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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은 Nov 01. 2024

영천사람들

안방 가

 

"안방 가아~ 안방 가라구우~"


아이의 입을 손으로 막아보지만 아이도 필사적으로 대항했다.


"추워, 왜 안방에 안가~아?"


"어허, 쉿"


집주인에게 피난민은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괜히 사람을 잘못 들였다가 식구들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고, 식량을 두고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는데 주인이 대식구에게 헛간을 내어준 것이다. 어린 아이가 뭘 알겠냐마는 마냥 철이 없다고 소란을 피우는 아이를 그냥 둘 수도 없었다. 


"조용. 여기서 쫓겨나면 찬바람 부는 길에서 동태된다. 그만 울어!"

"안방은 무슨 안방이야?"

왈가닥 풍자이모가 거들었다.


"아유, 철없는 것이 뭘 아냐?"

이불을 한 겹 더 둘러 폭신하게 만든 자리에 아이들을 옮겨 앉혔다. 

"자, 이제 됐지? 아까보다 포근하지?"


한강을 무사히 건너 남양주까지 내려왔다. 국군과 인민군이 힘겨루기를 하며 오르내리는 동안 피난민들도 차츰 남으로 남으로 내려갔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누구하나 다치지 않고, 잃지 않고, 지붕있고 벽있는 곳에 머물 수 있게 돼서 감지덕지라고 할머니는 중얼중얼 기도를 드렸다. 

마차에 싣고 온 식량이 떨어질 때쯤 국군이 서울을 탈환하고 인민군을 쫓아 북으로 올라갔다는 얘기가 퍼져나갔다. 전쟁이 곧 끝날거라는 기쁜 소식에 한강을 건너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할머니가 문마다 걸어두었던 자물쇠는 문짝에 달린 채 마당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군화발이 집안을 휘젓는 동안 조약돌만한 무쇠 자물쇠는 조롱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어지럽게 나동그라져있는 집안 살림은 할퀴고 지나간 폭력과 약탈의 상황을 연상시켰다. 지붕과 기둥만 남은 집. 아귀가 틀어진 채 닫힌 문 안에 또다른 피난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얼마전까지 남의 헛간에서 비바람을 피하고 있던 처지라 할아버지는 그들을 함부로 내쫓지 못하고 건넌방에서 잠시 지내도록 했다. 


"그래도 내 집이 최고다. 아이고 이제 다리뻗고 살겠네"

"다리?  뻗고?"

안방가라고 떼쓰던 명희가 할머니 옆에서 다듬이 방망이만 다리를 모아 발끝을 밀고서 "하아" 한숨을 내쉬었다.

"요 작은 다리로 고생 많았다"

할머니가 한 손으로 두 다리를 꼭 꼭 쥐어가며 주물러주니 벌렁 드러눕는다.


어느새 망치를 찾아온 할아버지는 휘어진 경첩을 펴고 분합문을 달았다. 집에 돌아온 실감이 들었는지  잠이 든 명자 명희를 두고 할머니와 엄마는 부엌을 정리하고 들마루를 들어 지하실에 둔 물건들이 안전한지 살폈다. 


"아버지 어디 가세요?"

"동네 한 번 돌아보자. 어떻게 되었나 봐야지"

정균이 노인의 뒤를 따랐다. 골목마다 반가운 얼굴들이 서로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아이고 살아서 만나네"

반가운 마음에 누구랄 것도 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잘 견뎌냈었네. 살아서 다행이네.

서로의 등을 두드리고 끌어안았다.


다른 이유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흐르는 눈물만큼 서로를 위로하고 함께 애도했다.


"정균아~"

골목으로 이제 막 들어서는 얼굴들은 한참을 살펴본 후에야 마음 속이 덜컹하며 반가운 마음이 북받쳐 오르기도 했다. 

"어허 몰골이 이게 뭐야? 고생 많았지"

"어르신, 무사하셨네요. 정균이도. 흐 흑"

"잘 왔네 잘 왔어. 살아서 왔어"


길도 집도 어지러웠다. 무악재에서 독립문으로 향하던 너른 길은 무엇인지 분간도 되지 않는 것들이 쌓이고 널려있었다. 여자들이 집안 살림을 정리하는 동안 남자들은 손에 잡히는 대로 옮기고 치웠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 쪽으로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솜털도 못 벗은 어린애들까지 총알받이를 만들어놓고 쯧 쯧. 참. 죽은 놈만 억울하지"


난리통에 형무소 문이 열리고 도망간 죄수들도 있지만 죽은 사람도 많다고 했다. 군복을 입은 사람, 죄수복을 입은 사람, 군복도 죄수복도 아닌 옷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군복을 입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키가 작았다. 

전차가 지나가던 큰 길가에도 광화문 앞 대로에도 군복을 입은 키가 작은 주검들이 있었다. 생명을 잃고 검게 변해버린 얼굴. 하지만 그들의 앳되고 여린 얼굴은 선명했다.

아버지를 따라 독립문에서 광화문까지 폭력의 가해자이자 전쟁의 희생자가 된 주검들을 거두는 일을 목격한 정균은 오랜 시간 그 날의 기억을 지워보려 했다, 끄집어 냈다, 애도했다.

