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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너빈 Oct 02. 2024

회사 없인 못 살아.

12년 간 4번뿐이었던 그것.

'나 30살 때부터 42살까지 4번 밖에 없었네'


아내를 처음 만난 29살부터 퇴사한 42살까지 아내와 여행을 딱 네 번 갔습니다. 아내와 함께 하지 않은 여행은 없었으니 저 시기에 갔던 여행은 정확히 4번이 전부였네요.


처음은 연애 초반 친구들과 함께 갔던 가평 1박 2일.

두 번째는 신혼여행.

세 번째는 결혼 후 3년이 지나 일정기간 돈을 모아 아내와 다녀온 하와이 여행.

마지막은 재작년 여름, 키우는 강아지와 함께 다녀온 1박 2일 강아지 펜션여행.


믿기 힘들겠지만 주말에도 아내와 나가봐야 집 근처 밥 먹으러 가거나 동네 근처가 전부였어요.

벚꽃이 피어도.

여름이 되어도.

단풍이 지어도.

첫눈이 내려도.

집에만 틀어박혀 쉬기만 했습니다.


그것도 나름 나쁘지 않았습니다. 평일을 치열하게 살던 나와 아내는 주말이 되면 방전상태가 되었고 어디 나가는 것이 심적인 부담이 컸었기 때문에. 심지어 첫 차를 34살에 샀기 때문에 30대 초반에는 그 어디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여름휴가철이 되어도 휴가를 가지 않았어요. 제가 생각해도 참 신기합니다.


그저 동네 영화관, 동네 밥집, 동네 옷가게. 동네 여기, 동네 저기 등등 걸어갈 수 있는 곳만. 그것도 한 달에 두어 번 정도를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전부였고요.


아내도 처음엔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20대 후반에 만난 아내는 술자리도 좋아하고, 자주는 아니어도 남들 하는 평균수준치의 외부활동을 즐기던 사람이었거든요. 연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일이 많아지던 내가 매사에 피곤하던 터라, 그리고 평일의 나의 일과 삶을 두 눈으로 목격하던 그녀였던지라 연애 시작 1년 후부터는 어디를 가자는 소리를 참아주더군요. 덕분에 휴일에는 편히 집에서 쉴 수 있었어요.


20대 중후반부터 혼자 살았기에 휴일이면 내가 살던 집에 와서 일주일간 먹을 반찬을 해놓고 그저 집에서 영화를 다운로드하여 보거나, 집 앞 삼겹살집에서 밥을 사 먹거나 한 게 전부. 그렇게 시나브로 나에게 물들어 가던 그녀. 연애기간 5년 간 1박 이상으로 어디 놀러 간 적이 딱 한 번이니 말다 한 거 아닌가 싶네요.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내 삶의 모든 중심은 회사였어요. 회사라는 테두리에 나의 모든 것을 맞추고 가두어두고 살아왔거든요. 회사가 없으면 나란 존재도 무가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나는 회사와 일을 위해 살아가야 함이 마땅하다 생각한 16년.


회사가 부르면 주말출근도, 야근도, 철야도, 새벽에 자다 깨서 출근해도, 미리 잡아놓은 휴가를 취소하는 것까지도 그저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였어요. 물론 그때 당시엔 짜증이 나긴 했지만 당연히 해야 한다는 것이 기저에 깔려있었거든요. 물론,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도 당연한 의식의 흐름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너무나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저 긴 시간 동안 아내와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이 너무나도 없다는 겁니다. 아내와 사진첩을 정리하다 문뜩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 30살 때부터 42살까지 아내와 1박 이상으로 여행 갔던 게 4번뿐이네?! 그것도 한 번은 신혼여행이고.'


진심으로 너무나 안타깝고 아까운 나의 30대 시절 전부와 40대 초반의 추억거리가 남아있는 게 거의 없다는 게 참 서글프더군요. 사진도 몇 장 없어요. 그저 기억에 의존하며 아내와 얘기를 할 뿐이었어요.


'우리 여행 한 번 가자'

힘을 실어 얘기를 꺼냈습니다.


어디 나가기 귀찮답니다.

집 근처에 있는 지하상가나 가잡니다. 집에서 입을 편한 바지랑 티셔츠 좀 사야겠다며. 저 말들이니 저도 괜스레 귀찮아지네요. 집에서 쉬다가 저녁 먹고 산책 겸 동네 근처에 있는 지하상가 가서 룰루랄라 쇼핑하고 왔습니다.


어딜 가는 게 뭐가 중요합니까. 누구랑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중요하죠.


PS. 부부는 닮아갑니다. 저를 닮아가는 아내가 안쓰럽긴 하지만 제 몸은 편합니다.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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