이 지나간 후 열대야를 식히는 실링팬이 돌아가는 밤에도 샤샤는 침대 가드에 꼿꼿한 자세로 앉아 창 밖을 바라봤다.

샤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그 날 그 길로 가지 않았다면? 샤샤를 못 만났을텐데'

'길에서 살고 있었다면 밥이라도 먹고 다녔을까? 저렇게 겁이 많은데'


그런 질문들 속에서 천둥 벼락이 실 새없이 내리꽃히는 빗물이 흥건한 아스팔트 위에서 젖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떨고 있는 작은 고양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외로웠겠지.

두려웠겠지.


너를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샤샤야.


그리고 나도.

지금 여기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우리 모두 비, 바람도, 천둥도 번개도 두렵지 않게 되었구나.

정말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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