열 댓살 정도의 어린 청년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형제들 대신 골목에서 의지하며 함께 놀던 형들과 비슷한 나이의 얼굴들. 교복을 입고 학교 가는 늠름한 모습의 형들과 비슷한 나이의 얼굴들이 전찻길 가장자리, 광화문 대로에 포대자루처럼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남자들은 서둘러 그들을 땅 속으로 감췄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 다시 전차가 다니고 자동차가 다니고 사람들이 걸었다. 정균은 학교에 갈 때, 명자 명희와 극장에 갈 때, 엄마 심부름으로 시장에 갈 때 그 얼굴들을 떠올렸다. 힘없이 던져져서 흙에 덮이던 모습을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광화문 앞 대로변에 은행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라며 큰 가지를 활짝 펴고 노란 잎으로 거리를 덮을 때도 정균은 그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저 나무를 자라게 했구나. 아직 저 아래"


전쟁은 끝나지 않았지만 영천은 조금씩 정리되고 있었다. 파주, 원당 사람들도 모두 집으로 돌아와서 소식을 전했다. 혹시나 하고 영천 사람들이 돌아왔는지 궁금해서 찾아왔다. 

집 안의 젊은 남자들이 어딘가로 징집되었거나 산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몸을 피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명자 명희의 아버지도 아직 소식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훌쩍이면 할머니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잠자코 기다려 보자"고 했다.

그러면 명자 명희는 더 서럽게 아버지를 찾으며 울었다.

아버지같은 매형이 보고 싶은 정균도 훌쩍거렸다. 


명자네 왕고모 할머니네는 아들도 잃고 고초도 겪고 있었다. 난리 중에 서울대에 다니던 두 아들이 인민군에 끌려갔다. 끌려갔다고 하니 자진 월북이 아니라 납북된 것이라는데 죄없는 왕고모 할머니와 큰 딸이 매일 경찰서에 끌려가서 매를 맞고 있다고 했다. 


"아이고, 제 발로 간 것도 아니고 끌려 간건데 무슨 죄가 있다고 사람을 괴롭힌다는 거예요?"


"제 발로 가지 않았어도 그 동네에 서울대 다니는 아들 둘이 몽땅 북으로 갔다니까 의심하는 거지"


"빨갱이로 의심받는게 제일 무서운 세상이야"


"딸애는 하도 매를 맞아서 뼈가 다 말라붙었대요. 그냥 무작정 몽둥이로 두둘겨 패고 죽기 직전에 집으로 돌려보낸대요. 아이고. 이 놈이나 저 놈이나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저기 길 건너 박씨네는 월북했던 아들이 집에 왔다가 국군한테 잡혀서 총을 맞았다고 하고."


"그건 또 무슨 일이야?"


"밤에 몰래 어머니 보러 왔다가 그랬다네"


집에 돌아온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울었다. 기다리지 않는 척, 슬프지 않은 척, 두렵지 않은 척을 하며 살 수는 없었다. 가릴 수 없는 슬픔과 기다림, 원통함과 두려움으로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을 보내고 있었다.

땅을 밟으며 그 땅 아래 묻힌 수많은 목숨을 생각했다. 보지 않은 척, 모르는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또다른 가족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아이들은 독립문 앞에서 널을 뛰고 팽이를 치고 고무줄 놀이를 하며 미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헬로우 기브미 찹찹"


무악재 고개를 넘어오는 엔진소리가 들리면 풍자 이모는 잽싸게 달려 트럭에 탄 미군들에게 손을 뻗고 외쳤다.

"헬로우 기브미 찹찹"


달리는 트럭에서 던져진 초콜릿, 다이제스티브, 소시지, 사탕이 길바닥에 와르르 쏟아졌다.


"비켜 비켜 다 비켜"

풍자 이모는 바람개비 돌리듯 두 팔을 휘저어 아이들을 쫓아내고 그것들을 쓸어담았다. 이 동네에서 풍자 이모를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풍자 이모가 잔뜩 쓸어담고는 집으로 달려가면 아이들은 다른 트럭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이제 제법 뜀박질도 하는 명희, 명자, 정균은 무악재 쪽에서 트럭 소리가 들리면 놀던 것을 접고 집으로 냅다 달렸다. 대청에 자리를 잡고 앉아 여지없이 한아름 안고 들어오는 풍자이모를 기다렸다.


사탕, 초콜릿, 다이제스티브를 까먹으며 명희가 다리를 앞뒤로 까불었다.

"엄마, 엄마, 아까 나 널뛰는 데 미군들이 막 사진 찍어갔어"


"너가 널 뛸때 요상하게 하잖아"


"요렇게 요렇게?"

명희가 두 손을 번갈아 가며 얼굴을 쓰다듬듯이 하고는 눈을 야시럽게 뜨고 어깨를 들썩였다. 


"요 여우 같은 것. 크크 또 해봐라"


"요렇게?"

입 안에서 초콜릿이 사르르 사르르 녹았다. 


"누나가 매일 미군 간식 얻어와서 너무 좋아"


"누가 유풍자를 당하겠니? 너 그러다 애들 때리거나 하면 안 된다"


사탕을 쪽 쪽 빨던 명자가 이모를 흘끗 쳐다봤다.

초콜릿 껍질을 벗기던 명희가 손을 멈췄다.


"저 번에 이모가 성만이 밀었는데?"


"으유 저 왈패 같은 년 욕심만 많아가지고. 이거 다 먹지 말고 갖고 나가서 애들 하나씩 나눠주고 와"


"때리지는 않고 밀기만 했어요"


"때린거나 민거나! 이럴 때일수록 욕심부리지 말고 나눠먹어야 해"


"치, 내가 얼마나 힘들게 줏었는데. 근데 엄마 저건 뭐예요?"


뒤주 옆에 종이상자가 낯설게 놓여 있었다. 뒤주가 큰 그림자를 만들어 감춰보려 했으나 반듯하고 날렵하게 접힌 종이상자는 반들반들하게 닦인 마루 위에 이질적인 존재로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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