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번아웃. 바쁘지 않아도, 의미를 잃으니 오더라.
개처럼 일한 당신도, 떠나라.
제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중독이었어요. 하고 싶어 한 게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일이 많아서 일중독처럼 보였습니다. 저, 그리고 같이 일하던 팀원 한 명은 일중독으로 사무실에서 소문이 났었습니다.
그냥 일이 많았어요. 칼퇴하고 싶죠 당연히. 근데요.
이걸 안 끝내고 집에 가면 내일 할 일이 두배로 늘어납니다. 그냥 갈 수가 없어요. 이러다 보니 야근이 잦았고, 직업특성상 주말출근도 많았죠.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이, 의도한 건 아닌데 윗사람들은 나쁘지는 않게 보더군요. 그러다 이직, 또 이직. 회사를 옮기며 워라밸을 조금씩 찾기 시작했고, 퇴사 몇 달 전부터는 칼퇴했습니다.
이상하게 일이 많지 않았음에도 밀려오는 무기력함.
여기서 난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뇌.
아이러니하게도 일은 전보다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깊어지는 한숨.
몸은 전보다 편해졌는데, 어째 이런 걸까. 지난 16년의 직장생활 중, 15년은 정말 개처럼 일했는데.
파블로프의 개 마냥, 일거리 주어질 거 같으면 침을 질질 흘리며 빨리 저 많은 것들을 처낼 생각만으로 가득했었는데.
어째서, 그때보다 물리적인 일거리가 줄었음에도 이러는 걸까.
답을 머지않아 찾게 됩니다.
의미를 잃었어요. 회사에서 일을 하는 의미를 잃은 겁니다. 예전에는 조금 더 좋은 회사, 좋은 복지, 높은 연봉을 좇아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뛰었어요. 그러다 특정한 삶의 이벤트들로 회의감에 가득 차면서부터.
그렇게 회사에서의 의미를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고통을 느낌은 철저하게 내 중심적입니다. 다리가 골절되고, 손가락이 골절되고 그런 사람을 보아도 정작 내 손톱 밑의 가시가 제일 아픈 법이죠.
남들이 보기엔 배부른 소리일 수 있지만, 전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일이 많아 번아웃이 올 뻔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미친 듯이 바빴던 30대 중반. 그때도 비슷한 감정이 들었었습니다. 좀 쉬고 싶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어요. 하지만, 퇴사 전의 그 감정과는 결이 많이 달랐어요.
30대 : 이 업무의 담당자는 나이고, 이것들은 내가 만들고 이루어놓은 시스템들. 내가 게이트웨이다. 난 필수이자 핵심인력.
퇴사 전 : 누가 하든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나 없어도 회사는 잘 돌아간다. 조직이 원래 그런 거다.
딱, 요정도의 인식의 차이. 조직입장에서 보면 후자의 생각이 훨씬 반가울 겁니다. 누구 하나 빠진다고 업무가 크게 빵꾸가 나거나,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건 건강한 조직이 아니거든요. 그러기 위해 백업시스템이나 인수인계보고서를 철저하게 관리하는것이기도 하죠.
회사에서의 의미를 잃고 헤매던 퇴사 전을 생각해 보면, 당연히 쉬고 있는 지금보다 돈은 많이 벌었지만 영혼이 없었습니다.
기상 - 지옥 같은 출근길(환승 3번) - 의미를 잃은 일의 반복 - 지옥 같은 퇴근길(환승 3번) - 운동 - 잠
이 루틴의 반복.
술도 마시지 않는 저는 저 하루일과 중 운동할 때만 눈이 반짝였어요.
하루의 대부분이 흑백이었지만, 운동하던 저 시간만큼은 컬러풀했거든요.
따박따박 들어오던 월급은 끊겼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 나름 목표한 것에 아주 조금씩이라도 성과를 보이며 다가가고 있는 지금이 훨씬, 백만 배는 더 살아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PS. 제가 퇴사를 장려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성향이 차이입니다. 틀린 게 아닌 다른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