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 뒤에 숨은 불안의 정체>
이런 세상에서 다들 평범은 어디서 배우는 걸까.
평범과 비평범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
정말 평범해야 하는 걸까.
혹시 사람들의 얼굴이 다 다르게 생긴 건, 성격도 다 다르다는 증거 아닐까.
치과에서 환자를 보면서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은 일반적으로 치아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그 형태와 색, 닳는 방향, 씹는 습관은 전부 다르다.
그 작은 차이들이 모여 각자의 치열을 만들고, 얼굴의 형태를 완성한다.
그걸 매일 보면서도 나는 여전히 평범을 추구하는 게 맞을까.
사람들은 평범의 기준을 정해놓고, 그 틀에서 벗어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한다.
웃긴 건, 그 기준이 너무 모순적이라는 거다.
입으로는 '평범하게 살아'라고 하면서, 막상 평범한 성적인 수능 평균 5등급은 인정받지 못한다.
평균이 설자리가 없는 사회에서 어떻게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공부를 잘하려면 누구보다 달라야 한다.
남들이 보는 예능 대신 문제집을 봐야 하고, 남들이 자는 시간에 공부해야 한다.
그렇게 평범하지 않게 살아야 1등을 한다.
그런데 정작 그 1등이 평범하지 않은 행동을 하면 비난한다.
공부할 때는 극단적인 행동을 요구하면서, 그 이외에는 평범한 행동을 하라는 것이다.
결국 사회가 원하는 건 성적은 비범하고, 행동은 평범한 모순된 인간형이다.
그런 인간형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평범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평범하다는 건, 여러 영역의 평균을 겹쳐놓은 교집합 같은 개념이다.
공부, 외모, 성격, 인간관계 같은 모든 면에서 보통인 사람.
하지만 그건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이야기다.
통계적으로 생각해 보자.
각 영역이 독립된 변수라면, 모든 항목에서 동시에 평균에 머물 확률은
독립시행 확률의 곱처럼 점점 0에 가까워진다.
즉, 현실에는 그런 교집합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공부도, 외모도, 성격도, 인간관계도 모두 평균인 사람은 있을 수 없다.
결국 우리가 말하는 평범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허상에 자신과 남을 끼워 맞추려 한다.
내가 조금이라도 튈까 봐 스스로를 불안해하고, 자신과 다른 행동을 하는 남은 불편해한다.
그러다 결국 자신의 진짜 얼굴을 잃는다.
그 평범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나다움'이 사라지는 걸까
나는 언젠가부터 평범해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대신 나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평범은 편안함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장 불안정한 상태다.
계속 누군가와 비교하고, 자신을 깎아내야 유지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속엔, 사실 남들과 다르게 살 용기가 없다는 뜻도 숨어 있다.
나도 한때는 그랬다.
평범하면 안전할 줄 알았다. 평범하면 실수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돌아보면, 내 삶의 방향을 바꾼 순간은 언제나 평범에서 벗어났을 때였다.
그래서 요즘은 생각한다.
평범은 배우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환상일 뿐이라고.
평범의 편안함 뒤에는 늘 두려움이 숨어 있다.
그 두려움을 내려놓는 순간이라야, 비로소 조금 더 나답게 살 수 있다.
치과에서 우리들끼리 (치과의사, 직원, 가끔 환자분께) 쓰는 말 18
보철 관련
1. 프렙 할게요.
- 치아를 깎겠다는 이야기이다.
2. 클리어런스가 안 나오네. or 프렙이 덜 됐네.
- 치아를 좀 더 깎아야겠다는 말이다.
3. 임프 뜰게요. or 본뜰게요.
- 잇몸이나 치아 모양 그대로 본을 떠서 다음번 단계에 필요한 보철물(크라운, 인레이, 틀니 등)을 제작하겠다는 말이다.
4. 바이트 뜰게요.
- 위아래 치아 위치가 어떻게 물리는지 확인을 위해, 물리는 것을 본뜨겠다는 말이다.