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너빈 Jan 10. 2024

금수저 건물주 아들 녀석 왈, 가난이 대물림된다고?!

그 입 다물지 못할까, 자식아.

친구 중에 금수저가 있습니다. 가난한 집 자식이었던 저와는 다르게 풍족하게 자란 그놈.

10대 시절, 우리 무리와 어울리고 싶어 하던 녀석이었어요. 어쩌다 보니 만나는 자리에 몇 번 같이 보았는데 그 인연이 성인이 된 후까지 이어지더군요. 저는 그 녀석이 처음부터 별로였습니다. 자격지심이죠. 그 친구가 딱히 저에게 피해를 준건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태도가 나쁜 녀석도 아니었어요.



가난은 대물림된다는 그 녀석.

우리 집 사정을 그 녀석에게 말하지 말아 달라 했습니다. 뭐 창피해 서였겠죠.

여느 날처럼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고 있던 중. 내 귀를 의심하는 한마디가 흘러들어옵니다.


"가난은 대물림되는 경향이 있어. 세상은 공평하지 않은 거 같더라."


어안이 벙벙해지더군. 압니다. 나를 향해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어쩌다 나온 가십거리 얘기에 단지 본인의 생각을 말했던 거겠지요. 흡사 발가벗겨진 채로 무대 위에 올려진 사람처럼 얼굴이 달아오릅니다. 지금이야 그런 소리를 해도 타격이 없었겠지만, 당시의 나는 자격지심이 극에 달했던 상태였거든요.


친구 중 몇 놈이 저를 힐끗 보며 눈치를 살핍니다. 아.. 술맛 떨어지네. 그러게 저 자식은 우리 모이는 자리에 부르지 말자니까. 속으로 생각해 봅니다. 혼자 쉐도우 복싱을 하듯 그 녀석을 노려보기 시작했어요.


굳어진 표정. 커진 동공으로 노려보는 눈을 의식한 그 녀석이 흠칫 놀라며 저에게 왜 그러냐고 합니다.

네가 뭔데 그딴 얘기를 하냐며. 절대 내가 가난해서 그렇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어요. 넌 그런 썩어빠진 생각으로 세상을 사냐고 몇 마디로 쥐어박았습니다.


한동안 친구들이 우리 모이는 자리에 그 친구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3년쯤 안 보다가 우연한 계기로 - 친구 결혼식 뒤풀이 었나 그랬던 거 같은데 - 다시 술자리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이상하게 죽상을 하고 앉아있더군요. 술을 연거푸 들이키며.

조금 늦게 술집으로 간지라, 그 녀석과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습니다. 어색한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물었죠.

내가 거리를 두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모르면 바보지 사실..) 내가 아닌 옆자리 친구에게 신세한탄을 하더군요.


음주운전을 하고 사고를 냈다고 합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고요.

아버지한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평소에도 많이 보이던 그놈.

괴롭답니다. 지가 잘못해 놓고 힘들다고 합니다. 죽빵을 후려쳐버리고 싶었습니다.


난 지금 쓸 돈이 모자라 한 푼, 두 푼 아껴가며 살고 있는데 당시 20대 후반이던 우리 나이에 비싼 차를 사고 사고를 내서 폐차를 했다며 괴롭다니. 뭐, 돈이 아깝긴 할 거 같네요. 좋은 외제차였는데.



근데 너 말이 맞는 거 같기도?

마흔이 훌쩍 넘어섰네요. 그 친구와 저의 차이는 여전히 아득합니다. 서울에 꽤나 큰 건물을 소유하고 있던 그 녀석 아버지. 그 외에도 이런저런 부동산을 가지고 계셨던 그 녀석 아버지.


저도 나름 열심히 산다고 살아왔는데 지금 이 나이에 가진 거라곤 작은 집 하나. 그리고 빚. 얼마 없는 통장잔고. 거기에 백수. (하지만 누구보다 빛나는 영혼의 단짝, 마누라를 가지긴 했죠.)


얼마 전 만난 그 녀석은 하던 사업이 흔들렸는지, 급하게 아버지에게 6억을 빌렸다고 하네요.

6억. 6억. 6억.

귓가에 맴도는 6억이라는 말.


난 지금 6억만 있어도 소원이 없겠다 이 자식아. 이제는 예전만큼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가 아닌지라 그다지 신경 쓰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부럽긴 하더군요.


결혼하고 8년째 살고 있는 작은 오피스텔 내 집 하나가 창피했었어요. 그래서 친구들도 집에 부른 적이 없습니다. 아직도 저 부분은 많이 내려놓지 못했어요. 평생에 번듯한 아파트에서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제대로 된 아파트에서 살아보는 게 사실 소원입니다.


아직 한참 멀은 얘기이죠. 외국계회사까지 가며 나름 돈 좀 번다고 그러고 다녔는데, 딱히 사업으로 크게 성공하지 않은 저 녀석에 비하면 아직도 초라합니다. 좋은 아파트에. 좋은 차에. 자식도 별 고민 없이 낳고.

전 사실 경제적인 부분으로 아직 애를 안 낳고 있거든요.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예전 20대 중반에 저 녀석이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가난은 대물림되는 경향이 있다'는 그 말. 이제 나이를 먹고 현실을 알아가다 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있더군요.


"가난하다고, 풍족하지 않다고 행복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거."



사람마다 불행의 크기와 그릇은 비슷하다.

지난 제 삶을 돌이켜보면, 돈만 보며 좇아왔습니다. 오로지 연봉상승과 좋은 회사로의 이직만을 향해 달렸거든요. 하지만, 퇴사를 한 지금. 무언가 삶의 방향이 조금 달라진 걸 느낍니다. 아등바등 대며 살았던 지난 16년을 돌이켜보니 머릿속에 남는 게 그 무엇도 없더라고요.


힘들었던 야근.

주말 출근.

밤샘.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지난 16년이 위 4가지로 압축됩니다. 물론, 지난 16년이 의미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니까요.


다만, 금수저이건 흙수저이건 돈이 많건 돈이 적건 개개인이 느끼는 불행의 크기는 그 상황에 맞게 온다는 겁니다. 금수저 친구는 돈이 여유가 있다고 불행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을까요?


20대 후반, 신차를 폐차했다던 그때.

아버지에게 6억을 빌렸다는 그때.

시작한 사업이 잘 안 되던 그때.


모두 그 녀석에겐 힘든 시간이었겠죠. 마치 제가 돈이 없어 절절매던 그 시절의 힘듦과 비슷한 수준으로요.

행복과 불행을 느끼는 그 크기는 모두 비슷할 겁니다. 마치 내 손톱 밑에 박힌 가시가 제일 아픈 것처럼요.


한때는 시기와 질투로 인해 미워했던 그 녀석을 미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물론, 누구도 모를 겁니다. 제가 얼마나 싫어했었는지를요. 세월이 지나도 혼자 쉐도우 복싱하던 제가 좀 한심하기도 하네요.


각자의 위치에서 느끼는 행복과 불행은 모두 상대적이라는 사실. 지금은 그 녀석도 평생을 좇아오던 아버지의 인정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가난.

대물림되는 경향이 많은 거 맞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현실도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걸 인정하면서부터 변화는 찾아오게 된다는 것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