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너빈 Jul 23. 2024

40대 퇴사, 직장으로 인해 잃어버린것들.

퇴사 후. 친구와 커피 한 잔을 하며 얘기하던 중 퇴사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래서 뭘 하고 싶은데? 계획은 있어?

음..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

재취업하예전의 연봉이나 복지가 유지될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하지.

X친놈아. 그냥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텼어야지.


이 친구는 나의 퇴사에 대해 회의적인 친구다. 퇴사를 알렸을 때도 왜 그랬냐며 나를 나무라던 놈. 그놈과 차를 한 잔 하며 약 1시간가량의 토론 같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럼, 내일은 뭐 할 거야?

내일..? 글쎄다..운동이나 가지 않을까?

그거 외엔?

글쎄..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왜?

왜라니 ㅋㅋㅋㅋ 그냥 생각해보지 않았어 인마. 뭐 할지 몰라 ㅋㅋ

재취업은 생각 안 해봤냐?

글쎄, 아직은 모르겠다. 요즘 너무 행복하고 좋은데?

그래 좋지. 당연히 좋겠지. 다음날 출근 스트레스도 없고. 얼마나 좋냐 그래. 근데 말이다.

(대충 코 고는 소리와 잠에 든 제스처를 하며) 응?? 뭐라고?


끊임없는 가스라이팅을 시도하는 친구 놈. 내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자랐는지 알고 있는 놈이라서 그런가 걱정이 앞섰나 보다. 그래도 걱정해 주는 녀석이라도 있는 게 다행인 걸까. 그 녀석은 자영업을 한다. 직장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간을 잘 조율해서 사용하는 그 녀석과 백수가 된 내가 한가로운 낮 시간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하는 그 순간이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순간 드는 생각.

내가 잘못된 건가?
이렇게 한가로운 시간을 가지면 안 되는 때인가?
근데 너무 평화롭고 좋은데 어쩌지?

전쟁 같은 직장생활을 오래 이어오다 보니 처음엔 이렇게 한가롭게 지내는 게 무슨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마음이 불안했다. 이렇게 여유 있어도 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래도 너가 그 분야에선 곧 잘했잖아. 그러니까 외국계기업까지 갔겠지. 근데 아깝지 않냐?

뭐가 아까워?

좋소에서 외국계기업까지 발버둥 쳐서 올라가 놓고는 이렇게 허망하게 때려치다니.

나도 처음엔 그 생각했었다. 지난 긴 시간을 이러려고 노력한 건가 하고 말야.

내 말이 그 말이여. 그간의 노력이 아깝잖아.

근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어.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지난 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 말여.

인마 어떻게 모든 게 다 기억에 남을 수가 있냐. 다들 그렇게 살고 있잖냐.

그러니까 말야. 다들 그렇게들 사는데 나는 어느 순간 뭐가 고장이 나서 이런 선택을 한 걸까.

그걸 너가 모르면 누가 아냐 인마.

그래서 그냥 생각을 바꾸기로 했어. 뭐가 고장이 나서가 아니라 고장 난 부분이 이제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말야.


지난 시간 동안의 나의 노력들. 발버둥 치며 연봉상승과 좋은 처우만을 외치며 뒤나 옆을 보지 않고 앞으로만 직진하며 정신없이 살았던 그 시간들이 지금의 이 상대적인 여유로움을 갖기 위한 발판이 아니었을까. 뭐 언제까지 이럴진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번달은 아니다.


지난 시절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평생에 한 번 있는 결혼식.(누군가에겐 한 번 이상일수도 있다.)


결혼식에 대한 그 어떤 추억도, 기억도 없다. 다들 결혼준비 때 많이 싸운다던데 나는 그 싸울 시간도 없었다. 회사일이 바빴다. 내 승진이 걸린 프로젝트로 인해 결혼식은 2순위였다. 모든 걸 아내가 혼자 했다. 결혼식 당일이 되어서야 식장을 볼 수 있었다. 신혼여행지도 출발하기 일주일 전에 여행사를 통해 급하게 잡았다.


결혼식 전날까지도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점검하고 있었다. 내가 며칠 자리를 비울 것이고, 그로 인해 딜레이나 이슈가 생기진 않을까를 계산했었다. 승진만이, 회사만이 내 삶의 전부였다. 나의 배우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신혼여행을 가서도 카톡을 하며 프로젝트 진행상황을 살폈다.


신혼여행지에서도 메시지를 확인하고 답장을 하며 바빠하는 내 눈치를 보던 아내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너무 미안하다.

일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 그리고 신혼여행인데. 내가 뭐라고 이걸 이다지도 무참하게 짓밟았을까 하는 미안함.


일, 직장, 연봉에 매몰되어 인생의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너무 가볍게 치부하고 그저 저녁 한 끼 대충 때우듯이 스쳐 넘겨버렸다.


과연 인생의 이런 포인트까지 넘겨버릴 정도로 나에게 회사란 그리 큰 존재였을까?


퇴사를 했는데, 계획은 없었어. 그냥 좀 쉬고 싶었어. 모르겠다. 그게 전부야. 몸도 마음도 지쳤어.

현실을 봤어야지 인마.

알어. 근데 지금 아니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 거 같은 생각이 들었.

이렇게 백수로 계속 살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고?

그 생각도 해봤지. 근데 그리 나쁘지 않던데? 돈은 아내가 벌고 난 집안일하고 ㅋㅋㅋㅋ

에라이 자식아.

얀마 집안일도 할 거 많어. 도우미 부르면 그 돈이 얼만데. 내가 세이브하고 있잖냐 ㅋㅋㅋ


그래도 나름 0.5인분 몫은 하고 있다. 아내 사업의 온라인 홍보담당(?)이라는 나름 직책을 가지고. 글을 쓰고, 홍보 영상을 만들고, 직접 온라인 홍보를 하. 직장을 다닐 때와 다른면에서 하루하루 창의적인 생각을 하며 나름 살아가고 있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직장에서 한 자리를 하며 일을 하던 과거의 나와 상대적으로 한가롭게 아내 사업을 나름 도와주며 집안일을 하는 현재의 나.


어느 쪽이 더 낫다고 할 수도 없다. 각각의 장, 단점이 있기에.

근데 아직은 후자가 나에겐 훨씬 더 좋다.


뭐 언젠가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그때가 되면 그때의 내가 무언가를 또 하지 않을까?

이전 08화 40대 번아웃. 바쁘지 않아도, 의미를 잃으니 오더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