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예약시간은 9시였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진료시간이 딜레이 되어 한 시간째 앉아서 이러고 있어요.
한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누다 아내가 검사 및 진료를 보러 들어가서 시간이 조금 생겼네요.
어제는 은행을 걸어가는데 아내가 대뜸 그럽니다.
난 여보가 회사 그만둬서 더 좋은 거 같아. 예전보다 우리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거 같아서.
어? 흠.. 그래 일단. ㅋㅋㅋ. 그 마음 변치 말아야 할 텐데.ㅋㅋ
이러고 웃어넘겼습니다.
예전 직장 생활할 때를 비교해 볼까요. 전 항상 바빴어요. 일이 정말 많았거든요. 야근, 주말출근 등. 직업특성상 잦았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아내와 통화는 하루 적어도 3번은 꼭 했어요. 점심 먹고, 오후 4시쯤, 아내 퇴근시간 즈음.
불문율 같은 거였어요. 저 시간엔 웬만하면 전화를 했어요. 누가 하던 상관없이 말이죠. 하지만, 쉬는 날이면 전 그야말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힘들었어요. 쉬는 날은 머리고, 몸이고 무조건 충전해야 했습니다.
그러지 못하면, 너무 지치더라고요. 제가 잘나지 못해서 저런 거겠죠.그런 저를 아내는 이해해 주었어요. 주말이면 시체같이 쉬어도, 때로는 종일 컴퓨터 게임을 해도 이해해 주었어요. 잦은 야근, 밤샘, 주말출근 하는 걸 옆에서 10년 넘게 보고 있었으니까요.
제가 쉬는 시간을 많이 배려해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내가 잘하지 못 하는 것들이 생기면 제게 부탁하는 것을 굉장히 미안해했어요. 본인이 노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날 서 있고, 예민했던 저를 많이 배려해 주었습니다. 어떤 면으로는 많이 불편했을 겁니다. 새벽에 자다가 급한 일이 생겨 갑자기 출근할 때의 저는 터지기 직전 폭탄 같은 모습이었거든요. 제가 아니라도 자다 깨서 회사가라 하면 누구나 그러겠지만, 저는 특히나 분노의 표출을 시원하게 했었거든요. 타깃은 없습니다. 그저 분노에 찬 짜증이었죠.
퇴사를 하고 나니, 예전에 비해 유해진 내 성격. 그동안 아내가 나 때문에 힘들었겠구나를 생각합니다. 요즘은 아내가 하고 싶다는 거, 먹고 싶다는 거는 되도록이면 거의 다 같이 합니다. 더 많이 배려하게 되었고,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아내 없으면 어떻게 사나 싶을 정도.(돈 얘기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불편한 게 생깁니다. 그것은 바로 집에 한 개뿐인,
화장실.
예전 출근할 때야 제가 새벽같이 나왔으니, 서로 겹칠일이 없었는데 지금은 같은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공유하다 보니 동타임이 오면 그야말로 난리가 납니다. 하필이면 그 시간도 서로 비슷해요. 부부는 닮아간다고 하죠? 그 타임도 닮아가더군요.
오늘아침에도 아내가 씻으러 들어가니 오는 신호.
아, 야! 야!! 아.. 나 죽겠어. 빨리!! 빨리!!
(저 순간만큼은 애칭이 안 나옵니다. 이해하실 거예요. 일촉즉발의 상황.)
아내는 양치하며 웃음이 터집니다. 낄낄대며 화장실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저를 보며, 마치 강아지에게 하는듯한 손사인을 보냅니다.
기다려~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사색이 된 얼굴로 참기를 수초.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아내를 밀어내고 화장실로 들어갑니다. 주방 싱크대에서 양치를 마저 하고는 낄낄대며 화장대에 앉는 소리가 들립니다. 약 1분 후.
화장실문을 미친 듯이 두드립니다.
여보! 여보! 멀었어? 아! 빨리나와 ㅜ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낄낄대며 저 또한, 기다려~ 를 연신 외쳐줍니다. 밖에선 난리가 났습니다. 천천히 마무리를 하고 나와보니 아내가 이 자세로 앉아있네요. 저를 밀치며 후다닥 뛰어 들어가는 아내.
뒤꿈치로 그 부분을 압박하는 자세.
빈번하게 발생하는 아침 상황이라, 아무래도 제가 시간을 바꿔보아야겠죠? 그래야죠. 저는 아내를 배려하는 남자니까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