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법령, 행정에서 보이지 않는 영향

공공종사자들에게 심어진 의식과 행동

by 감백프로

최근 한덕수 국무총리의 비상계엄 관련 재판의 1심 결과를 보고 떠오른 문구가 있었다.

'관료의 한계'

관료로서 끝까지 올라갈 수 있는 국무총리를 두 번이나 할 정도로 남부럽지 않은 공직생활을 하신 분이지만,

비상계엄에 휘말려 징역23년이라는 1심 재판결과로 대외적으로 보여지기엔 관료로서의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어느 정권을 가나 정권에서 찾는 유능한 관료였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 판단을 해야할 때와 결정을 해야할 때 피하거나, 어떻게 할 줄 모르거나, 별말없이 시키는 대로 하는 등 자기주도적인 부분에서 한계를 드러낸 걸로 보였다.

왜냐하면 관료는 정권과 법령 등에 따라 주어진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판단과 결정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관료로서, 공공종사자로서의 한계가 어떻게 설정되었는 지에 대해 궁금했다.

그래서 회사업무를 하면서 매일 접하는 문서와 법령, 그리고 정해진 정책과 법령에 따라 실행에 옮기는 행정이라는 단어에서 그 궁금함을 풀어보고자 하였다.


<문서 : ~~ (안)>

회사업무를 하면서 '방침'이라는 문서를 수년간 접하기도 써봤다. 사원시절 방침서를 작성할 일이 있어서, 과거 방침 사례를 보고 작성하였는데 사례의 대부분 문서들의 제목 끝에는 '(안)'이 붙어있었다. 그래서 사례대로 쓰면 되겠구나 해서 제목에 '(안)'을 붙였다.

초안을 작성하고 사원시절 당시 부장님께 초안을 보고드렸는데, 부장님께서는 '방침'이 무슨 뜻인지 아냐 부터, 어차피 방침대로 업무를 실행할 텐데 제목에 '(안)'을 빼라고 하셨다.

그래서 '방침(方針)'을 한자로 풀어보았다.

방위 방(方), 바늘 침(針),일의 방향을 알려주는 뜻이라는 것이다. 방침서를 근거로 일을 하면 되는 걸로 이어지는 데, 그럼 굳이 방침서 제목에 '(안)'을 붙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왜 제목에 '(안)'을 붙이는 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앞 서 연재한 글들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공의 안녕을 설립된 기관들의 장들의 임기는 길어야 2~3년 이내로 자주 바뀌고, 대선, 총선, 지방선거 등 각종 선거에 승리한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관에 따라 정책이 자주바뀐다. 이는 기관 임직원들의 잦은 인사이동으로 이어지게 되며, 인사이동은 짧게는 수개월 단위로 발생되기도 한다.

그러니 방침서 결재를 득해도 최종결재권자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관 종사자들이 기껏 열심히 방침서를 만들어도 언젠가는 그 내용이 바뀔 수 있기에, 본인이 맡은바에 대하여 확신을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든 인사이동을 하고, 인사이동이 될 수 있기에 당시 맡은 업무에 대하여 결정을 안하거나 못하는 상황까지 이어지게 된다.

방침서 제목에 '(안)' 을 붙여 언제든 방침서 내용이 바뀔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가 생겼을 경우 확정된 내용이 아니니 당사자는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여지 또한 생긴다.

'(안)'이라는 제목으로 인해 공공종사자들에게 무의식적으로 '결정장애''회피'가 심어지게 되는 것이다.


<법령 :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공공관련 업무는 법령을 근거로 실행된다. 그래서 나도 회사업무를 할 때에는 법제처 홈페이지에 가서 관련법령을 검색하고, 이해하고, 업무를 실행한다.

난 입사하자마자 3년 반 동안 운이 좋게 회사의 기술관련 업무지침을 제개정 업무를 주로하는 기준부서에서 근무하였다. 근무를 하면서 업무관련 법령들을 자주보게 되었는데, 법령 조항들 안에서 '~할 수 있다.' 문장들을 많이보게 되었다. 각종 여건 등을 감안하여 유연하게 관련법령에 따른 행정업무를 추진하라는 큰 뜻에서 '~할 수 있다.'로 조항이 만들어진거 같았다.

나도 회사의 건축설계관련 행정업무 기준 및 지침을 제개정하는 업무를 추진할 때, 실질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부서와 회사에서 추진하게 될 사업의 다양성을 감안하여 '~할 수 있다.'로 조항을 작성하였다.

그러나 '~할 수 있다.'라는 문장의 숨은 뜻에 대해 생각해봤다.

간단히 말하면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라는 뜻으로 생각되어졌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니 공공종사자들은 여건에 따라 관련법령, 업무기준 및 지침의 내용 그대로 업무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내용대로 업무를 안했다고 불이익이 생기는 것이 아닐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왜나하면 must do, have to do가 아닌 can do 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자면 법령, 기준, 지침 내용 그대로 업무를 안해도 되니 자연스레 회피할 수 있다는 의식이 공공종사자들에게 심어지게 되는 것이다.


<행정 : 시키는 일 하기>

'행정'이라는 뜻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 보니 '입법·사법을 제외한 국가 작용으로, 공공선·국가의 존립목적 달성을 위해 예산을 거두어 집행하는 능동적·적극적 국가작용'이라고 검색되어졌다.

즉 법을 만들거나, 법에 따라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닌,

법이 정한대로, 시키는대로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공공종사자들은 업무추진시 시키는대로 행동을 하다보니 행정이라는 뜻 안에 들어간 '능동'이라는 단어와는 달리 '수동'적일 수 밖에 없다. 물론 행정을 하면서 법이 정하지 못한 세부사항에 대하여는 결정하고 판단하겠지만,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업무를 추진하기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창의적이고 기발함과는 어쩔 수 없이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물론 공공 조직에서 정해진대로 시키는데로 업무를 추진하는 것이 평판이 중요한 조직의 특성상 가장 중요하고 필히 지켜야 할 덕목이기는 하다.


문서, 법령, 행정에서 공공 종사자들에게 공공종사자 자신들도 모르게 심어진 결정장애, 회피, 수동적인 행동과 모습들을 유추할 수 있었다. 내가 조금 깊이 파고들어 억지로 연결지어 언급한걸로 보여질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말과 글이라는 언어수단으로 말하고, 듣고, 보고, 쓰는 행동을 매일하고,

월급쟁이들이라면 하루의 반을 회사에서 보내기에,

공공종사자들의 근무환경, 공문서, 법령 등은 그들의 일상생활과 의식과 행동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근하고 나서는 능동적으로 하고싶은 것을 하나라도 더 하고,

할 말을 꼭 해야할 때는 할 말을 하는 활기찬 공공종사자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이 글에 남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