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 간 사내외 가깝게 잘 지낸분들과 대화에서 무례함을 느낀적이 수차례 있었다.
가족과 관련된 대화였다.
첫 번째로는 2년 전 헤어진 분과의 대화였다.
그 분께서는 앞으로 결혼을 해서 살아갈 때 평소 소비하는 생활보다는 절약하는 생활을 해야한다는 말을 전달하고자 하나의 예시를 들어 나에게 본인의 의견을 말했다.
부모님의 자산을 분배해야할 시기가 올 경우 당시 출산계획이 없었던 우리커플보단, 출산계획을 가질 수 있는 동생 커플에게 더 많은 자산이 갈 수 있으니 절약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를 들은 나는 수개월동안 만나면서 각자의 가족에 대한 수많은 대화를 나눴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어머니, 동생, 나 세식구가 힘들었던 기억이 있었음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거 자체에 생각을 하고 말하는 건가에 대한 의구심부터 들었다.
특히 그분을 제외한 어머니, 동생, 나 세식구간의 일이고 이러한 얘기자체를 식구들끼리 꺼내지 않았는 데도,
당사자들의 생각과 상관없이 양해를 구하기는 커녕, 앞 서 나가 생각했다는 거 자체에 매우 큰 불쾌함을 느꼈다.
대화를 주고받은 일주일 뒤에 자산분배에 대한 얘기를 꺼내면서 각자 가족에 대한 얘기를 할 때에는 신중했으면 좋겠다와, 절약해야한다는 이야기의 예시가 나에겐 불편했다는 말을 했다.
그분은 미안하다는 말보단 본인은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부터 말을 하였고, ‘본인은 할 말을 했다’라고 답했다.
이를 들은 나는 만인앞에선 좋은사람이어야 한다면서,
정작 가까이 있는 사람이 불편하다고 해도,
불편한 대화를 하려는 모습에
더 이상 만나는 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 헤어지기로 결심했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곧 헤어졌다.
두 번째로는 ‘개성, 단순, 불안, 결핍, 인간미’ 브런치 북에 나오는 캐릭터 중 한 분과의 대화였다.
약 1년 전이었다. 담당 현장으로 직원들과의 출장을 가는 도중 각자 출퇴근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대화가 시작됬다.
캐릭터 중 한 분께서는 나에게 평소 차를 타고 다니지 않았냐 하는 질문을 던졌고, 나는 대중교통을 꾸준히 이용한다 했다. 그분 머릿속에는 내가 사는 곳이 강남3구 중 한 곳이라는게 크게 각인되었던 나머지,
나에게는 차를 타고 다닐 줄 알았는데 의외라 하면서,
같이 이동하는 직원들에게 ‘OO엄마는 사채업자래요’라는 말을 했다.
이를 들은 나는 같은 부서에서도 수년간 일을 했고, 가깝게 지냈음에도 각자의 상황에 대해 잘 모르는건가에 대한 의구심과 아무리 말을 하고 싶어도 직원 가족의 정보를 왜곡해서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나이에 비해 철이 없고, 어른스럽지 않고,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나는 바로 잘못된 정보를 정정했다.
(정정과정에서 캐릭터 중 직급이 위에 있는 분 께서는 오히려 나에게 과거 가족 일 때문에 가족들이 힘들었겠구나 라는 말을 했다. 내심 듣고 고마웠다.)
대화를 주고받은 지 약 2개월 뒤 사무실에서 어머니에게 사채업자라고 한 캐릭터님과 대학병원 관련 이야기를 나누면서 외가집 어른들에 대한 얘기를 드린 적이 있었다.
캐릭터께서는 어머니의 직업을 정정한대로 인지하고 있었고, 외가집 어른들의 직업에 대해 부럽다는 표현을 하면서, 평소처럼 즐겁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저 본인 가족을 소재로도 이야기를 하듯이,
재밌게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
‘악의는 없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익숙해져서, 가깝다고 생각해서 가족얘기를 꺼낸거에 대해서도 잘 한건 없기는 하고, 내가 유의를 했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듣는 사람에 따라 불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대화에서 나랑 대화를 주고받은 분들의 공통점을 생각해봤다. 물론 조금 억지스러울 수는 있다.
둘 다 공공기관 종사자들이라는 것이고,
이직을 해본 경험, 즉 다른회사를 다녀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둘은 본인의 의지 또는 사회문란을 일으키는 중대범죄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일을 안하고 못해도 정년까지 회사를 다닐 수 있고,
회사 사람들과는 가족들보다 수면시간을 제외하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회사 사람들과는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로 지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회사는 민간기업과는 달리 업무능력보다는 평판이 상대적으로 진급에 큰 영향을 주기에 사람들과는 두루두루 잘 지내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첫 회사를 지금까지 계속 다닌다는 점에서 타 회사분들과 회사생활을 해본 적이 없을 뿐더러,
보이지 않은 심리적 우물의 벽이 하늘 높이 쌓여있어,
회사 밖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생활하는 지 비교자체가 될 수가 없다.
여기서 회사사람들과 가족보다 더 가깝게 지내는 것과 회사 밖 자체를 비교하기 힘든 심리적 환경에 대해 난 앞서 그들이 나에게 말한 부분과 연결시켜 생각해봤다.
그들은 평소 악의 자체가 없는 분들이긴 하다.
그러나 회사사람들과는 가족관련 이야기 등 내가 불편해하는 부분에 대한 대화가 그들은 물론 회사사람들 조차 대화 자체가 상대방에게 주는 불편함 등을 생각할 필요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익숙했다는 것이다.
익숙한 만큼 가까이 있는 나에게도 가족과 관련된 대화를 회사사람들과 대화하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해도 된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그들의 머릿속에 각인이 되고,
무의식적으로 대화를 건네지 않았을 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가족과 관련된 대화만큼은 각자 가족들 간 사정이 있고, 좋은 기억과 안 좋은 기억이 함께 있을 수 있기에 아무리 익숙하다 해도 듣는 사람에게는 불쾌함을 초래할 수 있기에,
쉽게 대화를 건네는 건 아니라 생각이 들었다.
(물론 회사사람들을 비롯한 주변 가까이에 있는 분들은 내 생각이 지나치고, 예민하다 할 수 있다.
그리고 각자 생각이 있고 살아 온 세월 동안 익숙해 진 것이 있기에, 그들의 생각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점점 핵가족화가 되고, 본인 자신에 대한 표현을 다양하게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이 소중한 시대가 되고 있다.
물론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할 수 있지만,
가족이야기를 비롯한 각자에겐 민감할 수 있는 주제의 대화를 하기 앞서,
가깝다고 생각해서 대화를 시작하기 보다는 상대측에 양해를 구하는 등의 행위나 혹시 불편을 줘서 미안하다는 말한마디리도 한다면,
익숙함이 무례함으로 변질되는 건 막을 수 있지 않나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